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9기 임원선거 1차 투표 결과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득표율 46.5퍼센트)와 기호 2번 이호동 후보조(득표율 17.6퍼센트)가 결선에 올랐다. 두 후보조 사이의 표 차이는 컸다. 하지만 이호동 후보조가 결선에 오른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는 산별연맹들에 기반이 있는 국민파 성향 지도자들로 구성되고 전국회의가 지지한 팀이다. 조직력이 강해, ‘바람’이 불지 않는 투표 상황에서 더 유리할 수 있는 후보조다.

‘바람’이 불지 않은 1차 투표

이번 선거는 3년 전의 직선 1기 선거보다 훨씬 조용하게 치러졌다. 3년 전 민주노총 임원 선거 1차 투표 투표율이 62.7퍼센트였던 데 비해, 이번 선거 투표율은 54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3년 전에는 박근혜 정권의 남은 임기 동안 민주노총이 수행해야 할 주요 과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박근혜에 맞서 “투쟁하는 민주노총”이 되겠다는 한상균 선본의 공약은 77일간 쌍용차 공장 점거 투쟁 지도자인 한상균 위원장후보의 이미지와 부합하면서 기층 조합원 대중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이와 달리, 이번 선거는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이 모두 ‘바람’을 일으킬 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가 우세를 보인 주된 비결은 그 팀의 강점인 조직 기반이 표로 연결되기 쉬운 이 같은 상황 덕분이었다.

김명환 후보조의 우세를 “노사정 대화” 강조가 호응을 얻은 결과로 보는 것은 일면적일 것이다. 그것은 나머지 두 후보조(조상수 후보조와 윤해모 후보조)와의 공통점인데, 오히려 김명환 후보조는 ‘대화’ 쪽으로 기운 듯했던 자신의 선거운동 기조를 선거 중반 이후 ‘투쟁’ 쪽으로 미세 이동시켰다.

선거 운동 초기에 민주노총이 고립돼 있고 불신받는다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면, 중반 이후에는 투쟁 공약들을 보충해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꼼수 방안 비판, 최저임금 1만 원 조기 실현, 노동법 전면개정 투쟁본부 설립 등이 그것이다.

특히, 선거운동 기간에도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정규직 전환과 격차 해소 모두),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하면서도 제조업의 인력 감축 구조조정을 나 몰라라 한다는 것(한국 GM에서 보듯이), 집권 여당이 나서서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을 시도한 것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이런 일들의 영향을 받았을 투표 지지 기반을 지키기 위해 김명환 후보조는 기층 조합원 대중의 반응을 반영했을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이에서 일면적인 대화 강조가 별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기호 3번 윤해모 후보조가 10퍼센트 남짓의 지지율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친노동’이라는 환상, 노사정위 복귀,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서 민주당 지지도 열어 둬야 한다는 주장 등은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정부를 크게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전국노동자대회의 분위기에서도 드러났었다.


협소하지 않은 노동조합 좌파의 기반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는 이번 선거에 나온 네 팀 가운데 중도에 자리 잡은 후보조였다. 그들은 투쟁과 대화의 병행을 강조했다. 3년 전 선거에서는 정치적 양극화를 배경으로 노동조합 좌파가 지지를 넓혔다면, 이번 선거에서는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과 (그 어부지리를 얻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중도의 기반이 넓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기호 2번 이호동 후보조가 결선에 오른 것은 노동조합 좌파의 지지 기반이 결코 협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조합원들의 자신감이 그다지 낮지 않다는 것도 보여 준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기대가 그렇게 크지 않고, 지금 비교적 크다 해도 빠르게 깨지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이호동 후보조의 투쟁 강조가 ‘시대 변화’에 ‘뒤떨어지는’ 주장이 결코 아님을 뒷받침한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정부와의 ‘대화와 협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온건파들의 주장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가령 국회 환경노동위의 근로기준법 개악 시도는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가 사회적 대화에 국회 대표를 포함시키자고 제안한 것(‘8자대화’)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심지어 위험한지를 보여 준다. 김명환 후보는 “국회의 본질을 믿는다”고 했는데, 참으로 순진한 발상임이 드러난 셈이다.

