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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동북공정과 한국의 민족주의 강화

중국이 대중화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역사 ‘재편’(대부분 역사 왜곡)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96년 시작한 하상주단대공정, 2003년부터 본격 추진한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 2002년 추진된 동북변강역사와 현상계열 연구공정(일명 동북공정) 등이 그것들이다.

하상주단대공정은 하··주 고대 3왕조가 중화민족의 원류임을 밝히는 사업이다.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은 중국 고대 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뜻으로,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알려진 3황5제 시대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이다. 동북변강역사와 현상계열 연구공정은 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하는 현상에 대한 체계적 연구 프로젝트다.

특히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은 요하(遼河) 일대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적들을 근거로, 인류 최초의 신석기 문화(홍산문화)가 거기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 지역에서 기존의 세계 4대 문명보다 앞서는 요하문명이 발원했고, 중화문명은 황하나 장강 유역이 아니라 바로 요하 유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한다. 중국 삼황(태호 복희, 염제 신농, 황제 헌원)의 한 명인 황제 헌원이 요하문명을 세웠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이 재구성한 역사 서술을 뒷받침하는 계획의 일부다.

이런 주장에 의거하면, 동북아의 인종이나 민족은 모두 바로 요하문명을 건설한 황제의 자손들이자 중화민족의 일부가 된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 고대 국가들이 중국 역사로 편입되고, 예·맥, 조선, 숙신, 동호, 선비, 몽골, 만주족 등 고대 부족들이 중국 황제의 후예로 규정된다. 이 때문에 중국의 동북공정이 처음 제기됐을 때 한국 역사학자들은 이것이 고구려 역사 빼앗기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도 있다.

동북공정, 그보다 먼저 실시된 일명 ‘서남공정’과 ‘서북공정’을 주관하는 곳은 중국사회과학원 산하의 변강사지연구중심이다. 이 연구중심은 중국 국경 지역의 안정을 위해, 그 지역의 역사와 민족은 고대부터 중국의 역사였고 중화민족의 일부라는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입증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티베트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서남공정과 위구르 지역과 내몽고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서북공정은 분리독립 움직임이 강한 이 지역이 고대 때부터 이미 중국의 일부였다는 논리를 개발하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북공정은 동북 지역이 모두 중국 영토라는 주장을 정당화하면서 만일에 벌어질 북한의 격변에 대비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2005년부터 이 지역 조선족들에게 삼관교육(三觀敎育)을 실시하고 있다. 조선족의 조국은 중국이고(조국관), 조선족은 중화민족의 일부이며(민족관), 조선족 역사는 중국 역사의 일부(역사관)라는 것이다.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이나 동북공정(과 서남공정 및 서북공정)은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의 일부로 삼아 그 존재까지도 부정하는 제국주의적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역사로 변신한 신화

중국의 제국주의적 역사 해석에 대한 반발이 한국에서는 또 나름의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으로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요하문명(홍산문화)은 모두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과 비슷한 조상이 일군 것이고, 지금까지 중화문명으로 알려진 황하문명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곰 숭배 전통과 유물로 나온 옥 귀고리(옥 귀고리는 한반도에서 출토됐다) 등을 제시한다.

또한 중국 동북공정에 반발해 한국의 일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한민족 최초의 실재했던 국가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쳤다. 심지어 역사학계에서 이미 위작(僞作)으로 판명 난 《환단고기》까지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단군의 고조선을 이었다고 하는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자가 중국인 망명자 출신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단군의 고조선이 실재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동이었냐 평양이었냐, 아니면 요동이었다가 평양으로 이동했느냐 등을 둘러싼 논의가 있는 것이다. 이 논의에는 현재의 만주 지역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현재나 미래의 영토 분쟁에서 유리할 것이냐는 계산이 깔려 있다.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쓰는 ‘오천 년의 유구한 역사’라는 표현에는 단군을 한민족의 시조로 여기는 사고가 스며 있다. 이런 단군 신화는 한민족의 일체감을 강조하고 내부의 계급적 분열을 방지하고 대외의 (잠재적) 적대 세력들에 대항해 민족적 단결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배자들에게도 유용하다. 이런 대표적 사례가 바로 북한이다.

북한 역사학계는 단군 신화를 고조선에서 정치 권력이 성립된 과정을 정당화하는 ‘건국 신화’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북한은 평양에 단군릉을 건축하면서 단군을 우리 민족의 ‘원시조’로 하고 그 중심지를 평양으로 삼았다. 또한 한국 고대사 관련 유적과 유물의 편년을 2000년 이상 상향 조정하고 사료적 가치가 의심되는 자료를 근거로 삼았다.

북한 지배자들이 단군릉을 성역화하고 민족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대동강문명이 세계 최대의 문명 발상지라고 주장한 것은 당시의 북한 처지 때문이었다. 1989년 동유럽 국가들이 몰락하고 1991년 소련이 붕괴했다. 1989년 천안문 항쟁 이후 중국도 불안한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클린턴 정부는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었다. 북한 지배자들은 체제 내 통합을 높이기 위해 민족주의를 강력하게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동북공정 이후

중국 동북공정이 한국에 미친 영향 중 하나는 단군과 고조선이 실재했고 심지어 동북아를 주름잡던 거대한 제국이었다는 민족주의적 주장이 한국 역사학계에서 강화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지식인들의 태도 변화다. 중국사 연구자 윤휘탁은 이렇게 주장했다.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중국은 우리에게 미국을 대신해서 우리의 미래를 같이 짊어지고 나아갈 ‘전략적 동반자’ 내지 ‘대안적 국가’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북공정 문제는 우리의 대중국 인식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하여 우리 사회에 ‘중국 위협론’을 느끼게 한 반면, 미국의 대한반도 내지 동북아 전략에 청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 재구성은 분명 중화민족(그 핵심은 한족)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적 역사 서술이고 소수민족들의 민족자결권(분리독립을 포함)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제국주의적 역사 재구성은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중국의 제국주의적 역사 재구성을 비판한다고 해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조금이라도 진보적이거나 긍정적 의미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 한국은 20세기 초반과 달리 제국주의에 억압당하는 민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지배자들이 오늘날의 근대 국민국가를 고대 문명에까지 투영시키는 것과 똑같은 논리로,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학도 단군신화와 고조선을 바라보고 있다.

좌파도 이런 민족주의 열풍의 영향을 받고 있다. 우려스럽게도 민족주의가 불가피한 현실임을 받아들이자면서 국민이나 민족적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한 ‘국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좌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이나 일본 또는 한국이나 북한은 수천 년 전의 수많은 부족(이나 그들이 세웠다는 국가 체계)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동이(東夷)라는 것도 한민족의 조상이기보다는 동북아 지역에 거주하던 여러 부족을 포괄해 부르던 용어다. 따라서 동이가 오늘날 한민족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민족이 단일 혈통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

오늘날 중화민족이나 한민족 등은 모두 근대의 산물이다. 이것들은 근대에 등장한 국민국가가 자국 영토 내에 있는 모든 민족과 인종을 통합시킬 목적에서, 그리고 계급 갈등과 소수민족 분리를 억제할 목적에서 만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역사 재편에 반대하면서도 (좌파)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이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볼 때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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