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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임단협 잠정합의:
“이거 받으려고 2년을 싸운 게 아닙니다. 부결시켜야 합니다”

지난 12월 29일 현대중공업 사측과 노조 집행부가 2년간 끌어온 임금·단체협상에 잠정합의를 했다. 지역 언론들은 앞다퉈 이 소식을 보도하면서 “위기 극복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고, 울산시와 동구청장까지 나서 잠정합의안 가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적잖은 노동자들은 이번 합의안에 불만을 터뜨렸다.

잠정합의안은 지난해 기업 분할 반대 투쟁에 대한 ‘불법 파업’ 코드 철회(징계성 임금 삭감 완화), 해고자 일부 복직(3명 중 1명) 등의 부분적 성과가 있다. 그러나 기본급이 3년째 동결되고 성과급도 적어 노동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월 20시간의 별도 수당을 책정키로 했지만, 이것으로는 그동안 삭감된 임금을 만회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사측은 이번에 고용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인 문구에 그치는데다, 수주 절벽에 따른 ‘유휴 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유급휴직, 유연근무제 등을 실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순환 휴직이 앞으로 지속될 수 있고, 일감의 수준에 따라 노동시간을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도록 해 생계의 불안정성도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임금이 줄어서] 빚이 많아졌지만 연말 타결금으로 갚을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적게 나오면 생활 계획이 어긋나요.”

“조합원들 사이에 불만이 많아요. 성과급이 너무 적어요. 지금까지 참았는데 정말 이건 아닙니다.”

특히 민주파 집행부 등장 이후 새롭게 투쟁에 나선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잠정합의안이 상대적으로 근속연수가 적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할 수 있도록 사측에게 길을 열어 줬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에선 대략 2천여 명(근속 8년차 정도까지)이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본급이 올라야 할 대상으로 꼽힌다. 업계에선 조선업 정규직 노동자의 10퍼센트가량을 최저임금 미달자로 보고 있다. 꽤 오랫동안 조선업의 초임 수준이 상당히 낮아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번 잠정합의안은 최저임금 적용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상여금의 지급 방식을 변경하기로 했다. 상여금의 일부(800퍼센트 중 300퍼센트)를 매월 쪼개서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이리 되면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넓히는 개악을 하면 곧바로 이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부의 꼼수 - 산입 범위 확대, 상여금의 월할 분할 지급 – 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부적절한 타협에 나선 것이다.

더구나 이는 현대중공업 내에서도 젊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임금 노동자 층이 두텁게 형성될수록 장기근속자들의 임금 인상도 압박을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사측은 이미 2016년에 4급 이상자들(생산직 조합원의 절반 이상 되는)에게 지급되는 고정 연장수당을 삭감했고, 추가 임금체계 개편도 노리고 있다.

성과급 차등 지급

“기본급이 계속 오르지 않고 있는데, 상여금 300퍼센트까지 날리게 생겼습니다. 노조 [지도부]는 상여금 분할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해 온 만큼, 이걸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젊은 노동자들은 기본 시급이 낮아서 최저임금에 간신히 걸치는 경우가 많아요. 앞으로 최저임금이 더 오를 수 있는데, 노조가 벌써부터 사측의 부담을 없애줄 이유가 없습니다.”

“민주노총이 비판하고 있는 안을 우리가 왜 받아야 합니까? 노조는 노조답게 잘못된 정책에 맞서야 합니다. 우리 운동의 대의에 어긋나는 굴욕적 합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사측이 분할된 기업별로 노동자들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려는 것도 뜨거운 쟁점이다. 이번 임단협 협상은 분할된 기업별로 따로 진행되고 있는데, 1월 3일 오전 현재 잠정합의안이 나온 곳은 현대중공업(조선·해양플랜트 부문)뿐이다.

그런데 사측은 이 곳의 실적이 저조하기 때문에 성과급을 낮게 책정했다고 한다. 야비하게도 노동자들 사이에 실적 경쟁을 부추기고 낮은 성과급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이런 사측에 맞서 단결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쉽게도 노조 지도부는 성과급 차등 지급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한 부문에 대해서만 잠정합의를 했다. 노동자들은 ‘지도부가 이것마저 허용하려는 것인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회사가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에게 성과급을 차등 지급했습니다. 현대중공업에 97퍼센트를 지급했는데, 잠정합의안도 그대로 적용이 됐습니다. 적게는 240퍼센트, 많게는 350퍼센트 가량이 차이가 나게 생겼습니다.”

“성과급 차등 지급을 절대 허용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의 노조를 지키려고 산별노조로 간 의미가 퇴색될 것입니다.”

“지난 2년간 진급 누락, 임금 손실 등을 감수하면서 싸웠습니다. 우리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잠정합의안 수준을 바랐던 게 아닙니다. 합의안을 부결시켜야 합니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조업이 재개된 1월 3일, 현장에선 일부 활동가들이 잠정합의안의 문제점을 주장하며 부결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활동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불만을 모아 내고, 향후 투쟁의 발판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