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제주도의 한 생수 제조회사에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나갔던 특성화고 이민호 학생이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이 끼이는 사고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1주일 뒤에는 불법파견의 온상으로 불리는 안산 반월공단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선임한테서 괴롭힘을 당해 회사 옥상에서 투신했고, 인천의 식품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이 손가락 3개가 절단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주 19살 고(故) 이민호 군을 추모하는 촛불 집회 ⓒ출처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그러자,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12월 1일 ‘직업계고(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종합고 직업반) 현장실습 개선방안’을 부랴부랴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하고, 3학년 2학기부터 실시하던 현장실습 기간을 3개월로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노무현 정부가 2006년에 내놓은 “간접고용 형태 산업체 파견을 금지하고 졸업 후 해당 산업체에 취업이 보장된 경우만 실시하라”는 개선안보다도 후퇴한 안이다.

무엇보다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만이 문제가 아니라 현장실습 자체가 문제다. 1997년 만들어진 직업교육촉진법은 “직업교육훈련생은 직업교육훈련과정을 이수하는 중에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받아야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직업계교 학생들의 현장실습이 의무화됐다. 이 법은 교육부와 노동부가 각각 따로 운영하던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을 연계해서 운영한다는 취지였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교육부는 노동현장의 문제로, 고용노동부는 교육의 문제라며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2016년 4분기 현장실습 산업체 155곳을 감독한 결과,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거나 연장·연차수당을 안 준 곳이 22곳으로 14.2퍼센트에 달한다. 2016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이 중소기업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특성화고 출신 취업률은 2012년 41.5퍼센트에서 2015년 62.6퍼센트로 증가했지만, 고용보험이 보장된 일자리 취업비율은 2012년 79.6퍼센트에서 2015년 58.8퍼센트로 급감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메인 기계를 만진다”, “살려줘. 너무 더워.”(故 이민호 학생의 카톡 내용) 그는 하루 7시간 근무하라는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도 무시당한 채 12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정규직원이 맡아야 할 위험한 업무를 홀로 감당해야 했다. 1월 22일 LG 유플러스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홍수연 학생도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다“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했다. 전공이 ‘애완동물’이었지만 전혀 무관한 곳에서 현장실습을 해야 했다.

이처럼 현장실습제도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 성희롱 등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그야말로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말이 횡행할 정도다. 더 나아가 2016년 5월 구의역 참사는 자본가들이 현장실습제도를 이용해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아 왔음을 잘 보여 준다. 당시 희생된 김모 군은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업체에 현장실습 형태로 취업한 뒤 구의역에서 홀로 작업하다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2016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발표를 보면, 현장실습 학생 중 30퍼센트 이상이 탈락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고통 속에서 현장실습을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오면 학교는 취업률이나 학교 이미지를 내세워 반성문을 쓰게 한다거나 벌을 주기도 한다. 교육부가 취업률로 학교를 평가해서 특별교부금을 차등해 지급하기 때문이다. 각 시도교육청이 만든 ‘학교평가 매뉴얼’에는 특성화고의 학교 역량을 판단하는 근거로 취업률이 명시돼 있다.

이명박근혜는 이러한 취업률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이명박은 2008년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실업계고를 특성화고로 전환시키면서 2011년 25퍼센트, 2012년 37퍼센트, 2013년 60퍼센트라는 식으로 취업률 목표치를 제시했다. 취업률에 따라 지원금을 달리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교는 통폐합시킨다는 계획도 밝혔다. 일부 특성화고를 마이스터고로 지정하면서 실제로 예산을 차등 지원했다. 2010년부터 5년 동안 취업률이 높은 마이스터고는 학교당 평균 82억여 원을 지원받았지만, 특성화고 지원 액수는 36억 원에 그쳤다. 취업률을 교장과 교사의 성과급에 반영하는 조처는 경쟁을 더욱 부추겼다.

직업계고 유형별 진로 현황 (단위 : 명, %)
근거자료/기준일 : KEDI 교육기본통계 / 2017년 4월 1일 기준
구분 졸업자 취업률 (취업자) 진학률 (진학자) 기타
제외 인정자 무직자 및 미상
마이스터고 5,067 93.0 (4,666) 0.7 (33) 48 320
특성화고 96,100 50.8 (48,486) 32.4 (31,156) 567 15,891
일반고 직업반 7,884 22.4 (1,756) 53.7 (4,231) 28 1,869
합계 109,051 50.6 (54,908) 32.5 (35,420) 643 18,080

박근혜 정부는 더 나아가 2013년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을 도입해 3학년 1학기에도 현장실습을 가능하게 개악했다. 이에 전국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종합고(직업반)의 83.8퍼센트(522곳)가 2학기 이전에 1만 6237명을 현장실습으로 내보냈다. 박근혜 정부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도 신설해 2학년 1학기부터 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직업훈련을 받는 제도를 도입했다.

직업계고 졸업자 진로 현황(‘09~’17년) (단위 : 명, %)
근거자료/기준일 : KEDI 교육기본통계 / 2017년 4월 1일 기준
연도 졸업자 취업률(취업자) 진학률(진학자) 기타 인원
2009 151,410 16.7 (25,297) 73.5 (111,348) 14,765
2010 156,069 19.2 (29,916) 71.1 (111,041) 15,112
2011 137,102 25.9 (35,228) 61.5 (84,288) 17,586
2012 128,969 37.5 (47,944) 50.8 (65,467) 15,558
2013 122,882 40.9 (49,937) 41.6 (51,083) 21,862
2014 125,017 44.2 (54,953) 38.7 (48,321) 21,743
2015 118,255 46.6 (54,021) 36.6 (43,285) 20,949
2016 114,225 47.2 (53,504) 34.2 (39,054) 21,667
2017 109,051 50.6 (54,908) 32.5 (35,420) 18,723

문재인 정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개선을 위해 ‘전공 적합성이 높은 산업체 현장 실습 실시’, ‘산업체 실습 현장 관리 강화’, ‘노동인권 교육 강화’를 약속했다. 8월 25일에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해 근로(조기취업)중심에서 학습(취업준비)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민호 학생의 죽음과 연이은 현장실습생들의 사고는 현장실습제도의 개선이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잘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11월 20일에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률이 17년 만에 50퍼센트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현장성 높은 기술·기능 인력 양성을 위한 우수 모델로 마이스터고와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를 추가적으로 도입한 것을 그 이유로 꼽았다. 여전히 이명박근혜 정부의 직업교육 강화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현장실습제도는 개선이 아닌 폐지가 답이다. 마찬가지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와 취업 맞춤반 사업도 폐지해야 한다. 오늘날 중등교육은 인문계고 학생에게는 노동과 유리된 추상적 수준의 지식 교육(압도적으로 입시 중심)을 중심에 두고, 직업계고 학생에게는 인문 사회적 교양을 충분히 발달시킬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반쪽짜리’ 인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적인 중등교육은 전문화된 직업교육이 아니라 ‘통합교육에 바탕한 전인교육’(안토니오 그람시)의 방향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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