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12월 20일 최규진 생명윤리 전공 연구자가 ‘젠더와계급연구회’ 주최 공개세미나에서 한 같은 제목의 발표 내용을 녹취해 축약한 것이다. 아래 발표는 생명윤리학계에서도 낙태죄 찬성이 주류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최 연구자는 최근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생명윤리·철학·신학 연구자들 성명 발표에 주도적으로 동참했다.


우선 윤리적 측면에서도 낙태 반대론자들은 결코 우위에 있지 않고, 학계에서도 낙태 반대 입장은 결코 주류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컨대, 프린스턴대학교 생명윤리학 석좌교수이자 국제생명윤리학회장을 역임한 피터 싱어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생명윤리학자이자 대표적인 낙태 찬성론자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마이클 샌델도 미국 생명윤리 위원회 자문위원으로서 활동하며 미국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는데, 그런 자유주의적 생명윤리론자도 낙태에 대해서 상당히 전향적인 입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낙태 관련한 기본 용어를 먼저 정리해 보겠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이루어지고 수정란이 착상해서 세포분열을 하는데, 착상 후 9주까지를 ‘배아’라고 합니다. 그 이후를 ‘태아’라고 하죠. 이런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수정 후 모든 단계를 ‘태아’라고 하면 태아 ‘생명권’ 주장에 취약해지기 때문이죠. 사실 수정 후 2주까지는 배아라고도 하지 않고,전前배아라고 합니다.

현대 생명윤리학계 논쟁

이제 현대 생명윤리에서 어떤 식의 논의가 이뤄지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존 누난 같은 학자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유전자를 형성하면 그때부터 ‘독특한 개인’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수정된 난자가 유전적 특징이 있는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기 때문에 인간의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는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체세포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앞선 수정란의 조건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즉, 존 누난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때 밀 때마다 피부 세포가 수없이 떨어져 나가는데, 우리는 그때마다 살인을 하는 셈이 됩니다.

또한 많은 보수적인 인사들이 인구가 감소하니까 시험관 아기 시술을 적극 장려하고 있어요. 미국 기독교 우파 정치인들이나 이명박도 마찬가지였죠. 여기에 굉장히 많은 돈도 쏟아부었죠. 그런데 시험관 시술만 봐도, 여러 수정란 중 한두 개만 성공하는 것이니 나머지 실패한 수정란들은 [태아 생명권론자들에 따르면] ‘살인’ 행위인 셈입니다. 이처럼 우익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끌어다 주장하면서도 시험관 시술에는 적극 돈을 쏟아붓고 있으니 사실 굉장히 모순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아 ‘생명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잠재성”, “인격성” 등으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지만, 결국 전체적 맥락은 비슷하고 그 논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격성” 주장의 경우에도 ‘과연 인격성이라는 것이 뭐냐’는 반론이 가능합니다. ‘인격체가 된다’는 것은 사려 깊은 자기 이해, 의사 소통, 동기부여된 행위,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요소가 아무것도 없는 배아에게 인격을 부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반론을 충분히 펼칠 수 있죠.

이제 피터 싱어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논리를 살펴 봅시다. 공리주의자들은 소망과 관련된 “이익”을 인격체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과연 태아가 “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고통을 피하고 싶은 소망”을 가진 존재냐는 것이죠. 배아나 태아는 고통을 느끼거나 그것을 피해 살고 싶은 이익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고 봐요. 그런 이익을 가지려면 적어도 신경생리학적인 구조나 기능을 갖추어야 하죠.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임신 2분기 즉, 4~6개월은 돼야 그런 발생이 이루어지므로 그 전까지 태아의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태아가 엄마의 몸에 의존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후기 낙태

낙태 논쟁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가 후기낙태 문제입니다. 공리주의자들이 워낙 반론을 많이 펼치니까 태아 생명권론자들은 ‘임신 6개월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후기낙태는 안 되는 거 아니냐’ 하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역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럴 때 임신부의 장기적 이익이 고통을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불운한 태아의 이익보다 더 중요합니다. 심지어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한다 해도 임신부에게 생명과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태아를 몸 안에 두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태아는 임신부에 의존하고 있고 영향을 받는다는 독특한 처지 때문에 심지어 감각이 생긴 경우에도 온전한 생명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죠.

