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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이석기 등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

문재인 정부가 내년 초 특별사면을 시사했다. 12월 6일 7대 종단 지도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시국사범 관련 사면 대화를 나눈 지 하루 만에 나온 입장 표명이다.

이 오찬에서 김희중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설정 조계종 총무원장이 각각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진보당 의원의 성탄절 특별사면을 요청했다.

박근혜 파면의 결과로 등장한 정부라면, 박근혜가 저지른 악행으로부터 원상 회복부터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다. 파업으로 해고된 최승호 전 PD가 MBC 사장으로 복직해 첫 조처로 해고자를 복직시킨 것이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주고 사기를 높이듯이 말이다. 문재인 자신도 지난해 재판부에 내는 한상균 석방 탄원서에 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문재인은 종단 지도자들의 당연한 요구에 즉답을 피했다. 그리고 다음날 청와대가 내놓은 특별사면 가이드라인은 실망을 자아냈다. 특정일(성탄절)에 사면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건 아니고, 시국사범 사면은 법무부에서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시국사범 성탄절 특사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대신 정치인과 기업인은 사면하지 않겠다고 했다(당연한 걸 갖고 생색낸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시국사범을 사면하는 것은 촛불 민심이었고, 광복절·성탄절 등에 대통령이 양심수 특사를 해 온 관행도 오래됐다. 그러므로 광복절에 이뤄지지 않았던 특사를 성탄절에 기대했던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답변은 촛불 염원에 은근히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특정 날짜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면, 취임 후 지금까지 시국사범 사면을 언급조차 안 한 것은 대통령에게 그럴 의지가 없었기 때문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조승진

한상균·이석기 구속과 평화적 집회 참가자들을 범법자로 만든 일이 박근혜의 악행이라면, 그 문제들이 지금껏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문재인 정부 탓이다.

시국사범들이 성탄절 특사로 풀려나거나 복권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는 정부가 불러낸 것이기도 하다. 11월 하순,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진 주요 운동 참가자들 전원의 특별사면을 검토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는 사실이 일제히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이때는 취임 후 문재인의 높은 지지율 유지의 일등 공신이던 적폐 청산 수사가 우파들의 여러 반격 속에서 주춤거릴 때였다.

대상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집회 ▲서울 용산 화재 참사 관련 시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집회 ▲세월호 관련 집회 등 5개였다. 주로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의 강경한 추진과 과잉 진압 등으로 문제가 됐던 투쟁들이다.

공교롭게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과 연대 집회 건은 빠져 있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적폐 청산은 거의 없거나 더디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처럼 민주적 권리 문제이자, 대통령 지시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에서도 그렇다.

자본가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합심해 박근혜를 지지·지원한 것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강경하게 추진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박근혜가 ‘쉬운 해고, 임금 삭감’의 노동 개악을 강행한 이유다. 그들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 고조에 대응해 ‘내부의 적’도 단속해야 했다. 민주적 권리도 약화시켜야 했다.

한상균·이석기 구속의 정치적 목적들이 이것이다. 임기 첫 해에 국정원 대선 개입이 발각돼 정통성이 손상된 박근혜가 친북 경향을 제물 삼아 안보를 부각시키고 노동계의 좌파적 정치를 위축시키려 한 것이 진보당 해산 사건이었다.

한상균 위원장은 바로 이런 반동에 맞서는 투쟁을 이끌려고 했다. 결국 그가 구속된 후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이 도화선이 돼 퇴진 촛불이 터져나왔고 마침내 민중이 박근혜를 침몰시켰다. 그래서 저항의 지도자로서 또 국가 탄압의 피해자로서 한상균 석방은 퇴진 촛불의 광장에서도 광범한 지지를 받은 요구였다.(온건한 개혁주의자들이 한상균 석방 요구 채택에 반대하고, 한상균 위원장 자신이 자신의 석방을 내걸지 말라고 주문했지만 광장의 정서는 달랐다.)

결국 경제·안보 위기로 초조해진 지배계급이 가장 민감해 하는 노동 쟁점, 정치·사상의 자유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가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시국사범 특별사면이 지지부진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시국사범 전원 사면·복권을 믿기 힘든 것처럼 친노 정치인과 이재용 등의 사면이 없을 거라는 말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오히려 이재용 판결이 확정되길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문재인 정부는 시국사범 특별사면을 자신들이 필요할 때 쓸 정치적 카드로 사용하는 역대 정부들의 고약한 짓을 재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상균·이석기 등의 석방과 시국사범 전원의 사면·복권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