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호 독자 편지를 끝마치면서 조한주 씨는 “마르크스가 서구중심주의자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하고 주장했다. 조한주 씨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펴는 많은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뉴욕 트리뷴〉에 기고한 기사의 일부를 증거로 제시한다. “영국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건, 영국은 무의식적으로 혁명을 일으킨 역사의 도구였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이해하려면 문단 전체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  

“영국이 가장 비열한 이유 때문에 힌두스탄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고, 그것도 아주 어리석은 방법으로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문제는 아시아의 사회 상태에서 근본적인 혁명 있지 않고도 인류가 자신의 운명을 완성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영국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건, 영국은 무의식적으로 혁명을 일으킨 역사의 도구였다.”

식민주의는 인도에서 혁명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기술과 생산에서 정체해 있던 인도 사회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인도는 후진성과 왕조간 경쟁 때문에 식민주의의 침략에 맞서 단결할 수 없었다. 비록 마르크스가 전자본주의 인도 사회를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그는 유럽 봉건주의에도 그만큼 비판적이었다.

마르크스는 인도 카스트 제도를 인간의 정신을 억누르는 “저지할 수 없는 미신의 도구”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마찬가지의 기준에서 유럽 농민들을 “아둔한 농촌 생활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농촌 생활이 얼마나 인간의 잠재력을 갉아먹는지 지적한 것이다.

유럽 사회의 이식을 통해 인도 사회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은 오늘날에는 과장된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1835년 당시 인도와 영국 간 물질적 풍요의 차이는 인도 독립 직전인 1947년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크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인도 사회를 분석하면서 인도가 자본주의적 변혁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구조들을 보여 줬다. 그는 전자본주의 인도 사회의 무거운 유산이 가장 심각한 장애라고 생각했다.

또 마르크스는 1857년 인도의 민족 해방 투쟁을 환영했고, 유럽에 저항하는 아시아 투쟁의 한 부분으로 보았다. 엥겔스도 유럽인에 맞선 중국인의 투쟁을 칭송했고, 서구 국가들을 ”문명을 들먹이면서 무방비의 도시에 포탄을 발사하고 살인과 강간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모두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을 적극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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