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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의견에 답합니다:
‘낙태’ 대신 ‘임신 중단’을 쓰자는 용어 제안에 대해

이 글은 기사 ‘[낙태죄 폐지 청와대 청원 23만여 명] 낙태죄 없애고 낙태 권리 보장하라’에 대해 한 독자가 보낸 독자편지와 그에 대한 필자(정진희)의 답변이다.

독자 서예나의 의견

잘 읽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낙태'라는 단어보다 '임신 중단'이라는 단어가 보다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낙태는 기본적으로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 책임을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돌려 책임을 전가하는 단어라고 생각해서요. 감사합니다.

필자 정진희의 답변

관심 있게 읽고 용어 제안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예나 님처럼 여성운동 일각에서도 낙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피하기 위해 ‘임신 중단’이라는 용어 사용을 제안하고 있죠. ‘임신 중단’이라는 용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낙태죄에 반대하고 임신 지속 여부를 여성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전 ‘임신 중단’이라는 단어가 아직 사람들에게 꽤 낯설고, 대중에게 훨씬 더 잘 알려진 단어가 ‘낙태’라서 이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낙태, 임신중절, 임신 중단, 임신 중지 등 여성운동 내에서 쓰이는 이 용어들이 다 그럭저럭 괜찮은 듯하지만, 낙태죄 폐지 운동을 대중적으로 벌이려면 사람들이 금방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대중에게 익숙한 단어라도 그 단어가 여성을 비하하거나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용어라면 쓰면 안 되겠죠.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낙태라는 단어가 꼭 나쁜 의미로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낙태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낙태를 허용하라는 사람들은 가치관 차이가 크죠. 그래서 두 집단은 ‘낙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게 상당히 다릅니다.

낙태를 임신 중단으로 부르든 법률 용어로 인공임신중절로 부르든, 그 행위 자체는 태아를 떨어뜨리는 것인데, 이에 대한 가치 평가는 사회에서 통일돼 있지 않습니다. 최근 낙태죄 폐지 여론에서 보듯 한국에서도 낙태 반대 의견은 다수가 아니죠.

제 생각에, 낙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낙태’라는 단어 자체에서 나온다기보다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과 국가기관의 단속과 처벌 행위, 낙태를 범죄화하는 일련의 주장(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합니다.

서예나 님의 문제의식, 즉 낙태에 대한 부정적 함의를 없애는 문제에서는 새 단어 사용보다, 낙태를 범죄화하는 주장들을 체계적으로 반박하면서 낙태 금지 법률과 정책을 무너뜨리는 게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낙태가 여성의 권리라는 것을 당당하고 일관되게 옹호하며 대중 투쟁을 벌이는 게 관건입니다.

우리의 투쟁이 승리해 낙태죄가 폐지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사회적으로 인정된다면, 낙태에 대한 도덕적 낙인도 줄어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런 낙태권 투쟁을 앞으로 함께 벌여나가면 좋겠습니다. 〈노동자 연대〉를 계속 관심 있게 읽어 봐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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