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다룬 연재의 두 번째 글이다. 앞으로 오늘날의 민족 문제, 한국의 민족 문제 등을 다룰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국제주의를 지향한다. 서로 다른 민족의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나란히 앉아 일하듯,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계급이 민족 차이를 뛰어넘어 단결해야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국제주의는 특정 민족(혹은 민족 문화)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에 반대하며, 특정 ‘민족 문화’에 일체감을 느끼지 않는다. 지난 연재에 썼듯 민족은 자본주의적 국민국가 구성 과정에서 생겨났다. 그래서 모든 민족(그리고 민족 문화) 안에서는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말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민족 억압과 해방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종류의 억압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특히 제국주의가 세계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이 되면서, 민족 억압에 맞선 투쟁은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적 단결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제국주의와 민족 억압

19세기 초 자본주의는 서유럽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는 (국민국가라는 그릇을 넘어) 소수 강대국들이 세계를 분할 지배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조선, 대만, 인도처럼 직접 식민 통치를 받는 경우도 있었고, 반(半) 식민 상태인 중국 같은 경우도 있었다.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팽창 끝에 열강은 지배 경계를 마주하게 됐고, 그 이후에도 상대방을 희생시켜 자신의 세력권을 넓히려고 항상 애썼다. 열강 간의 빈번한 무력 충돌은 체제의 일상적 특징이 됐고, 그 충돌은 결국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대학살로 이어졌다.

그런 경쟁에서 열강은 민족주의를 적극 활용했다.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노동계급이 더 많이 일하고 덜 저항하게 해야 했고, 전쟁터에서 싸우게 해야 했다.(‘우리 민족을 위해 나가 싸워 저 민족을 죽여라!’)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한 싸움에서 학살당했다.

열강은 식민지 지배에 민족적 차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영국 지배자들은 인도를 종교에 따라 분열시켰고,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에 맞선 저항을 꺾기 위해 유럽 유대인들의 이민을 부추겼다.

억압하는 민족의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반동적이었고, 조금치의 좋은 요소도 없었다.

한편,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런 제국주의의 멍에 때문에 억압받는 국가에서도 민족주의가 성장했다. 열강은 식민지를 가혹하게 억압하며 자본주의로 끌어들였고, 식민지 대중은 천대받았다. 그런 민족 공통의 경험은 자본주의 이전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민족적 후진성에 대한 중간계급의 이해관계와 노동자·농민의 이해관계는 달랐다. 전자, 즉 중간계급이 피억압 민족주의의 동력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식민 지배 국가들처럼 강력한 국민(민족)국가로 만드는 것을 민족 억압과 후진성을 극복할 유일한 수단으로 보았다. 그들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부르주아가 그랬던 것처럼) 온갖 수단을 동원해 ‘민족 전통’을 창조(‘발굴’)했지만, 그저 식민 지배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적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전에는 없던 민족(주의) 개념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농민도 민족주의의 대의를 어느 정도 공유했다. 후진적 사회에서 오랫동안 고통받고 제국주의 열강에게 가혹하게 착취당한 이들에게 민족주의는 불만을 저항으로 바꾸는 기폭제 구실을 했다.

그러나 후진성 때문에 아직 맹아 상태인 노동계급조차도 사회에 대한 일반적 불만은 신흥 ‘민족’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사회 형태나 ‘민족적’ 중간계급의 특권에 대한 불만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었다. 구체제의 지배자들이나 식민 지배국의 지배자들만 노동자·농민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복잡성을 띤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한 전략·전술을 발전시켜야 했다.

민족 해방 운동과 마르크스주의

민족 해방 운동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실천에 적용했던 마르크스주의자로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을 들 수 있다.