또, 근로기준법 개악 시도를 집권 여당이 주도했다는 것은 기호 4번 조상수 후보조의 사안별 노사정 대화 제의가 허를 찔리기 십상일 것이라는 점도 보여 준다. 조 후보조는 필요한 사안별 대화의 사례로 노동시간 문제를 꼽았는데, 집권 여당 의원들은 대화는커녕 기습 개악 시도로 뒷통수를 친 셈이다.

다행히도 기호 2번 이호동 후보조의 결선 진출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적잖은 조합원들이 투쟁적 지도부를 원하고 있음을 뜻한다.


공공부문 조합원들의 정서

기호 4번 조상수 후보조는 위원장 후보가 현직 산별연맹 위원장이라는 이점을 쥐고도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득표율 16.6퍼센트). 조상수 후보조가 공공운수노조의 큰 지지에 힘입어 결선에 진출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지만 이런 전망은 빗나갔다.

조상수 후보는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시절의 성과를 부각하며 그 경험을 민주노총으로 확대하겠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신이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 등을 끌어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조상수 후보조의 이 같은 정책 방향은 그것을 먼저 경험한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상수 후보가 끌어냈다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이 점점 분명히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 초기에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이 정책에 대한 환상을 조장한 면이 있다.

게다가 공공운수노조 지도부가 제시해 온 양극화의 대안은 공공상생연대기금이나 청년 일자리 창출 방안 등에서 얼핏 드러났듯이 정규직 양보의 성격을 상당히 띠고 있다.

기존 공공운수노조 지도부의 정책 방향이 조합원들의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번 공공운수노조 임원 선거 결과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기존 집행부에 좌파적 도전장을 낸 기호 2번 엄길용 후보조가 무려 42퍼센트를 득표해, 기호 1번 최준식 후보조(득표율 47.1퍼센트)를 바싹 추격했다. 반면, 기존 집행부 계승을 표방한 기호 1번 최준식 후보조는 현직 공공기관 노조위원장들과 지역본부장들의 공개적 지지를 받고도 1차 투표에서 당선하지 못했다.

기호 1번 최준식 후보조는 민주노총 임원선거 기호 4번 조상수 후보조와 제휴하고 있었고, 기호 2번 엄길용 후보조는 민주노총 임원선거 기호 2번 이호동 후보조처럼 좌파 선본이었다.


기호 4번은 왜 실패했나?

기호 4번 조상수 후보조는 좌파가 ‘무능력’하다는 인상을 은근히 퍼뜨리며 자신이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을 정당화했다. 아마 좌파 진영의 표를 뺏어오는 한편 중간지대의 표를 흡수하려 했던 듯하다. 결과로 보면, 양면 노림수 모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투쟁과 교섭의 병행, 사회적 대화 추진을 강조하는 조상수 후보조의 정책 기조는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와 유사해 차이 긋기가 쉽지 않았다. 정치세력화 문제와 관련해 ‘정파운동이 아니라 조합원 중심(또는 민주노총 강화)’을 부각했던 것도 (정치와 정당이 모두 중요한 시기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조상수 후보는 ‘나는 특정 정파가 아니라 민주노총파다’라는 식으로 주장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다지 유리한 전술이 되지 못한다. 이런 논리의 ‘등록상표’ 또는 기득권은 기호 1번 측에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가 설득력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조상수 선본도 정의당 노동부문(중앙파와 인천연합의 일부), 사회진보연대, 전태일을 따르는 노동운동연구소 등 특정 정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좌파 측의 투쟁 강조를 대안 부재, 전술 없는 일점돌파, 한방주의인 것처럼 은근히 폄하한 것도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했던 듯하다.(이유는 필자가 위에서 설명했다.) 그런 투쟁성 깎아내리기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노동조합 기구들의 안착과 함께,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이 갈수록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아짐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이번 선거는 노동조합 좌파의 지지 기반이 결코 협소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자신감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러므로 특정 조건들과 맞물리고 좌파 측이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이 기반은 더 확대될 수 있다.

물론 혁명적 좌파는 그 속에서 자신의 전망과 지향 제시를 통해 노동자 투쟁 강화에 그 나름으로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