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월〉 (낸시 사보카 감독, 1996년)

수십 년간 낙태 논쟁이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 돼 온 미국을 배경으로, 낙태를 둘러싼 세 가지 얘기를 풀어낸다.

〈더 월(If These Walls Could Talk)〉 낸시 사보카 감독, 1996년, 95분

데미 무어가 주연한 첫 편은 낙태를 처벌하던 1952년에 한 여성 노동자가 낙태를 결심하고 불법 낙태 시술을 받는 과정을 그렸다. “뒷골목 낙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서구 낙태권 운동의 구호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둘째 편은 경제 위기 시기인 1974년에 이미 네 아이를 낳은 여성이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아이를 더 낳아야 할지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셋째 편은 1996년이 배경이다.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한 대학생이 기독교도임에도 낙태를 결심하는 과정을 그렸다.

미국 기독교 우파들은 신념에 따라 안전한 낙태 시술을 해 주는 여의사를 총으로 쏴 죽인다. 그 장면은 우파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 줘 소름이 돋는다. 이것은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영화를 여러 번 봤지만, 볼 때마다 낙태 처벌 때문에 죽어 간 여성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백 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최미진


〈베라 드레이크〉 (마이클 리 감독, 2004년)

2차 대전 후 영국을 배경으로 한 〈베라 드레이크〉는 낙태가 불법이었을 때 가난한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현실적으로 보여 준다.

〈베라 드레이크〉 마이크 리 감독, 2004년, 125분

주인공인 베라 드레이크는 가난한 노동계급 가정의 가정주부이자, 여성들에게 직접 낙태 시술을 해 주며 그들이 최대한 안심할 수 있게 도와 준다.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그녀는 비눗물과 살균제를 고무관에 넣어 삽입하는 “하층민 방식”으로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술을 받은 여성 중 한 명이 중태에 빠지자, 주인공은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베라 드레이크는 “당신은 불법 낙태를 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경찰에게 “저는 단지 곤경에 빠진 그들이 다시 생리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줬을 뿐이에요”라며 흐느낀다.

영화는 150파운드를 지불하고 위생적인 클리닉에서 안전한 시술과 간호를 받는 부잣집 여성과 “36파운드짜리 컬러 TV”도 언감생심인 노동계급·하층민 여성들의 삶을 대조하며, 낙태가 계급 문제라는 점을 느끼게끔 한다.

한편, 강간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부잣집 여성이 클리닉을 소개받는 과정에서 “아이 아빠와는 어떤 관계죠? 가족 중의 정신병력이 있나요?” 따위의 부당한 질문을 받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도 보여 준다. 여성들이 낙태를 결심했을 때, 원치 않는 상담을 받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여성의 몸은 국가도, 남편도, 의사도 아닌 여성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2017년의 한국에서도 가난한 여성들은 낙태죄로 고통받는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영화 〈베라 드레이크〉는 낙태권 투쟁의 중요성과 노동계급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박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