20세기 초 러시아는 폴란드, 조지아, 라트비아, 카자흐스탄 등 수많은 민족을 억압하는 제국주의 국가였다. 레닌이 보기에 억압하는 민족에 속하는 러시아 노동자들이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랬다. 첫째, 피억압 민족의 자본가와 중간계급이 자결권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자결권 자체를 반대한다면, 억압하는 민족의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자기 지배계급과 연대해 피억압 민족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반동적 민족주의가 쉽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억압하는 민족의 노동자들이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피억압 민족 노동자들과의 국제적 단결이 가능할 터였다. 그런 일은 억압하는 민족에 속한 노동자들이 자국 자본가들보다 피억압 민족의 노동계급에 대한 연대를 우선해야 가능하다.

레닌이 보기에 이런 태도는 국제주의자들의 의무였다.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은 자발적이어야 하므로, 진정 민주적이려면 노동자들이 독립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했다.(결혼할 자유가 있다면 이혼할 자유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자결권은 민주주의 원칙과 직결된 문제였다.

민족 해방 투쟁이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계급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점도 중요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지배자들이 위기에 빠지는 것은 노동계급의 국제적 투쟁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터였다. 레닌은 이렇게 지적했다. “사회주의 혁명은 각국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자국 부르주아지에 맞서 싸우는 투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 제국주의에 천대받는 식민지와 나라들의 투쟁으로 [일어난다].”(강조는 인용자)

이와 달리, 폴란드 출신의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민족 자결권(독립) 요구는 국제 노동계급을 민족에 따라 분열시킬 것이라 보았다. 이런 관점은 자본주의가 세계 체제이므로 노동자 해방도 국제적이어야 한다는 옳은 규정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했지만, 폴란드의 민족주의 운동이 반동적이었던 데서 영향받은 것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레닌은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민족주의’ 부르주아지들을 도와선 안 된다는 점에 골몰한 나머지 [국수주의 살인 집단] 러시아 흑색단을 돕고 있다”고 비판하며,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어떤 민족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동시에 레닌은 “부르주아적 [민족] 해방 운동을 마치 공산주의적인 양 보이게 하는 것”에 결연히 반대해 “어떤 상황에서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독립성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요컨대 레닌의 주장은 이런 것이었다. 노동계급은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며 민족 해방 투쟁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독립적 정치와 조직을 유지하며 그렇게 해야 한다.

이후의 역사를 보면 레닌의 관점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전세계에서 피억압 민족의 해방 운동을 크게 고무했다.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 역시 그런 민족 해방 운동 물결의 일부였고, 1919년 중국의 5·4운동은 그보다 더 멀리 나아가 수년 후 중국에서 노동자 혁명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이 노동자 국제주의에 이롭다 1919년 3·1운동은 러시아 혁명에 고무받아 분출한 수많은 민족 해방 운동 중 하나였다 ⓒ출처 상해 대한적십자회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

그러나 1927년 중국 혁명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소련이 제국주의 열강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강국(즉, 자본주의적 국민국가)이 돼야 한다는 스탈린의 정책은 중국 노동계급이 중국의 민족 자본가들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세우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바로 그 민족 자본가들을 대변한다는 국민당에게 중국 혁명은 학살당했다. 그 뒤로도 레닌이 반대했던 바로 그 길로 간 결과, 20년 뒤 중국 혁명은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정권 탄생으로 귀결돼 버렸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이런 일은 훨씬 빈번해졌다. 소련이 미국을 상대하려 세계 곳곳에서 민족 해방 운동을 이용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50~1960년대 제3세계 민족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운동과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했고, 국제주의에 정면 배치되는 자칭 ‘사회주의’ 운동이 곳곳에서 출몰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베트남에서 벌어진 민족 해방 전쟁은 미국을 깊숙한 정치 위기로 몰아넣고 세계적인 대중 반란을 촉발했으며, 알제리 독립 전쟁은 프랑스 지배계급을 크게 동요시켰다. 신생 자본주의 국가가 민족주의를 이용해 자본주의 발전의 초석을 닦은 것(예컨대 박정희)도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민족주의 분석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한편, 오늘날 민족 문제는 20세기 초와는 다른 새로운 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다음 연재에서는 이를 주로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