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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의 유골 은폐와 사회적 참사법 통과:
세월호 운동이 전진하려면

세월호 희생자 유골 은폐로 커다란 비판에 직면했던 해수부가 11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유골이 고(故) 이영숙 씨의 뼈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영숙 씨는 미수습자 9명 중 세월호 인양 뒤 유해의 일부를 찾은 4명 중 한 명이다.

나머지 5명은 뼈 한 조각조차 찾지 못했고, 가족들은 유골이 은폐된 3일간 유골 대신 유품을 관에 넣고 통한의 장례식을 치렀다. 만약 은폐됐던 유골이 이 5명 중 한 명의 것으로 밝혀졌더라면 해수부는 더욱 거센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해수부는 발견된 유골이 누구의 뼈일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이 장례식을 중단하고 수색 재개를 요구할까 봐 이 사실을 숨긴 것이 분명하다.

해수부의 진정한 관심사는 미수습자 가족들을 하루빨리 목포에서 철수시키는 데 있었을 것이다. 미수습자인 권재근‍·‍혁규 부자와 양승진 선생님의 가족들도 사실이 알려진 직후 “(해수부가) 우리를 목포신항에서 하루빨리 내보내고 싶어 발견 사실을 숨겼다”, “의도가 너무 불순하기 때문에 어떤 사과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하고 분노했다.

애초에 수색이 공식적으로 끝나 장례식을 치르려는 상황에서 뼈가 발견된 것부터가 그간의 수색이 얼마나 불충분했는지를 보여 준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장례식을 하기로 결정한 것도 수색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일각에서 저희 가족들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갈등 속에서 더 이상의 수색은 무리한 요구”(미수습자 가족 기자회견)라는 판단에 이르러서였다. 정부가 충분한 수색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면 미수습자 가족들이 이러한 압박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수부는 희생자 가족들의 숱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수색을 대충, 빨리 끝내버렸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와 김영춘의 반응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보고 체계 부실”, “안이한 행정”의 문제로 사안을 축소하고 실무 책임자들만 징계위에 회부하며 꼬리자르기로 나왔다.

김영춘 장관은 사실을 보고받고도 즉각 공개 사과나 징계에 착수하기는커녕 언론 보도가 나올 때까지 아무 조처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이 앞장서서 ‘사퇴’는 “과도한 요구”라고 딱 잘라 말했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등 보수 야당들의 공격으로부터 문재인 정부를 방어하려고,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도 그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하고도 미온적이기 짝이 없는 대응은 역설적이게도 자유한국당이 더욱 적반하장으로 날뛸 명분을 제공했다. 세월호 운동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할 권리를 포기하자, 일말의 자격도 없는 역겨운 세월호 범죄자들(자유한국당)과 기회주의적인 국민의당이 그 자리를 대신해 버린 것이다!

사회적 참사 특별법: 권한 면에서 1기 특조위와 다르지 않음

11월 23일 오전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해 은폐 규탄 및 사회적 참사 특별법안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조승진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문재인 정부를 은폐 정부라고 욕하던 바로 그 순간에, 이 두 당은 국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하는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하 2기 특조위법)을 후퇴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좌초 위기에 처했던 2기 특조위법 수정안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국회 농성과 여야 간 협상 끝에 통과됐다. 그러나 착잡하게도 이 협상은 매우 결정적인 후퇴들을 동반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조사 권한의 후퇴다. 2기 특조위법 원안에는 수사권이 제한적으로나마 포함돼 있었다. 수사권 대신 ‘사법경찰권한’(검찰 수사권보다 한 단계 낮은, 경찰이 발동할 수 있는 수준의 수사권)이, 기소권 대신 ‘특검 후보 전원 추천 권한’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여야는 이 핵심적인 두 조항을 삭제하고 법안을 통과시켜 버렸다. 권한 측면에서 1기 특조위와 다를 바 없는 안이 통과된 것이다.

또, 유가족들은 민주당이 전체 특조위원 중 3분의 2를 추천하고 자유한국당은 이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길 바랐다. 그러나 민주당은 9명 중 4명을 추천하고, 민주당 소속이지만 우파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국회의장 몫을 하나 넣었다. 자유한국당이 9명 중 3명이나 위원을 추천한다. 조사 기간도 ‘기본 2년, 필요시 1년 연장’에서 ‘기본 1년, 필요시 1년 연장’으로 후퇴했다. 기존재판에서 판결이 완료된 경우 서면으로만 추가 조사할 수 있게 했고, 상설 특검도 후퇴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뻔뻔하게 이 법안의 통과를 대단한 성과라며 자화자찬한다.

