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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환향녀》(강동완·라종억 지음, 너나드리):
인신매매와 강제 북송 사이- 고통으로 얼룩진 중국 거주 탈북 여성들의 생활 실태

일부 종편 TV 프로그램이 집중 조명하는 탈북 여성들의 모습은 연예인처럼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고 ‘돈 쓰는 재미를 즐기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은 탈북 여성들 압도 다수가 겪는 고통스러운 삶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중국 거주 탈북 여성들의 삶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신간 《북조선 환향녀[1](강동완, 라종억 지음, 너나드리, 408쪽, 27,000원)가 나왔다.

이 책은 중국 거주 탈북 여성 100명을 중국 현지에서 심층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현재 국내 입국 탈북민 수는 3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80퍼센트가 여성이며, 이 가운데 중국에서 거주하다 온 여성은 70퍼센트를 넘어선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폭력, 억압, 두려움, 공포, 천대, 조롱, 학대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말을 대입해도 그녀들의 삶을 표현해 내지는 못할 것 같다.” 이 말처럼 경악스럽고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탈북 여성들의 현실에, 두꺼운 책이지만 책을 쉽게 놓을 수 없다.

《북조선 환향녀》 강동완, 라종억 지음| 너나드리| 408쪽| 27,000원

오도 가도 못하는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들은 저마다 ‘값’이 있다. 모두 강제 결혼으로 팔려갔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잠시 돈을 벌고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브로커에게 납치된 뒤 지참금을 몽땅 빼앗긴 경우고, 나머지는 인신매매 당할 줄을 알면서도 굶주림 때문에 제 발로 브로커를 찾아간 경우다. 이리저리 팔려 가서 남편이 다섯 번이나 바뀐 사례도 있다. 브로커는 북한에서 여성이 오면 “오늘 돼지 몇 마리 들어왔다”고 표현한다.

[납치돼 끌려와] 어느 집에 앉아 있는데 낯선 사람들이 와서 나를 자꾸 보더란 말입니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시집을 가라니 어떻게 가겠습니까. 나를 팔아야 하는데 내가 안 간다고 하니 그냥 막 얻어맞았습니다.”

불법 체류자라 중국 공안의 신분증(호구) 검사에 걸리면 강제로 북송되기 때문에 집 밖에 나가거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결국 남편에게 철저하게 종속되거나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들 대부분은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집안일 하는 노예나 성노리개 다름 없는 삶으로 내몰리고, 마약 하는 남성을 상대해 주면서 ‘몸팔기’(성매매) 하는 경우도 많다.

“1년 동안 24시간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외에 만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 만큼 일만 부려먹었[어요.] … 여기 와서 통제와 감시 속에 지옥 같은 삶을 살았어요. 조선[북한]이 오히려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밤이고 낮이고 계속 [중국] 경찰이 잡으려 한다 말입니다. 밥 먹는데도 경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서워 달아난다 말입니다. 3년 정도 그리 살다가 집에서 나를 천대하는 게 더 심해졌어요. 동네도 못 돌아다니게 했어요. 얻어맞고 천대 받으며 그리 살았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것도 공민증(신분증) 요구하면 일 못 합니다. 일하게 되더라도 걸리면 돈 아이 주죠. 가정이라 하지만 다 능력 없는 남편이랑 삽니다. 중국 정부는 의료보험으로 자궁병수술을 해줘요. 그래서 젊은 여자애들은 몸 판단 말입니다.”

23살에 팔려와 시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고 다른 집으로 다시 팔려간 사례, 21살에 65세 남자의 씨받이로 팔려가 첫째 부인과 함께 살면서 수모를 겪다 도망친 사례, 3년 내내 남편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으며 사는 사례 등 탈북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일들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탈북 여성들의 가장 큰 고통은 뭐니뭐니해도 가족들과의 생이별이다. 하루아침에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을 글썽이지만, 브로커 비용이 너무 비싸 가족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하고 생사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번만이라도 엄마 앞에서 울어보고 싶어요. 엄마 앞에 가서 ‘엄마, 다시는 그런 길 안 갈게. 다시는 그런 길 가지 않겠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죽기 전에 (북한에서 낳은) 새끼들을 만나고 싶어요. 간절한 소원인데 언제나 그 소원 이뤄지겠는지… “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중국 거주 탈북 여성들의 삶을 가장 위협하는 건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로 북송되는 두려움”이라고 지적한다. 북송된 탈북민은 교화소에 갇혀 하루 10시간에 달하는 강제 노역에 수년간 처해지거나 고문을 당한다.

중국은 “난민이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난민 협약에 가입된 국가지만, 북한 주민을 난민으로 규정하지 않고 강제 북송을 고집하고 있다. “대량 탈북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과 “북한과의 외교적 문제” 때문이다. 탈북 여성들을 팔아 넘기는 브로커들이 들끓게 되는 것도 중국 등 인접 국가들이 난민 신청을 받지 않고 탈북민을 단속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즉각 강제 북송을 중단하고 탈북민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 죄 지은 거 없이 살았는데 왜 제 삶은 이런지 모르겠다”며 눈물로 한탄하는 탈북 여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 내고 있는 이 책은 읽어 볼 가치가 있다.

탈북민 문제는 국제주의와 자유 왕래의 견지에서 접근해야

이 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부분도 있다.

우선 남한 정부에게 분명하게 요구할 것이 있다.

남한 우익들은 탈북민을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우익을 결집하기 위한 도구로 삼을 뿐 실질적인 복지를 늘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고용에서의 차별도 많아서 국내 탈북민 자살률은 일반인의 3배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거주 탈북 여성들 중 많은 수는, 남한으로 들어와도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 머문다.

따라서 남한 정부는 국내 거주 탈북민에 대한 복지를 제대로 제공하고, 탈북민을 ‘잠재적 간첩’으로 취급하는 등의 차별 조장 정책과 하나원(통일부 소속 기관) 장기 구금 등을 폐지해야 한다.

한편 저자는 중국 거주 탈북민의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해 “중국의 명분을 지켜주면서 동시에 실리를 챙기는”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탈북민 문제를 일관되게 접근하려면 궁극적으로 노동계급이 각국 지배자들이 세운 벽을 넘어,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말처럼, 국제주의자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남·북한의 노동자들도 휴전선을 가로질러 연대해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필요 때문에 북한을 고립시키는 미국 지배자들, 굶주림에 말라 죽기 싫어서 탈북한 인민을 다시 잡아들여 처벌하고 고문하는 북한 지배 관료들, 탈북민을 ‘돈 드는 골칫덩어리’ 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중국과 남한의 지배자들 모두에 맞서 남·북한 노동계급은 단결해야 한다.

남한의 노동계급이 탈북민을 착취·억압에 맞서 함께 싸울 동지로 대하는 것은 그 길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1] ‘환향녀’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멸시하는 표현이었는데, 저자는 오늘날 중국으로 탈북한 뒤에도 고통을 겪고 있는 탈북 여성들을 반어적으로 ‘제2의 환향녀’에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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