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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새 세대도 1987년 저항의 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 〈1987〉

“평범한 시민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도저히 참지 못해, 30년 만에 또다시 일어나 제2의 6월 항쟁을 일으키고 있단다.

“종철아, 네가 살아 있다면 여기서 다시 소리칠 거야, 그렇지? 되살아난 거야, 그렇지?

“종철아, 네가 보낸 편지가 생각난다.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시켰지만, 나의 사상은 구속시키지 못합니다, 어머니. 이 땅의 부당한 구조를 미워합시다.’ 30년이 넘도록 이 편지의 상황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구나. 따뜻한 목도리를 두른 [촛불을 든] 사람들이, 부디 너 대신 성취하길 바란다.”

박종철 열사의 친누나 박은숙 님이 박종철 열사 사망 30주기(1월 14일)에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부산 집회에서 낭독한 편지의 일부이다.

1년 전 전국을 가득 메운 1700만 촛불, 승리한 민중항쟁의 선배 격인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이 27일 개봉했다.

“탁 치니 억 하고”

영화 〈1987〉은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박종철 학생이 물고문으로 죽은 사건에서 시작한다. 군부 독재를 지탱하려고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는 청와대와 공안 기구들의 야비하고 더러운 거래가 생생히 담겨 있다.

공안 당국은 박종철 열사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말도 안 되는” 발표를 하고, 진실을 은폐하려고 진실을 아는 관련자들에게 ‘가족을 죽여 임진강에 던져 월북하려는 반역자로 만들어 버리면 된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민중이 저항에 나서자 대공수사처는 ‘빨갱이’ 소탕 작전에 나선다. 이를 진두지휘하는 진실 은폐자 대공수사처 처장이 상징하는 무자비한 독재 권력, 그와 갈등을 빚으며 진실을 규명하려는 기자 노동자, 민주화 인사들, 교도관 노동자, 대학생 등의 저항이 매우 긴장감 있게 묘사된다. 처음엔 소수가 저항을 시작하는 듯 보여도, 그런 노력들이 모여서 거대한 저항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느낄 수 있다.

각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해 주먹을 절로 쥐고 몰입하게 된다. 주인공의 ‘운동권’ 선배가 주는 반전, 주인공이 골목에서 광장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함께 싸우자”는 대학 ‘운동권’ 선배의 말에 주인공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질문을 던진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광주 민중을 학살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그래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1987년 6월 항쟁의 직접적 계기이자, 그에 대한 항의 운동은 수년간 누적돼 6월 항쟁을 낳은 크고 작은 투쟁의 일부이기도 했다.

〈1987〉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주인공의 질문에 ‘보통 사람들이 용기 있게 저항에 나서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답한다.

사실 6월 항쟁의 배경은 단선적이지 않고 또한 국제적이기도 했다. 광주항쟁과 그 이후 투쟁들의 여파, 경제 호황과 대중의 자신감, 독재자를 쫓아낸 1986년 필리핀 민중 항쟁 등도 영향을 미쳤다. 이어 벌어진 7~9월 노동자투쟁도 민주화 흐름의 굳히기 구실을 했다. 이런 배경이 충분히 담기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당시의 역사적 경험을 생생하게 다뤘고, 영화적 완성도도 높다. 1년 전 ‘박근혜 퇴진 운동’이라는 거대한 대중 투쟁을 겪은 촛불 세대에겐 우리의 경험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특히 현재 문재인 정부는 ‘촛불 대통령’을 자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규직화, 노조 인정, 구속자 사면 등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겐 ‘보채지 말라’며 ‘빈 수레가 요란’한 정책들만 내놓고 있다. 여전히 아래로부터의 용기 있는 투쟁이 중요한 이유다.

물론 국가와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운동과 체제의 동역학(변혁의 주체 등)을 파헤치는 이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조직 등이 필요하다.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감동하는 우리 청년들의 몫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