유가족들이 얼마나 씁쓸한 마음으로 이 법안을 받아들였을지는 이해가 간다. 지난 4년 가까이 ‘말 안 듣는 국회’와 ‘권한 없는 특조위’를 애타게 바라보며 먼 길을 돌아왔는데, 정권이 바뀐 뒤에도 또다시 비슷한 특조위를 받아든 것이다.

국가와 체제에 항의하는 운동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은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식에서 국회에서 법 통과가 안 돼도 대통령 권한으로 특조위를 재가동시키겠습니다” 하고 약속했다. 유가족과 많은 사람들이 크게 환영했다.

그런데 문재인은 집권 후 몇 달 안 돼 “국회를 믿는다”며 공을 넘겼다. 난관이 뻔히 예상되는 국회로 말이다. 이는 분명한 약속 위반이자 후퇴였다. 그리고 우려대로 2기 특조위법은 너덜너덜해졌다. 정부는 오히려 배신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해경을 부활시킨 뒤 기획조정관(해경 서열 3위)에 참사 당시 해경 대변인 고명석을 앉혔고, 침몰 사실을 접수하고도 ‘가만히 있었던’ 해경 경비과장 여인태를 수사정보국장으로 승진시켰다. 이외에도 해경이나 정부 소관의 특수법인 내에 남아 있는 책임자들은 많다. (관련 기사: ‘세월호 약속 어기는 문재인 정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희망은 왜 가라앉았나 세월호 침몰의 불편한 진실’ 편

그나마 남는 건 이전 정부처럼 특조위를 방해하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일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당이나 바른당, 국민의당에 대한 비판에 더해서 문재인 정부나 (‘박주민 법’이라고도 불린) 2기 특조위법의 큰 후퇴에 대해 운동 안에서 지적하는 흐름이 거의 없다.

박근혜

세월호 참사는 무한 이윤 경쟁 체제인 자본주의와 그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 낸 참사다.

박근혜 정부는 참사 이후에도 참사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삶과 가족애 따위는 안중에 없이 친기업적 방향성을 여전히 밀어붙이려 했다. 그래서 거리로 나온 유가족을 보상금이나 바라는 ‘돈벌레’, “세금 도둑” 쯤으로 모욕하고 탄압하는 한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세월호를 지우기 위해 진상 규명을 악랄하게 방해했다. 당연히 책임자 처벌 시도도 가로막았다.

그 칼끝이 박근혜와 고위 관료들을 향할 것이 뻔했고, 반복될 안전사고 처리에 선례로 남아 국가관료들과 기업주들을 불편하게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는 2015년 7월에 ‘세월호 인양, 진상규명, 안전사회 대안 마련과 추모 지원을 위한 82대 과제’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 ‘과제’들을 보면 기업주의 이윤을 위협하고 정부의 공적 투자를 강제해야만 가능한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선박 안전의 개선 대책, 규제 완화 정책의 타당성 점검, 공공부문 민영화의 대책 강구, 안전의 주체로서 노동자의 권리 보장 등. 산업재해에 관한 기업 책임 강화를 위한 산업부문별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돼 있다.

참사의 배경과 원인에 비춰봐도, 이런 과제는 박근혜에 맞서는 것으로 축소 환원되서는 안 된다(그래서 박근혜 음모론이 퇴행이고 문제였던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정권과 함께 5년마다 물갈이되는 청와대‍·‍행정부뿐 아니라 선출되지도 않고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권력들(사법부, 경찰과 군대, 국정원과 같은 정보 기관 등)로도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도 삼성의 이건희 같은 경제 권력(자본가들)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간에 국가를 향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이란 곧 자본가들의 이윤 지향과 투쟁하고, 그것을 수호하고 대변하려는 국가 권력과 투쟁하는 운동, 특히 노동자 운동과 연계돼야 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유가족들이 큰 공헌을 했지만, 아쉬움도 있다.