낙태반대론자들은 여성을 “태아의 컨테이너”로만 취급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후기 낙태는 초기 낙태보다 정신적·육체적으로 훨씬 절박한 상황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후기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위급한 여성들을 위험한 낙태로 몰고 가는 것밖에 안 됩니다. 이를 금지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서라기보다 낙태권 전반을 공격하려는 보수세력의 저항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우리는 학자들의 탁상공론에만 머무르지 말고 현실의 상황으로 와서 주장을 해야 합니다. 다만 태아 생명권론자들이 워낙 허황된 논리를 펼치니까, 그것이 하나의 믿음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춰내려고 지금까지 여러 낙태와 관련된 생명윤리학계 논쟁을 소개한 것입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살펴 봅시다. 1970년 3월 텍사스 주법은 모든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텍사스 주에 살던 제인 로(본명 노마 맥코비)가 위헌소송을 제기하며 사건이 시작됐습니다. 로는 유능하고 자격 있는 의사에게 안전하게, 병원에서 낙태 시술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 재판에서 이른바 ‘체외생존 가능성’을 낙태 허용 합의점으로 정한 거에요. 28주 이후에는 태아의 체외 생존이 가능하지만, 그 전까지는 절대적으로 산모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28주 전까지는 산모의 프라이버시권으로 낙태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판결한 겁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판결 이후 체외생존 가능성을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당시에는 그나마 급진적인 판결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체외 생존 가능한 기간은 [과학의 발전으로]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면적인 낙태권[인정]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기간에 따른 구분법으로 접근하는 한계도 남겼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나마 이런 판결이 가능했던 건 아래로부터의 저항 때문이었다는 점입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전에 이미 미국 주정부의 3분의 1 이상이 낙태 합법화 사인을 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로널드 레이건입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 보수적인 종교 집단을 가장 잘 활용했던 로널드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있을 때는 낙태 합법화에 사인을 한 것이죠. 그만큼 당시 ‘68운동’으로 불리던 공민권 운동이나 여성해방운동 등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강력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체외생존 가능성”이라는 기준으로라도 합의하지 않았으면 운동이 더 급진적인 것을 요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낙태죄 

사실 현실과 동떨어진 논쟁을 한다는 게 저도 공허할 때가 있어요. 야마가와 기쿠에라는 일본 사회당원은 이런 말을 했더라구요. “아이를 여유있게 섬기며 아이에 대한 사랑을 최대한 실천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무산계급 여성으로서 원치 않는 아이 갖기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지 않을까” 이게 정말 현실적인 얘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국가가 아이의 생존을 온전히 책임질 만한 제도와 기반이 형성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낙태 금지를 주장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낙태죄 관련된 규정을 한번만 훑어 보면 법 자체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1953년 만들어진 한국의 형법상 낙태 처벌 조항은 사실상 일본의 타태죄(墮胎罪)를 모방해서 만든 법입니다.

일제 시기 총동원령 하에서 군인이 많이 필요하니까 낙태를 함부로 못하게 타태죄를 강력히 적용했죠. 그런데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한 이후에 경제가 안 좋으니까 인구 조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그래서 우생보호법이라는 걸 또 만들어요. 그러자 1970년대 [한국 지배자들이] 이제는 바로 이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따서 모자보건법을 만들죠. 결국 한국의 낙태 관련 법들은 일본이 국가주의적인 정책 하에서 산아조절을 하려고 만든 정책들을 베껴온 것이죠. 그나마 일본의 우생보호법에서는 “경제적 이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했는데, 우리나라는 그건 또 빼버렸죠.

이처럼 낙태관련 법이 만들어진 배경도 문제지만 그 내용도 지금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일례로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를 낙태의 예외적 허용사유에 포함한 것도 동성동본 혼인이 허용된 지금과는 너무 안 맞죠. 이밖에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맞지 않는 내용들도 많습니다.

이처럼 낙태 관련 법 자체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 형법상 낙태죄 폐지 운동은 대단한 사상이나 윤리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상식적인 생각만 있어도 얼마든지 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제가 초안을 잡아 생명윤리학회와 신학자·철학자들에게 연명을 받았는데요. 예상보다 훨씬 많은 120여 명의 연구자들이 동참했고, 성명 발표 이후에도 뒤늦게 참여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낙태에 대한 각자의 관점이 다름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참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생명윤리적으로 어떤 주장을 하든지 구시대적인 낙태죄만큼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고 본 것이죠.

그만큼 적어도 낙태죄 폐지는 대단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여성의 실제 현실을 직시한다면 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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