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시장 혁신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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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망중립성 규제를 폐기했다. 이것으로 미국의 거대 통신 기업들이 미국 민중들의 인터넷 사용을 쥐락펴락할 수도 있게 됐다. 한국에서도 관련 논의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망중립성’에서 망
인터넷 망을 제공하고 관리하는 것은 KT나 SKT 같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다
오늘날 인터넷은 세계적으로 수십억 명이 사용하는 필수적 공공재가 됐다. 망중립성 원칙은 이런 상황에서 사기업이 인터넷을 지배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규제할 목적으로 등장했다. 따라서 이 개념을 둘러싼 논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표현의 자유
망중립성 규제가 없어지면 인터넷 업체들은 요금 지불 여부에 따라 사이트를 차별할 수 있게 된다. 요금을 더 낸 웹사이트는 더 빠르게 접속하게 해 주고
만약 이런 조치가 현실화하면 돈과 영향력이 많은 주요 언론과 기업들에게 유리하므로, 재산에 따라 정치적 표현의 기회를 제약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일종의 금권 정치가 추가되는 것이다. 국가는 직접적인 정치 탄압 없이도 좌파들의 영향력을 제약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명목으로 인터넷 요금을 올리는 것도 좀더 쉬워질 수 있다. 예컨대 2001년에 미국 최대 인터넷 업체인 컴캐스트는 가정에서 VPN
또 다른 인터넷 업체인 AT&T는 인터넷 회선을 이용해 가정에서 웹사이트 같은 것을 돌리는 것도 금지했다. 비싼 상업용 회선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공유기를 설치해 여러 대의 컴퓨터를 인터넷에 연결하는 것은 인터넷 초기에는 금지된 일이었다. 여러 대를 연결하려면 인터넷 회선을 여러 개 신청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KT가 그렇게 했다.
인터넷 업체가 자의적으로 내용을 검열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망중립성 규제가 관철되지 않던 시절에 심심찮게 벌어지던 일이다.
2005년, 미국의 반전 활동가인 신디 시핸의 웹사이트 주소가 포함된 메일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컴캐스트가 신디 시핸의 웹사이트 주소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개념으로서 망중립성은 지지할 만하다.
공정한 경쟁?
그러나 망중립성 폐기가 결정된 직후 망중립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주류 언론에 나오는 반응은 주로 “인터넷을 통한 혁신의 잠재성이 저해된다”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망 사용료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신생 혁신 기업이 나오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튜브나 넷플릭스처럼 데이터를 많이 소비하는 서비스는 애초에 인터넷 업체의 과도한 요금 청구 때문에 성장도 해 보기 전에 초기 단계에서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카카오톡이나 보이스 채팅처럼 기존 통신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신규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오늘날 인터넷에 다양하고 편리한 서비스가 있는 이유는 인터넷이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개방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망중립성 폐기로 공정한 경쟁이 위기에 처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이런 논리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화상 전화나 검색 엔진, 이메일, 토렌트, 온라인 상거래처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 삶에 편리함을 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만족하기에 오늘날 인터넷은 상업적으로 엄청나게 왜곡돼 있다.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엔진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대부분의 SNS는 세계 최대의 광고 플랫폼이다. 사용자는 이들에게 상품이다. 이 사이트들은 꼼꼼하게 분류된 사용자 정보를 바탕으로 광고주들에게 영업한다.
통신사는 카카오톡과 보이스 채팅이 문자와 전화를 ‘무료’로 대체하자 데이터 판매로 수익 모델을 전환했고, 이를 통해 손해를 상쇄하고도 더 큰 이득을 거뒀다. 노동계급은 문자 메시지를 거의 다 ‘공짜’로 이용하면서도 더 많은 통신비를 지불하게 됐다.
아마존 같은 온라인 상거래 업체의 노동 착취는 유명하다.
인터넷을 통한 기업들의 상업적 성공을 우리가 응원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런 기업 없이도 순수한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편이 낫지 않은가.
구글과 페이스북은 민중의 동맹인가
구글과 페이스북, 네이버 같은 거대 콘텐츠 업체들이 망중립성의 주요 옹호자로 자처하는 현실은 ‘공정한’ 경쟁의 이면을 살펴 보게 한다.
표현의 자유 문제에서 이 기업들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구글은 미군 병사가 이라크 포로를 고문하는 사진을 모두 검열했다. 최근 네이버가 축구연맹의 청탁으로 기사를 숨긴 것이 폭로된 것은 오랜 의심이 사실로 드러난 것뿐이었다. 이집트 혁명 이전, 페이스북은 반체제 활동가의 페이지를 폐쇄했다. 관리자가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개방된 인터넷에 대한 미사여구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도 안 된다. 구글은 이미 컴캐스트와 협력해 별도의 고속 회선을 구축해 두고 있다. 페이스북은 인터넷.org라는 이름으로 비영리단체를 만들고 저개발국가 사람들에게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광고했다. 진실은 인터넷.org의 회선을 통할 경우 인터넷 요금은 무료지만 페이스북을 포함한 소수의 사이트에만 접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도 정부는 망중립성 위반을 이유로 인터넷.org를 금지했다.
이 거대기업들이 옹호하는 망중립성이라는 것은 인터넷 업체에 지불할 금액의 중립성일 뿐이다.
한계
사실 망중립성 원칙만으로는 자유롭고 평등한 인터넷을 실현할 수 없다.
망중립성 원칙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가장 큰 적인 국가에는 관심이 없다. 미국의 망중립성 규제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에 도입됐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국가안보국
한국은 망중립성 원칙으로 해석할 만한 조항이 법제화돼 있는 나라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국가에 의한 도감청과 검열 문제가 크다. ‘사적’ 검열도 손쉽다. 포털에 있는 글은 신고만 하면 대체로 30일 동안 차단할 수 있다
망중립성 원칙이 노동계급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통신비를 낮추는 것도 아니다. 망중립성 원칙이 폐기되면 일부 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은 크지만 말이다.
인터넷을 공공재로 만들려면 KT 등 통신사 재국유화가 가장 효과적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인터넷을 위해서는 이윤 경쟁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와 완전히 다른 체제가 필요할 것이다.
망중립성 폐기 반대 캠페인과 시위를 벌였던 미국 활동가들은 FCC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 의회에 “불승인 결의”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 민중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