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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
패권을 위해 경쟁자들을 힘으로 누르겠다는 선언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백악관이 대외정책의 전반적 방향을 제시하는 청사진에 해당한다. 국가안보전략이 제시하는 방향에 맞춰 외교·국방 분야의 구체적 정책들이 수정된다.

그래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 노선이 12월 18일에 나온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이목이 쏠렸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국가안보전략에서 “국권”, “주권”이라는 단어를 31번이나 썼다. 지난 9월 트럼프의 유엔 연설에 이어, 트럼프 정부는 다른 국가들의 도전이 제기되는 “경쟁적 세계” 속에서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지 않도록 공세를 펼 것을 공언한 트럼프 ⓒ출처 백악관

역대 미국 정부들의 국가안보전략은 입발림 소리일지라도, 강대국들의 협력으로 유지되는 국제 질서를 지키겠다고 선언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런 거추장스런 치장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 [국가안보]전략이 현실적인 까닭은 국제 정치에서 힘이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주권 국가가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최선의 희망이라는 점을 확인하며, 국익을 명확히 정의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대목도 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정책은 경쟁자들을 국제 기구와 무역으로 끌어들이고 그들과 협력하면 그들이 우호적이고 믿음직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런 가정은 틀렸음이 드러났다.”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경쟁을 벌이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미국의 기존 패권을 지키기 위해 충돌도 불사하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지난 정부들, 특히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이 물러터졌다고 인식하며 자국 패권에 위협이 되는 세력이 그 누구든 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이번 국가안보전략에 반영돼 있다.

중국과 러시아

이번 국가안보전략은 미국에 도전하는 가장 주요한 경쟁자로 중국과 러시아를 꼽았다.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어긋나게 세계를 바꾸려는 “수정주의 국가”로 지목한 것이다.

트럼프는 국가안보전략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새 국가안보전략은 - 좋든 싫든 - 우리가 경쟁의 새 시대에 참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미국의 영향력, 가치, 부에 도전하려는 중국과 러시아 같은 경쟁 강대국들에 직면해 있다.”

본문에는 이런 언급도 있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대신하려 한다. … 중국은 우리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자금으로 유능한 군대를 건설하고 있다.”

물론 역대 미국 정부들도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할 만한 (잠재적) 경쟁자로 여겨 왔다. 그러나 이토록 노골적으로 적으로 규정한 것은 이번(국가안보전략)이 처음이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를 함께 주요 경쟁자로 묶어 놓고 러시아를 강하게 비난한 것은 트럼프의 평소 행동과는 다소 어긋난다.

이 점은 국가안보전략이 트럼프의 이데올로기적 측근들만이 관여한 작품이 아님을 반영하는 듯하다.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조쉬 로긴은 정부 인사의 말을 인용해 국가안보전략이 순전히 “미국 우선주의”로만 작성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오히려 (피터 나바로 같은) 경제적 애국주의자들과 신보수주의자들까지 망라된 백악관 안보 담당자들 사이의 합의된 견해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각자의 이유는 좀 다르더라도, 중국을 전보다 더 강경하게 다뤄야 한다는 데 백악관 인사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래서 앞서 트럼프 측근인 스티브 배넌은 새 국가안보전략이 중국의 “속국”처럼 돼 버린 미국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지침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은 중국이 경제와 외교 면에서 여러 악의적 행위를 했다고 비난하며,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경쟁을 벌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중국의 확장이 아시아에서뿐 아니라 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에서도 기존 (미국에 유리한) 질서를 위협한다고 규정했다. 그 외에도 중국을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훔치고 사이버를 이용한 경제 전쟁을 벌이는 존재로도 묘사하며 다뤘다.

트럼프 정부가 내놓은 새 국가안보전략은 미국 지위의 상대적 하락과 나머지의 부상 속에서 세계 질서가 변해 왔음을 반영한다. 그래서 트럼프는 동시에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다양한 도전에 맞서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경제적·정치적·군사적 힘을 동원해 누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역사에서 권력을 둘러싼 투쟁은 늘 있었고, 경쟁에서 성공한 미국이야말로 갈등과 전쟁을 예방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는 트럼프가 가리키는 방향이 평화와는 정반대임을 알려 준다. 제국주의적 경쟁의 격화 속에 트럼프의 공세는 세계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더 불안정해지는 한반도

트럼프 정부는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러시아, 이슬람주의 조직과 함께 역시나 북한·이란 같은 이른바 “불량 국가”도 주요 위협으로 꼽았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상세하게 거론하면서 트럼프 정부는 군사력 강화를 천명했다. 북한과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고 했다. 이를 위해 다층 방어체계를 배치하고, 동아시아에서 한국·일본과 협력을 강화해 지역 MD 능력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다음 구절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긴장 고조를 두려워해 미국의 핵심 이익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적을 억제하는 데서 경제적 수단을 동원하는 게 중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에 압력을 가중하기 위해 현존 및 새로운 경제 대책을 사용하고 국제 행위자들의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이용될 만한 자금을 차단하는 것도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앞으로 대북 경제 제재가 더 강화될 수 있음을 뜻한다. 더 나아가, 제재 강화를 놓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벌어질 여지도 커질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경제적 유인책과 불이익, 심지어 군사적 위협까지 암시해 다른 국가들이 중국의 정치·안보 의제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고 비난했다. 정말 적반하장이다. 그러면서 인도·태평양 각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지배에 대응해 집단적 대응을 이끌어 내는 미국의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트럼프도, 중국의 부상에 불안해 하는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파고들려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문재인 정부에 더 많은 협력과 책임 분담을 요구할 것이다. 사드 배치로 중국한테 경제 보복을 당한 한국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라고 더 채근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이미 ‘3불 선언’을 내놓은 문재인 정부에게 MD 구축을 위한 한·미·일 삼각 협력 강화를 촉구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사드 배치 용인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는 친제국주의적 선택을 할 여지가 더욱 커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로 말미암아 우파가 재기한다면 그건 문재인 정부 책임이지, 진보·좌파가 “무리한 요구를 해 대서”가 아님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