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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시온주의에 반대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유대인 사회주의자 존 로즈는 이스라엘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인 시온주의가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에게 재앙이었으며, 중동 일대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평화롭게 공존한 역사를 무시한다고 말한다.

ⓒ이윤선

1.

시온주의는 유대인이 유대교의 발생지로 돌아와서 오직 유대인만의 국가를 수립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2.

팔레스타인은 중동에서 발생한 세 개의 거대 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중요한 땅이다. 그 셋 중 어떤 종교도 그 땅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3.

시온주의는 서기 70년에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전을 무너뜨렸을 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대다수 유대인은 로마 제국 시기에 이미 팔레스타인 땅 바깥에서 살고 있었다.

로마 제국 시기 내내 유대인들은 활발히 이주했고, 그 후에도 유대인들의 이주는 계속됐다.

로마 제국이 생기기 한참 전에도 번화한 유대인의 종교적, 상업적, 공예적 중심지가 이집트의 거대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존재했다.

로마 제국 건설 500년 전에도 유대인의 거대한 종교 중심지가 바빌론에 있었고,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진정한 유대인의 역사는 비(非)유대인과 함께 살아온 유대인의 삶에 기초해 형성된 것이다.

4.

시온주의는 유럽의 반유대주의(또는 유대인 혐오)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즉, 반유대주의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5.

기독교가 지배했던 유럽은 종교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에서 유대인을 박해했다. 유대교가 기독교식의 성경 이야기와 다른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중세 유럽의 경제적 거래에서 유대인이 독특한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인으로서 폐쇄적인 봉건 국가에 경제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유럽의 기독교인 지배자들은 유대인을 이용하는 동시에 학대했다.

유대인은 때때로 특혜를 받아 농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러나 이는 탄압 때문에 농민 반란이 일어났을 때마다 유럽 지배자들이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잘 써먹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6.

계몽주의와 18세기 미국·프랑스 혁명은 반유대주의를 극복할 기반이 됐다.

혁명으로 유대인 평등권이 공식적으로 보장됐다. 물론 실제로 구현되기까지 유대인들이 투쟁해야 했지만, 서유럽에서는 유대인 평등권이 점차 자리잡기 시작했다.

해방 유대교와 계몽주의가 창조적으로 충돌해,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의 위대한 지성이 탄생했다.

유럽 문화는 유대인들의 기여로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7.

시온주의의 진정한 뿌리는 동유럽에서 시작됐다. 19세기 말 전 세계 유대인의 절반 이상은 차르가 지배하는 붕괴 직전의 러시아 제국에서 살았다. 유럽식 현대화로 러시아 봉건 지배자들은 새로운 도전을 맞았다. 혁명이 그들을 쓸어버릴 위기 속에서 유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차르는 의도적으로 끔찍한 대규모 유대인 학살을 벌였다.

유대인들은 학살을 피해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서유럽과 미국으로 도망쳤다. 오직 소수만이 시온주의자들의 호소에 응해 팔레스타인으로 갔다.

이들이 시온주의자 정착지의 핵심을 구성했다.

시온주의는 서방 제국주의 열강이 지원한 식민지 운동이었다.

8.

식민지 사회주의 같은 것은 없었다. 시온주의 개척자들은 수세기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농사를 지어 온 아랍 농민들을 쫓아냈다. 키부츠 “공동체”는 오직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시온주의는 서방 제국주의의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영국은 제1차세계대전 승리의 보상으로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다.

영국은 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수단으로 시온주의 정착지를 이용했다.

1921년 당시 식민장관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시온주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영국 제국에게도 좋은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에는 미국이 중동의 패권을 쥐고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1981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이렇게 설명했다. “실전 경험이 있는 군대를 가진 이스라엘이 중동에 있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이득이다. 만약 이스라엘에 그런 군대가 없었다면, 우리 군대로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했을 것이다.” 20세기 말까지 미국은 이스라엘에 1000억 달러를 지원했다.

9.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벌였다고 해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인을 내쫓고] 팔레스타인에 그들만의 국가를 수립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선언문은 독립을 정당화하는 이유로 홀로코스트를 명시적으로 이용했다.

같은 해,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위해 팔레스타인인 거의 100만 명이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달리 말하면, 유럽에서 벌어진 학살의 대가를 팔레스타인인들이 치러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는 토착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을 배제하고 수립됐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결함이다. 영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해결돼야 할 잘못이다. 시온주의자들은 홀로코스트를 이데올로기적·도덕적 협박 도구로 사용해 팔레스타인 땅을 도둑질한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의 기억을 심각하게 악용하고 있다.

시온주의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평화적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그런 해결은 분명히 가능하다.

10.

시온주의 국가 구조는 아랍인들을 희생해 유대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참된 평화를 가로막는다. 아랍인과 유대인의 관계는 시온주의 정착지가 생기기 전에 훨씬 더 좋았다. 평화로웠던 이전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우익 학자 버나드 루이스조차 이슬람 문명의 절정기에 이슬람계 아랍인과 유대인의 “공생”, 즉 아랍인과 유대인이 공통의 “이슬람·유대” 문화 속에서 관계를 꽃피웠던 시기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또한, 지난 세기 아랍 땅에서 유대인들이 보였던 깊은 애착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라크에서는 영국이 세운 꼭두각시 왕정에 맞서 ‘알 와스바’(거대한 도약)라 불린 대중 반란이 있었다.

이라크 태생 젊은 유대인 다수가 이 반란에 참가했다. 유대인 참가자가 너무 많아서, 시온주의자들조차 이 시기를 “인류애의 시대”라고 인정했다. 그들은 또한 이라크 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가망 없어” 보인다고 적었다.

안타깝게도 이라크의 운동은 패배했고, 시온주의자들, 미국·영국·이라크 정부는 이라크 내 유대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난 세기의 비극 중 하나다.

20세기 초만 해도 이라크 최고의 음악가 100명 중 3분의 1 이상이 유대인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아랍인과 유대인 공통의 평화로웠던 과거. 바로 여기에 희망의 불씨가 있다. 이 불씨가 지금과는 다른 미래로 가는 길을 비추고 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0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