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박근혜, 황교안, 우병우, 김기춘, 해수부와 해경 지휘부…: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이 정의 실현의 시작”을 읽으시오.

기업의 고삐 풀린 이윤 추구, 그것을 적극 뒷받침한 정부 정책, 뒷전으로 밀려난 안전 투자 등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만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고 여지없이 참사를 낳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6월,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에서 화재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23명이 사망했는데 대다수는 나이가 어린 유치원생들이었다. 화성군수를 포함한 공무원들은 뇌물을 받고 소방 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이 건물을 허가했다. 하지만 화성군수는 무혐의로 풀려났고 나머지 화성군 공무원들도 모두 무죄 아니면 집행유예였다.
2003년 2월 18일에는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정부와 대구지하철공사는 비용을 이유로 유독 가스를 많이 내뿜는 내장재를 사용했고, 인건비 절약을 위해 1인 승무제를 실시하는 바람에 안전 점검을 위한 인원이 부족했다. 그러나 사고 책임자 중 대구지하철공사 사장과 시설부장만이 기소됐고 결국 둘 다 무죄를 선고 받았다.
정부가 참사 책임자들에게 이토록 관대했던 것은 정부 자신이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느라 공공성과 대중의 안전은 뒷전에 두는 정책들을 밀어붙이는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겠다며 ‘규제총량제’와 ‘규제일몰제’를 도입해서 역대 정권들 중에 가장 많이 규제를 없앴다. 식품 관련 규제 1백 건이 폐지되고 67건의 기준이 완화돼 “식품 위생과 안전의 근간이 되는 거의 모든 사항이 완화”(한국보건사회연구원)될 정도였다.
‘안방의 세월호’라 불린 가습기 살균제들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허가를 받고 출시된 시기도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다.
김대중은 IMF 위기 이후 대대적인 전력·가스 민영화를 추진했다. 이런 정부의 계획은 2002년 발전·철도 노동자들의 공동 파업에 부딪히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대형 안전 사고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2007년 12월에 발생한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제일 컸다. 노무현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거짓말, 책임 떠넘기기가 피해 규모를 키웠다. 주민들이 ‘기름 쓰나미’를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사고 발생 뒤 24시간이 다 되도록 방제 장비도 지급되지 않았다. 뒤늦게 지급된 방제 물자와 방제 작업도 유명 해수욕장들에 집중됐다.
노무현 정부는 제2의 IMF라 불린 한미FTA 체결을 강행했고 그 일환으로 2004년 7월 포스코의 천연가스 직도입을 허가해 가스 민영화의 길을 열었다. 
철도 민영화의 사전 정지작업으로서 철도청을 철도공사로 바꿨고 수익성 중심의 운영 체계인 철도산업기본계획안을 입안했다. 인천, 광양, 부산, 제주 등에 외국 영리 병원을 허용했고, ‘물 산업 육성방안’을 내놓으며 노골적으로 물 민영화를 추진했다.
사실, 세월호 참사의 배경인 제주 해군기지도 김대중이 처음 논의하기 시작해 노무현이 결정한 사업이다. 민주당 정부의 친제국주의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하는 것으로 나아갔고 그 와중에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 세력에 살해당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적 성장을 지향하는 민주당은 규제를 완화해서 기업의 돈벌이를 도와야 한다는 데에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의 문제도 봐야 한다. 장기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압력은 어떤 정부도(정의당 같은 개혁주의 정부가 등장하더라도) 거스르기 쉽지 않다.
따라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새 정부는 자본가들이 가하는 압력과 ‘적폐 청산’에 대한 대중의 열망 사이에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건설이라는 세월호 운동의 요구를 성취하려면 국가에 맞선 싸움은 계속 돼야 한다. 그러려면 정권 교체에만 기대다 투쟁의 칼날을 무디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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