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불안정 상황을 둘러싸고 진보·좌파 내에서는 여러 쟁점이 불거지고 있다. 그중 가장 첨예한 쟁점의 하나가 바로 ‘북한 문제’다. 현 불안정에 북한이 미국과 남한에 못지 않게 책임이 있다는, 아니 더 크다는 주장이 있다.

〈한겨레〉 12월 7일치 신문에 실린 일본 국제기독교대 서재정 교수의 칼럼(‘내로남불’이 문제다)은 이 쟁점과 관련해 몇 가지 유용한 관점을 제시했다.  

서 교수는 힘의 우위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서 한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즉, “내가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로맨스’이지만 남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식 태도가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부른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여전히 적화통일을 추구한다? 

서 교수는 ‘내로남불’식 태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북한 측 대응을 “침소봉대”하는 것도 문제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북이 핵·미사일을 완성하면 미군을 몰아내고 적화통일을 추구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 정부 성명이 언급한 “영토완정”을 김일성의 “국토완정”과 동일시하는 것은 그 정점이다.”

그가 이런 주장들의 문제를 칼럼에서 거론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1월 30일 서 교수는 시민평화포럼·참여연대가 주최한 ‘트럼프 방한 이후 한반도 정세전망’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해, 토론자인 시민평화포럼 이승환 공동대표와 이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

이 토론회는 북한이 신형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에 열렸다. 이 대표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비관적 전망의 주된 책임을 미국과 한국이 아니라, 북한에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가 문제라고 얘기하지만, 핵과 관련해 북한이 오히려 대화와 협상의 문[턱]을 더 높이고 있는 게 객관적으로 현재 상황[이다.]

“미국 측이 ‘비핵화 전제→비핵화 언명→비핵화 진심’ 등으로 계속 협상의 문턱을 낮추고 있는 반면, 북한은 ‘전제조건 없는 대화→비핵화협상 불가’ 등으로 협상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물론 이 대표도 한국(과 미국) 측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는 했다. 그러나 이는 북한 핵무력 강화의 “명분” 내지 “빌미”를 줬다는 정도의 문제였다.

이 대표 주장의 정점은 이른바 ‘영토완정’론이었다. 그는 미사일 발사 직후에 북한이 발표한 성명에 “영토완정”이란 표현이 들어간 데 주목했다. “영토완정”이 1950년 한국전쟁의 배경이 된 김일성의 “국토완정”(국토통일) 노선과 같다는 것이다. 거기에 북한의 “조국통일대전” 주장까지 결합되면 불길하다고 말했다.

즉, 북한이 “현상 유지”가 아니라 “공세적 대남정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서재정 교수의 비판대로 이승환 대표의 주장은 ‘내로남불’이자 침소봉대다.

북핵 협상이 재개되지 않는 주된 책임을 북한에 묻는 것은 현 긴장 상황에 대한 완전히 전도된 인식이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지금의 한반도 불안정은 근본에서 미국 역대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이 누적적으로 쌓인 결과다.

거기에 더해, 트럼프가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며 북한을 상대로 “최대한의 압박”을 가해 사태를 크게 악화시켰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을 위협하는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를 강화하고 “북한 완전 파괴” 운운하는데, 미국보다 “협상 문턱을 높인” 북한이 더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17년 현재 북한이 “영토완정”, 즉 적화통일을 진지하게 추구한다는 말은 우익의 냉전주의에 부화뇌동하는 말로 들렸다.

오늘날의 한반도는 1950년과는 많이 다르다. 당시 북한은 스탈린의 재가로 소련의 군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의 세력 관계에는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소련은 해체됐고 남·북한 간의 경제력 격차는 뒤집혔다. 서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의 경제 규모가 북한의 45배이고 북한이 한국의 국방비를 따라잡으려면 정부 예산의 5배를 지출해야 할 형편이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핵무기로 공격할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세력 관계 속에서 북한 국가는 “국토완정”은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이 대표의 주장은 이런 현실을 애써 무시했다. 한·미 군사력에 견줘 “압도적인 힘의 열세”에 처한 점이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매달리게 한 주된 원인일 것이다.

북·미 공평무사 양비론으로는 11월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 같은 임팩트 있는 평화 행동을 건설하기 어렵다 ⓒ조승진

비판적·성찰적 평화 운동?

11월 30일 토론회에서 이승환 대표는 “비판적·성찰적 평화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비판과 성찰은 진보 일각의 북한 핵 지지를 성찰하고, 북한 핵을 반대(비판)하는 평화 운동을 건설하자는 의미다.

물론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국제 노동계급의 반제국주의적 단결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 압박에 대한 비효과적인 대응이다. 북한이 사회주의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임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북한 핵을 비판해야 대중적 평화 운동 건설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니다. 북핵에 반대해 대중운동을 건설하자는 주장은 대중의 (지배계급의 생각이 투영된) 상식에는 부합해, 후진적 대중의 수동적 공감 정도는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체제 순응적 정치로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중 운동을 건설하기 어렵다. 자국 정부의 친제국주의·군국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기(전쟁)를 야기하는 동역학은 도외시하고 북한의 ‘도발’만 문제 삼는 발상은 (냉전주의와도 구분하기 힘든) 조국방어주의가 진보·좌파 내에 스며들 여지를 준다. 이승환 대표의 주장은 그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 줬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반도 불안정이 근본에서 미·중 갈등의 고조, 즉 제국주의 간 갈등에서 비롯한 것임을 봐야 한다.

진보·좌파가 건설해야 하는 평화 운동은 제국주의 및 한국의 친제국주의·군국주의 정책을 반대하는 운동이다. 즉, ‘우리’ 국가에 대항하는 운동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