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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시리아의 비가(悲歌) 들리지 않는 노래〉:
시리아 혁명과 반혁명, 내전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 준다

<시리아의 비가: 들리지 않는 노래> 에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감독, 2017년 개봉, 1시간 51분

시리아는 고대 문명이 꽃피운 지역에 위치한 나라다. 레반트(Levant), 혹은 아랍어로 ‘샴’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인류 역사 최초의 알파벳을 고안해 낸 페니키아인들이 살았던 곳이다. 로마가 건설한 거대한 신전과 극장, 열주들은 여전히 그 본래의 모습을 지키고 서 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이 구사했던 언어로 알려진 아람어가 아직도 일부 마을에서 쓰이는 곳이 시리아이다.

다큐멘터리 〈시리아의 비가(悲歌) 들리지 않는 노래〉는 이처럼 유구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시리아에 도착한 아랍의 봄 물결이 어떻게 확산이 됐는지, 그리고 독재에 맞선 희망이 어떻게 파괴와 살육이 난무하는 비극으로 변해 갔는지, 아름다웠던 도시들이 어디까지 폐허로 변할 수 있는지를 끔찍할 정도로 생생한 영상과 여러 활동가의 육성을 통해 보여 준다.

“이제 당신 차례예요 의사 선생님[1]

다큐는 시리아 혁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떤 단계를 거치며 전개됐는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튀니지에서 일어난 혁명에 영감을 받은 아이들 여럿이 “이제는 당신 차례예요 의사 선생님”이라고 학교 담벼락에 적은 낙서가 시리아 혁명의 도화선이었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혁명은 이집트, 리비아를 거쳐 시리아에도 불어닥쳤다.

40년 간 독재가 이어지는 동안 시리아 내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철저하게 탄압받았다. 다큐 속 반정부 활동가는 알아사드 정권 치하에서 평범한 사람들끼리 나누는 일상 대화에서조차 정치는 금기 주제였다고 말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게시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수업 때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는 간단한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은 실종되거나 악명 높은 정보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또, 그 기간 동안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민중의 삶이 망가지고 불평등이 심화했다. 2007~2008년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담벼락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고문받고 살해당한 11~12살 아이들이 담긴 영상이 다큐에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영상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쌓인 불만이 터져 나왔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다큐를 따라가다 보면 알아사드 정권의 잔혹함에 대한 시리아 민중의 분노와 슬픔에 함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거리를 가득 메운 채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시리아 민중과 함께 행진하다 보면 알아사드 군의 무자비한 발포와 잔혹한 탄압을 마주하게 된다.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에서 수십 년간 철권을 휘두르던 독재 정권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알아사드 정권은 시위 초기부터 강경하고 잔혹하게 대응했다.

1971년부터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알아사드 정권은 집권 이래 내부 반발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탄압했다. 동시에 알아사드는 자신의 정권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는 반제국주의 세력이라고 선전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점령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킬 아랍의 전사라고 주장했다. 다큐 중간에 시리아 정부 건물이 잡힌다. 그 건물에는 시리아 국기와 팔레스타인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 장면만 봐도 알아사드 정권이 반제국주의 이미지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알아사드 정권은 정말 반제국주의 정권인가? 알아사드 정권은 1990년 미국의 이라크를 침공을 지지했으며, 9·11 공격 이후에는 “테러와의 전쟁”에 CIA와 협력했다. 평화적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하는 것은 물론, 저항에 나선 도시들을 통째로 봉쇄하고 생필품을 차단해 수많은 어린이들을 기아로 내몰고, 병원, 학교, 민간인 가옥 등을 의도적으로 겨냥해 폭격하는 이 잔악한 학살자 정권은 타도 대상일 수 밖에 없다.

다큐는 시리아 정권의 잔혹함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춤과 노래, 평화 시위로 혁명에 나선 시리아 민중이 무기를 든 이유, 자기 자신을 비롯해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동지들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시리아를 시리아인에게!

독립 연구 기관인 시리아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 6년 동안 내전으로 사망한 시리아인이 47만 명에 이른다. 전체 인구 1800만 명 중 국내 피란민이 600만 명, 해외 난민이 480만 명이다. 2011년 이후 시리아 정권에 의해 구금되거나 실종된 이들만 11만 명이 넘는다. 사상자는 대부분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등 “테러단체”가 아니라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폭격 때문에 발생했다.

내전이 격화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알아사드 정권이 위태로워지자, 시리아에 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던 러시아가 알아사드 정권을 구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었다. 다큐가 보여 주듯이, 러시아 전투기들은 집속탄과 백린탄 등 온갖 끔찍한 무기를 시리아인들의 머리 위로 쏟아부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민병대,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도 알아사드를 도와 혁명을 고사시키는 데 열을 올렸다.

당연히 미국과 걸프해 연안 왕정국가들도 자신에 입맛에 맞는 일부 반군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며 내전에 개입했다.

이처럼 시리아는 온갖 제국주의 세력들과 그 동맹 세력들이 직간접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각축장이 돼 버렸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빵, 사회 정의를 부르짖던 평범한 시리아인의 목소리는 주변화됐다.

다큐 말미에 등장하는 활동가는 자신의 꿈에 대해 스스로 되묻는다. “모든 유혈사태가 멈추는 것? 아니면 감옥에 간 오빠를 다시 만나는 것?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정말 모르겠어요.” 영화는 혁명 승리의 꿈을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 꿈을 이룰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시리아 혁명이 다시금 전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미국과 러시아와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 동맹 세력들은 “민주주의”, “테러와의 전쟁”, “인권”, “평화”, “안정” 등등 온갖 미사여구를 둘러대며 시리아에 개입했다. 이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종파주의 갈등을 부추기고 진짜 테러를 자행하는 진정한 배후의 범죄자들이다. 독재 정권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시리아 민중에게 연대를 보내고 제국주의 세력들이 더는 시리아 땅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일이 각 지역과 나라의 민중들에게 요구되는 과제가 아닐까?

시리아 혁명과 내전에 관해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또 다른 다큐멘터리 〈홈스는 불타고 있다〉(탈랄 데르키 감독, 2013년, 87분),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올란도 폰 아인지델 감독, 2016년, 40분)도 추천한다



[1] 영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2000년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가 사망해 권력을 승계 받기 전까지 안과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