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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의 임금 양보는 해결책이 아니다

경총 부회장 김영배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규직 노조의 [임금] 양보도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정규직 고임금론’은 19세기 ‘임금기금설’의 현대적 변종이다. 즉, 노동자의 몫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규직의 몫이 늘어나는 만큼 비정규직의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임금 인상을 억제하여 끊임없이 애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수 년 동안 노동자의 상대적 몫은 계속 줄었다.

취업자 중 노동자 비중은 1998년 61.7퍼센트에서 2003년 65.1퍼센트로 증가했지만,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3.4퍼센트에서 2003년 59.7퍼센트로 하락했다.

반면, 부자들의 소득은 크게 증가했다. 2004년 10대 그룹 총수의 연간 배당금은 7백78억 원이었다. 전년보다 39.8퍼센트 증가했다. 현대차 회장 정몽구는 2백91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지난해 현대차의 순이익은 1조 8백41억 원이었다. 그 중 10퍼센트(약 1천5백억 원) 가량만 투자해도 1만 명의 현대차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

요컨대,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을 떼어간 것이 아니다. 사장들이 비정규직의 몫을 가로챈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시장경제가 부를 “흘러넘치게“ 해준다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뜻한다.

지난 몇 년의 경험은 경제 성장이 그 자체로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하지 않음을 보여 줬다. 오히려 더 악화됐다.

그럼에도 우리 운동 안에는 대기업 노동자의 상대적 고임금을 노동조합 채용 비리와 똑같은 ‘도덕성 타락’의 징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운동의 대의를 위해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상대적 고임금, 비교적 안정된 고용, 사내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은 사실이다.

5백 명 이상 대기업의 연평균 임금은 2천7백18만 원(2002년)이다. 10인 미만의 영세 기업 노동자(1천4백66만 원)보다 1.85배 가량 많다.

그러나 삼성전자 이사의 평균 연봉은 89억 7천만 원이다. 대기업 노동자 평균임금보다 자그마치 33배나 많다.

더구나 대기업 노동자가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잔업과 특근을 밥먹듯이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여전히 2천5백 시간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조차 노동생산성 향상이 노동시간의 증가 ― 마르크스가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불렀던 ― 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정규직화 중단 투쟁을 말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대기업 노동자 임금 양보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동시에 밟는 것이다.

그리 되면 결코 대기업 노동자의 투쟁을 고무할 수 없다. 그러나 투쟁 경험과 조직력이 있는 대기업 노동자들마저 싸우지 않는다면, 비정규직화 중단 요구는 실현 가망성 제로다.(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3.1퍼센트밖에 안 된다.)

무엇보다, 정부와 사장들이 노동자 일자리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운동이 뒷걸음질친다면, 저들의 공격은 탄력을 얻게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대기업 노동자 임금 인상이 비정규직 증가를 낳지는 않는다. 기업과 시장의 횡포를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증가한 것이다.

정부와 사장들이 노동자 일자리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기업과 시장의 횡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결정적 힘은 대기업 노동자의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