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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유연화가 경제를 살린다는 건 거짓말

정부와 사장들은 경제 회복을 위해 노동 시장 유연화가 필요하고, 그래야 일자리가 늘어나 노동자들에게도 이득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노동 시장 유연화에 반대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편협한 이기주의자들이 된다.

그러나 OECD 국가들 가운데 임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스페인 ― 2위는 한국 ― 의 경험은 이러한 주장이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스페인은 10여 년에 걸쳐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8년 동안 19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고, 1977년에 5.1퍼센트였던 실업률은 1984년이 되자 20퍼센트를 넘어섰다.

기업주들은 노동 시장 유연화 압력을 강화했고, 결국 1984년에 스페인 정부는‘노동자지위법 개혁’조처를 통해 모든 형태의 임시직 고용 계약을 제한 없이 허용했다. 그 뒤 정규직 고용의 증가는 정체한 반면, 임시 기간제 고용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새 노동법 시행 이후 스페인에서는 196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는 경제 회복이 있었지만, 실업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1990년이 돼도 실업률은 15퍼센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세계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스페인 경제도 다시 추락했다. 1993년이 되자 실업률은 다시 24퍼센트까지 치솟았고, 실업자 수는 3백70만 명에 이르렀다.

임시직이 늘어난 덕분에 기업들이 조그만 경기 하강에도 가차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자 스페인 정부는 상용노동자들을 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게 만드는 법안 개혁을 추진했다. ‘정당한’ 해고 사유 범위를 대폭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결과는 정규직이 임시직으로 대체되는 것이었다. 1996년에 신규 채용된 노동자들 중 무려 96퍼센트가 임시직이었고, 임시직 고용의 70퍼센트가 3개월 미만의 단기계약이었다. 1년 이상의 기간제 고용은 0.4퍼센트에 불과했다.

실업률도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1996년 말까지도 전체 노동력 인구의 21.7퍼센트에 이르는 3백49만 명의 노동자들이 실업자 상태였다.

2000년 현재 스페인은 전체 노동자의 30퍼센트가 넘는 3백18만 명의 노동자가 임시직이다.

1998년 노동법이 개악된 후 한국에서 진행된 상황은 스페인과 매우 유사하다. 1998년 파견근로제 도입 후 한국에서도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때때로 부분적인 경기 회복이 있었지만, 비정규직은 줄지 않았다.

〈중앙일보〉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50대 상장등록사의 영업이익은 1백15퍼센트, 당기순이익은 세 배 이상 늘었지만, 직원 수는 오히려 줄었다.

노무현은 비정규직 채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비정규직 개악안을 추진하려 한다. 그리고 머지 않아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추진할 것이다.

스페인의 경험은 더 늦기 전에 ―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 투쟁에 나서는 것만이 진정한 대안임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