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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전면 금지법 No”를 외치는 브라질 여성들

11월 중순 브라질에서 낙태 선택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11월 9일 브라질 우파 가톨릭 성향 의원들이 낙태 허용 예외를 모두 불허하는 수정안을 발의하는 폭거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생명권은 잉태 순간부터 침해받아선 안 된다’는 조항이 삽입된 그 법안은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브라질 의회 산하의 한 특별위원회에서 이 법안은 18대 1의 지지를 받으며 발의됐다.

리우 데 자네이루, 상파울루 등 14개 도시에서 일제히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여성들은 ‘PEC181 NO!’(낙태금지 법안 반대) 팻말을 들고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며 행진했다. 경찰은 최루가스를 쏘면서 진압에 나섰지만 여성들은 힘차게 행진했다.

11월 13일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며 행진하는 브라질 여성들 ⓒ출처 Estela Andrade

낙태권 투쟁

세계 최대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은 한국처럼 낙태를 형법상 범죄로 다룬다. 1940년부터 두 가지 경우(산모 생명의 위험, 강간에 의한 임신)를 제외한 모든 낙태가 처벌 대상이었다. 기막히게도 여성은 합법적인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반드시 경찰 조사를 받아야만 한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수많은 브라질 여성들이 불법 낙태 수술을 받으며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5년 이래 브라질에서 안전하지 않은 시술로 공식통계로도 자그마치 여성 9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많은 브라질 여성들이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며 투쟁해 왔다. 브라질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낙태권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립 진료소에서 안전한 시술을 받는 부유한 여성들과는 달리 라틴아메리카에서 수많은 가난한 여성들이 불법 시술로 목숨을 잃었다. 주요 도시 빈민가의 진료소에서 많은 여성들이 상당한 돈이 들고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은 수술에 목숨을 걸고 있다.

2003년 브라질에서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자 기대감 속에서 낙태금지법 개정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나 대통령 룰라는 낙태 금지를 고수하는 가톨릭과 우파 정당들에 굴복했고 낙태금지법은 존속됐다.

그러나 낙태권 운동은 중단되지 않았다. 2012년에는 무뇌아 낙태를 허용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16년은 브라질 낙태권 운동에서 전환점이 된 해였다. 지카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는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를 허용해 달라고 피끓는 절규를 계속했다. 급기야 2016년 말 기존의 낙태금지법이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고, 낙태 금지 예외에 ‘무뇌아 임신의 경우’가 추가됐다. 이 판결은 폴란드와 아일랜드 등에서 강렬하게 벌어진 낙태권 운동의 국제적 여파이기도 했다.

그러나 브라질 우파들과 가톨릭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브라질 노동자당 소속 대통령이 탄핵된 후 우파의 준동이 계속되고 있는 터였다.(관련 기사: ‘브라질 노동자당 소속 대통령의 탄핵 : 노동계급의 이익을 못 지켜 우파의 정치 공세도 못 막다’)

우파들은 대법원 판결에 반발해 기존의 예외조항마저 인정하지 않는, 순도 100퍼센트의 낙태 금지법을 수정안으로 발의했다. 항의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이 “강간은 나의 권리가 아니다”는 팻말을 들고 시위한 까닭이다. 최근 유엔 산하 한 기구도 이번 수정안을 “여성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들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성폭력 피해 여성 또는 취약계층 여성은 이중 처벌을 받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브라질 우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낙태전면금지법을 추진할 태세다. 브라질에서 낙태 금지는 우파를 결집시키는 일종의 코드명이 되고 있다. 의회에서 낙태전면금지법을 발의한 우파는 지난해 12월에는 공공지출을 20년간 동결하는 법안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리고 공공지출 동결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법과 연금 개악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2018년 각종 복지예산을 삭감한 트럼프가 낙태권을 공격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트럼프는 “세계적 금지 명령”, 즉 낙태 관련 정보 제공 활동을 벌이는 자선단체에 지원금을 끊고, 낙태 합법화의 상징인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 했다. 마침 브라질 대선 주자로 떠오른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연방하원의원이 트럼프를 ‘나의 롤 모델’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 자도 낙태전면금지법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다.

브라질 우파들의 낙태전면금지법 추진은 여성들의 권리를 짓밟을 뿐 아니라 복지 삭감 등 노동계급 전반에 대한 공격의 일환이다.

출산과 낙태에서 여성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가장 옳은 해결책이라는 진리는 브라질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낙태 전면 금지를 추진하는 브라질 우파의 폭거는 반드시 좌절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