적폐 청산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로 계속돼야 한다 박근혜 퇴진 촛불 1주년 집회 ⓒ이미진

민주당

2014년 세월호 운동은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운동으로 첫 발을 뗐다. 당연히 지지받아야 했다. 다만 너무 진상 규명을 강조하려다 ‘밝혀진 진실이 아무것도 없다’는 식으로 자꾸 나가게 된 것은 아쉬웠다. 암묵적으로 책임자 처벌, 기업 규제 강화 요구 등은 특조위의 진상 규명 완결 이후 단계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가 특조위를 방해하고 해산시키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운동의 진도가 더딘 데에는 박근혜의 야비한 책략이 효과를 거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아쉬움에는 세월호 운동을 자꾸 폭넓은 정치 운동과 연결시키려 하기보다 특조위‍·‍선조위 등 조사위 설치 입법 요구로 한정시키려 NGO 개혁주의 전략도 한몫했다.

입법 요구로만 정치적 시야가 한정되니 야당의 협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아마도 운동 내 일부는 정권 교체와 이 운동을 연결시키려 생각한 듯하다. 그들은 그것이 운동의 정치화라고 여겼을 것이다. 주요 NGO 지도자들이 2014년에도 민주당의 배신적 후퇴를 수용하고, 유가족들이 몇 번이나 거부했던 바 있는 특별법을 성과라고 과장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해결이 박근혜 정권과 싸우는 정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과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돼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니 세월호 운동이 정권 교체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 선거정치는 민주당에 무비판적으로 의존할 것을 요구한다. 바로 그 점이 제2기 특조위 입법 문제에서 나타난 무기력의 배경이다. 이 정권이 약화되면 진상 규명이 요원해진다고 보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정치는 입법을 위한 동력이란 점에서 봐도 무력해지기 십상이다.

실제로 세월호 운동은 박근혜 정부와 여당의 방해뿐 아니라 민주당의 기회주의와 배신에 의해서도 번번이 눈물을 삼켰다. 2014년 특별법이 국회 여야 협상 과정에서 완전히 누더기가 된 것, 특별법이 보장한 특검이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채 물거품이 된 것, 인양 후 선체조사위 특별법이 여야 협상 과정에서 대폭 후퇴한 것 등.

지지

세월호 참사는 이 사회의 보통 사람들 누구나 불시에 겪을 수 있는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대형 참사는 배뿐만 아니라 건물, 도로, 지하철, 공장, 병원, 핵발전소 등 수많은 곳에 잠재해 있다. 이 때문에 세월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세월호 유가족의 억울함을 푸는 것이자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투쟁이다.

세월호 운동의 일부가 문재인 정부와 공조를 추구하며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는 사이에 또 다른 참사의 희생자인 스텔라데이지 호 실종자 가족들은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항의하면서 거리에 나와 있다. 큰 주목은 못 받고 있지만 말이다. (관련 기사: ‘스텔라데이지 호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 허경주 씨 인터뷰 ― “국가는 우리에게 가족의 생명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운동 내에는 문재인 정부에 맞서 싸우면 대중적 지지를 잃을까 봐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광범하고 단단하다. 그러니 걱정과 반대로 세월호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가 실망을 줄 때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어려워질 때일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운동, 특히 유가족들이 자신들이 피어린 투쟁으로 쌓아올린 광범한 지지와 권위를 문제 해결에 진지하지 않은 현 여권을 옹호하는 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에 한 배를 타려 하면 오히려 운동에 대한 열의와 지지, 신뢰가 깎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의 냉대‍·‍탄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워, 결국 박근혜 퇴진에 크게 기여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운동은 문재인 정부에게 더 나은 것을 요구하고 비판할 자격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11월 18일 오후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여의도 국회 앞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조승진

책임자 처벌, 지금 당장 가능하다

진실이 모두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누군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박근혜뿐 아니라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넣은 황교안과 우병우, 유가족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지시한 김기춘도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만들어야 한다. 이들을 뒤따라 수갑을 차야 할 해수부, 해경 책임자들도 한둘이 아니다.

문재인과의 만남 이후 한 유가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그들(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법안 통과에 적극적으로 협조할지도 의심되지만, 준비된 법안으로 범죄 혐의자들이 감춰 둔 증거물을 찾아내고 조사하는 것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대통령님께서 검찰에게 엄정한 특별 수사를 지시해 주십시오. 서울중앙지검에는 이미 탄원인이 제출한 고발장이 접수되어 담당 검사가 배당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대통령님의 결단에 따라 재수사 착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지적대로 책임자 처벌은 문재인 정부가 결단만 하면 당장 할 수 있다. 진상 규명의 주요 걸림돌이었던 자들을 처벌하고 권력에서 물러나게 한다면 참사의 진실을 찾고 비슷한 참사의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걸음도 한결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