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와 개신교의 우파가 최근 낙태죄 폐지 찬성 여론과 ‘사회적 공론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낙태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천주교 쪽 낙태 반대론자들은 정의당의 심상정과 이정미 의원이 가톨릭 “생명 윤리”에 어긋나는 낙태죄 폐지를 지지했다며 신자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가 ‘독립된 인격체’이므로 “낙태는 살인”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그리스도교 우파는 “임신된 아기의 생사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 범위 밖”이고, “낙태는 유아를 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강간에 의한 임신,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유전될 수 있는 상황,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 아주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한 모자보건법조항조차 폐지하라고 2000년에 입법 청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낙태권은 여성의 삶을 스스로 계획할 수 있기 위해 꼭 필요하다. 따라서 낙태죄 폐지와 낙태권을 성취하려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이 대립되지 않는다며 쟁점을 피하기보다 태아의 생명권 논리를 분명히 반박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 낙태 권리는 여성해방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미진

태아는 독립적 인격체가 아니다

태아는 인간이 될 잠재력을 가진 생명이지만, 독립된 인격체는 아니다. 태아는 모체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태아가 ‘권리’를 지닌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태아에게 생명권이 있다면 여성의 몸은 그저 태아가 살아가는 환경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되게 된다.

태아가 시간이 지나면 인간이 되기 때문에 낙태가 살인이라는 논리는 단순한 비약이다. 이런 논리를 따르면, 도토리를 밟는 것은 상수리 나무를 죽이는 것이고, 달걀을 깨는 것은 닭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게 된다.

태아가 인간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이유로 권리를 누려야 한다면, 배아와 수정란도 모두 생명권을 가진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수정란이 인간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된 인격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는 궤변이다. 인간의 모든 체세포에는 인간 유전자가 있다. 그러면 체세포를 없애는 것, 예를 들어 각질을 제거하고, 손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뽑는 등의 행위도 모두 살인이라는 말인가?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 시술기가 자궁 안으로 들어왔을 때 태아가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동영상을 보여 주며 낙태에 대한 죄책감을 부추긴다.

1984년 미국에서 제작된 낙태 반대 영화 《소리 없는 비명》이 한국에서 성교육 자료로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이 영상은 의도적으로 조작됐음이 밝혀졌다. (〈한겨레〉 2017년 9월 12일치 “죄책감 갖게 만드는 부정확한 성교육…‘낙태의 진실’ 호도”)

미국 산부인과학회는 임신 6개월 이내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움직임도 특정 자극에 대한 반사반응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태아의 인지능력과 식별능력은 대뇌 피질과 신경, 신경전달물질인 호르몬 등이 발달해야 생기는데, 이는 임신 후기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영국 왕립대학교 산부인과 연구진도 태아는 6개월이 되기 전까지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임신 후기에서 출산 전까지 태아가 인간과 유사하게 발전하지만, 그럼에도 흔히 말하듯 ‘독립적으로 생존 가능한’ 존재라고 볼 수는 없다.

태아의 생명권 논리는 ‘생명 존중’이 아니라 여성의 결정권을 부정하는 논리이다. 모체에 완전히 종속된 태아를 제거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임신한 여성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낙태가 생명경시 풍조 조장?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를 허용하면 무분별한 낙태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낙태 반대론자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면서, 낙태 불법화 때문에 여성들이 생명까지 위협받는다는 사실은 깡그리 무시한다.

보수 우파들이 ‘생명 존중’ 운운하며 낙태를 반대하는 것은 위선이다.

미국에서는 반낙태 우익들이 낙태 시술소를 공격해 불을 지르거나 여성과 의료진을 살해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중동 등지에서 수많은 민중을 학살하는 전쟁을 치른 미국 지배자들 중에도 낙태반대론자들이 많다.

가톨릭과 보수 개신교는 ‘생명 교리’를 내세워 낙태를 반대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낙태 입장은 역사적으로 변모해 왔다. 태아를 온전한 인간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수정란도 생명이 있다고 천명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본지 216호 ‘낙태의 역사 ─ 원시 사회에서 자본주의까지’ 기사 참고)

한국 천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간생명의 불가침성에 대한 회칙’ 〈생명의 복음〉을 낙태 반대 교리로 삼는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는 칠레의 피노체트 같은 군사 독재 정권들을 옹호한 반면, “기초공동체(민중 교회)”와 “해방신학”을 비난하고 징계한 보수적인 전통주의자다.

낙태를 죄악시하는 천주교와 보수 개신교는 정작 박정희 정부가 1960~70년대에 실시한 산아제한 정책은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국가는 인구가 많으면 경제 성장률을 낮춘다며 여성들에게 피임과 낙태를 공공연하게 권장했다. 1970년대에 성가병원 같은 가톨릭계 병원에서도 하루에 수십 건씩 낙태 시술을 진행했다.

낙태는 여성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추상적인 ‘생명 윤리’와 ‘도덕’을 앞세워 낙태를 반대하는 것은 모순투성이고, 흔히 우파의 위선적인 사회 통제 시도에 이용된다.

‘태아의 생명권’ 운운하며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여성을 독립적 인격체로 보지 않는 수구반동적인 주장이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없이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더더욱 무책임한 것이다.

여성이 임신이나 출산 같은 재생산 문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여성 해방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낙태권은 여성 해방을 위해 꼭 쟁취해야 할 핵심 요구이다.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태아 생명권” 논리에 위축되지 말고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라며 당당하게 여성의 낙태 결정권을 옹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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