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세월호 참사: 과거 민주당 정부들은 좀 달랐을까?”를 읽으시오.

어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할 때 의혹과 가설을 제시하고 검증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의혹과 가설을 제기하는 것과 음모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다르다. 
‘오컴의 면도날’ 또는 ‘사고 절약 원리’라고 불리는 현대 과학 이론의 기본 전제에 따르면, 불필요하거나 개연성이 낮은 가정을 계속 쌓아서 사건 전체를 완벽하게 구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비워 두고 무리하게 추측의 선을 넘지 말라는 것이다. 
지배자들이 매우 음모적인 것은 맞지만(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도 무수한 음모가 있었다), 음모론은 합리적 의심을 넘어 대중이 통제할 수 없는 지배자들의 음모에 의해 세계가 좌우된다는 ‘이론’이다. 이것은 무력감을 퍼뜨리고 대중을 수동화시켜 운동을 약화시킬 뿐이다. 
예컨대 참사 당일 세월호에서 누군가 무거운 닻을 떨어뜨려 배를 전복시켰다고 보는 파파이스 김어준 씨의 주장을 보자. 김어준 씨는 박근혜가 국정원 대선 개입을 감추려고 세월호를 침몰시켰다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음모론이다.
(7천 톤짜리 배를 뒤집을 만큼 무겁고 큰 닻을 어떻게 들키지 않고 내릴 수 있는지는 제쳐 두더라도) 세월호 참사가 일으킨 공분이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데 크게 일조한 것만 봐도,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를 의도적으로 유도했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마땅한 근거도 없이 국정원 대선 개입 쟁점을 끌어온 것은 상상에 가까운 추측이다.
만약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가 보인 무능, 무관심, 무책임이 ‘음모’라면 메르스 참사나 가습기 참사에서 국가가 보인 무능, 무관심, 무책임도 모두 음모로 봐야 할까?
음모론은 세계가 극소수의 지배자들이 입력한 프로그램대로 움직인다고 가정한다. 그 지배자들은 우리의 머릿속까지 조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리 싸움에 나서도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생각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현실의 지배자들은 강력한 지배 수단들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전지전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지금의 박근혜를 보라).
음모론이 바라보는 세계에서는 평범한 대중이 저항을 벌이고, 그 저항을 통해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세계관이다.
한편 음모론은 자신의 개연성 낮은 가설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반대되는 가설들은 무시하거나 깎아내린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하는 것이다. 취사 선택된 정보들만 보면 얼핏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만, 다른 증거와 정황을 함께 고려하면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세월X’라는 영상을 발표한 자로는 (배가 인양된 지금은 그 주장의 오류가 입증됐지만) 잠수함 같은 큰 물체가 세월호에 충돌해 배가 침몰했다고 주장했다. 
자로는 그 영상에서 자신의 가설을 강화하기 위해 과적과 화물의 이동, 부실한 고박이 침몰에 끼친 영향을 부정했다. ‘화물이 많이 실리긴 했지만 과적은 아니고, 고박이 부실하긴 했지만 아예 안 한 것도 아니었다’는 식이다. 
자로는 그 과정에서 특조위가 조사한 것들(참사 당일 배에 실렸던 화물의 무게, 화물의 이동이 침몰에 끼친 영향 등)은 무시하고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인천항만공사의 자료를 사용했다. 
이런 주장은 결국 정부와 자본에게 면죄부를 준다.
자로는 체제나 사회 구조의 문제를 등한시한 채, 세월호 참사를 거의 순전히 우연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단지 우연으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참사가 발생하기 몇 달 전에도 바람이나 파도 때문에 세월호는 항해를 중단해야 할 만큼 왼쪽으로 기운 적이 있었다. 배의 비정상적인 구조와 화물 과적 때문이었다.
한편 재난 관리에 필요한 예산이 대폭 삭감돼, 해경이 평소 받은 훈련은 바다에 빠진 사람 건져 내는 것뿐이었다. 이러니 어떻게 123정 대원들이 참사 현장에서 유능하게 대처할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보면 언젠가는 일어났을 참사가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

온건한

우연이나 음모로 참사를 설명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상식에 기대는 듯한 사람들이 있다. 우연이나 음모가 아니면 국가의 구조 방기나 진실 은폐 의도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체제나 국가 자체가 아니라 박근혜 개인 또는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로 축소하려고 한다. 그 결과 사회 시스템을 바꿀 필요 없이 정권을 교체하는 게 급선무가 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를 덮으려고 세월호 참사를 일으켰다는 식의 사고도 대통령 선거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음모론에 매료되는 사람들 중 다수가 온건한 개혁주의자들(대부분 친노무현 또는 친민주당)이다. 이들은 운동이 신자유주의 정책 등을 문제 삼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책임까지 끄집어내는 것을 마뜩잖아 한다. 
세월호 참사는 무한 이윤 경쟁 체제인 자본주의와 그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 낸 참사였다.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의혹을 해명한다는 차원 이상이어야 하고, 궁극으로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인 사회 시스템을 향한 여정 위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