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처지와 정부의 단속추방 정책이 또다시 비극을 낳았다.

11월 1일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 추티마(29) 씨가 한국인 직장 동료 김아무개(50) 씨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가해자는 성폭행을 하려다가 추티마 씨가 저항하자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가해자는 추티마 씨가 미등록 체류자임을 알고 "오늘 출입국 단속이 있으니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는 거짓말로 추티마 씨를 유인해 범행을 저질렀다. 이주노동자가 출입국 단속에 대해 갖는 공포심을 이용한 후안무치한 사건이다.

이주·인권·노동단체가 11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살해당한 태국 이주 여성 노동자를 추모하고 이주민 인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진

태국의 한 농촌마을 출신인 추티마 씨는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19세에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11년간 경기도 안성의 자동차 부품 공장 등에서 일해 왔다.

피해자의 유가족 측이 ‘범죄피해자보상금 제도’에 따라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자 법무부는 ‘불법체류자의 경우, 규정과 사례가 없어 가능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쌀쌀맞은 답변을 내놓았다. 20대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도 끔찍하게 살해당한 노동자에 대한 예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15일 태국에서 13세 딸 등 가족의 오열 속에 치러졌다.

이에 경기이주공대위와 이주공동행동 등 여러 이주·노동·좌파·인권 단체들과 여성 단체들은 23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살해당한 태국 이주 여성 노동자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 인권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이주민 차별과 통제를 강화해 왔다. 문재인 집권 기간 동안 시행되는 정부의 '제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 초안에서도 "외국인 범죄 증가[하고 있어] ... 외국인 관리의 중요성 부각"된다며 단속추방 강화 정책들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미등록 이주민이 오히려 범죄 피해자가 되기 쉬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인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가은 활동가는 “미등록 이주민들은 취약한 신분으로 인해 각종 범죄 피해자가 되고 있다. 특히 미등록 이주 여성들은 성폭력 범죄 피해에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이주민방송(MNTV) 등이 조사한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이주 여성 205명 중 10.7퍼센트가 성희롱·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중 강간을 피해유형으로 응답한 경우도 35.6퍼센트에 달했다.

또한 성희롱·성폭력 가해자는 사장(88.9퍼센트)과 관리자(77.8퍼센트)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심지어 사장에게 10번 이상 반복 피해를 당한 사례가 20퍼센트에 달했다.

가해자가 미등록체류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며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저지른 경우가 55.6퍼센트로 절반이 넘었다. 도움을 청하지 못한 이유도 미등록체류 신고에 대한 두려움이 47.4퍼센트로 가장 높았다.

정부는 미등록 체류자를 보면 신고하도록 한 ‘통보 의무’를 범죄 피해 관련 공무원에게는 면제한 것을 인권 보호를 강화한 성과라며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석원정 운영위원은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이번 사건은 돌출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인권 침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체류자격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미등록 이주민은 범죄자가 아니다. 추티마 씨도 1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일하며 한국 경제에 기여했다. 새 정부는 이를 인정하고 미등록 이주민을 전면 합법화해야 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도 지난 여름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등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잇따르는 것을 지적하며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모든 노동자가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가.”

문재인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하기도 했다. 그 말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이주 여성을 성희롱·성폭력의 위험으로 내모는 단속추방을 당장 중단하고 모든 미등록 이주민을 합법화해야 한다. 또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왕래하며 구직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주·인권·노동단체가 11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살해당한 태국 이주 여성 노동자를 추모하고 이주민 인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진
이주·인권·노동단체가 11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살해당한 태국 이주 여성 노동자를 추모하고 이주민 인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진
이주·인권·노동단체가 11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살해당한 태국 이주 여성 노동자를 추모하고 이주민 인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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