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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아들을 둔 노동자 아빠 이야기’ 울산 토론회:
노동자와 성소수자가 어우러진 토론

12월 23일 노동자연대 울산지회가 개최한 공개모임 ‘성소수자 아들을 둔 노동자 아빠 이야기 ― 성소수자 차별과 그에 맞선 저항’이 열렸다. 최근 울산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들의 집회·행진인 ‘퀴어라이브 인 울산’이 열렸고, 여기에 노동자연대 울산지회 노동자 회원들도 적극 참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자의 도시’인 울산에서 성소수자 차별에 어떻게 맞설지, 민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이자 성소수자 부모모임 회원인 권영한 동지를 통해 생생하게 들어보려 한 것이다. 노동자연대 성소수자팀의 성지현 동지도 발표했다.

공개모임에는 20명이 넘는 노동자·청년·학생이 모여 열띠게 토론했다. 성소수자와 지지자가 함께 토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나이가 지긋한 목사님도 참가했다.

토론회가 끝난 뒤 발표자·참가자들이 팻말을 들고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권영한 동지는 발표에서 우선 우파들의 성소수자 공격을 반박했다.

[성소수자는] 질병이 아니라 단지 성적 지향일 뿐입니다. ‘전환 치료’를 한다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성소수자를 이성애자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울증과 자살을 낳기만 했습니다. 성소수자는 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치료 대상이 아닙니다.”

권영한 동지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초창기 활동가로서 부모가 성소수자들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의 자존감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성소수자들은 자살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많은 활동을 했어요. 부모 입장에서 힘든 점들, 자식들이 부모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등 여러 문제를 전국 각지를 돌며 토론했습니다. 부모모임에 나오는 부모들은 ‘내 새끼가 핍박받는 게 싫어서 나온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귀걸이를 좀 줄일 수 없냐’, ‘바지 좀 길게 입으면 안 되냐’ 등 잔소리를 하며 아들을 못마땅해 했어요. 하지만 내 자식이라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식을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봐야 해요. 저는 제 아들이 당당합니다. 아들의 애인을 직접 찾아 가서 밥도 사 주고 옷도 사 줬죠. 아들에게 관계에 대한 조언도 해 줬어요. 또 저는 친척, 친구 등 모두에게 떳떳이 아들이 성소수자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권영한 동지의 진솔한 경험담과 그가 준비해 보여 준 영상은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퀴어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부모들이 성소수자들을 꼭 안아 주는 ‘프리 허그’ 동영상을 보던 참가자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회원인 권영한 동지 ⓒ김지태

청중 토론에서 한 성소수자가 말했듯이, 성소수자들한테 가족은 종종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에 가장 두려운 대상 중 하나이다. 그래서 성소수자의 부모인 권영한 동지의 경험과 부모모임의 활동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권영한 동지는 운동의 발전을 위한 문제의식도 말했다.

권영한 동지가 얼마 전 〈노동자 연대〉 신문에 기고한 글(본지 233호 ‘성소수자 자식을 둔 노동자 부모가 말한다 ― 성소수자 운동 주류의 노동자연대 배제는 연대 정신을 해치는 일입니다’)에서 밝혔듯이, “그들[자본과 제국주의 국가]이 돈을 후원해 주는 것은 반드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과 제국주의 국가들은 성소수자 친화적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악행을 감추거나 돈벌이에 이용하려고 한다. 성소수자 운동은 이런 ‘핑크워싱’에 이용돼서는 안 된다.

이어서 성지현 동지가 발표했다. 그는 성소수자 차별의 원인이 자본주의 가족 제도에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초기에 자본가들이 노동력 재생산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가족 제도를 안정화시키려고 했고, 가족 제도 바깥의 존재들인 성매매 여성과 동성애자들을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성소수자 차별의 근본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고, 또 자본주의는 착취를 위해 차별을 공고히 하는 만큼, 이에 맞서기 위해선 노동자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대의 가능성

청중 토론 시간에는 노동자들과 성소수자들이 진지한 주장과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나눴다.

현대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올해 6월 울산에서 기독교 우파들이 군대 내 동성애자 처벌 조항인 군형법 92조의6 폐기에 반대해 시위를 벌였고, 그 조항 폐기 법안을 발의한 울산 지역구 윤종오, 김종훈 진보 국회의원들을 압박했던 것을 비판했다.

권영한 동지의 오랜 친구이자 울산의 석유화학업체 SK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야간 노동을 가기 전 시간을 내서 참가했다. 그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권영한 동지를 응원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는 현장에서 성소수자 혐오 주장을 퍼뜨리는 직장 동료와 논쟁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이제는 더 확실한 논리로 논쟁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또, 그는 성소수자 운동의 과제가 무엇이고, 노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해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또 다른 현대중공업 노동자는 발표를 듣고 자기 가족이 성소수자라고 밝혀도 환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한 문제의식도 던졌다. 그는 난생 처음 참가한 성소수자 집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의 ‘튀는’ 복장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며, 평범한 노동자들이 성소수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려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할지 물었다.

한 성소수자 참가자가 1950년대 미국 성소수자 운동의 경험을 말하며 이에 답했다. “당시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원치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가 사회 규범과 어긋나지 않음을 인정받고 싶어서 억지로 성별 규범에 맞춘 옷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위축되게 만들었습니다. 개인의 복장은 그의 온전한 자유이고, 복장이 어떻든 상관 없이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요구와 구호를 중심으로 함께 저항하는 게 중요합니다.”

기독교 목사인 나이가 지긋한 참가자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 우파를 비판했다. “요즘 기독교계가 장사가 안 됩니다. 그래서 성소수자 혐오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거예요. 그들이 말하는 예수는 진짜 예수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 하 성소수자 운동의 과제를 둘러싼 대화도 오고 갔다. 자유한국당 같은 적폐 세력들이 동성애 쟁점으로 우파를 결집시키고, 문재인 정부는 이에 타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이 문제에서 불철저한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에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 저항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모임이 끝나고 뒤풀이에서도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 참가한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말은 노동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만날 가능성을 보여 줬다.

“노동자가 왜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또 함께 해결해야 하는지 알게 돼서 좋았어요. 그리고 성소수자들이 어떤 차별을 받고 있고 어떤 것을 함께 싸워 쟁취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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