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다룬 연재의 세 번째 글이다. 앞으로 연재에서는 한국의 민족 문제를 둘러싼 여러 쟁점을 다룰 것이다.


민족 해방 투쟁을 다룬 지난 연재에서 기억할 중요한 교훈은, 민족 해방 문제를 반제국주의 투쟁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레닌은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이루고 제국주의를 약화시키려는 목적 하에서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봤다.

민족 자결권 문제를 다룰 때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구체적 상황과 여러 매개적 요소를 감안해야 한다.

고전적 식민 억압이 드물어진 오늘날 ― 서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족 억압중국의 소수민족 억압은 중요한 예외다 ― 민족 문제는 ‘억압 민족 대 피억압 민족’의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더 복잡한 형태로 제기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민족 문제가 부상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 맥락을 먼저 살펴야 한다.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져들고 경제 위기가 정치 위기와 갈마드는 오늘날, 민족 문제는 저마다의 동기를 가진 다양한 계급에 의해 이용된다. 그런 맥락 속에서, 체제를 타도하기보다는 체제 안에서 세부 요소를 재배치하는 것, 즉 또 다른 (개선된) 국가 창출이 ‘현실적’ 위기 해결 방법으로 제기되곤 한다.

한편, 오늘날 세계가 국민국가 중심으로 조직돼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쟁 양상이 변하면서 민족 문제가 재등장하기도 한다. 제국주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과거 민족 갈등의 잔재들이 수면 위로 재부상하기도 하고, 특정 민족에 대한 천대가 심해지기도 하고, 오래 지속된 민족 간 갈등이 화해할 수 없는 분리 요구로 급격히 심화하기도 한다.

정치적 양극화도 이런 상황에 영향을 준다. 때로 민족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광범한 사회적 불만의 초점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사례

스코틀랜드가 바로 그런 사례다. 스코틀랜드 민족은 아일랜드나 식민지 인도와 달리 영국의 억압에 시달리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자본가들은 영국 제국주의의 동반자 구실을 했다. 아일랜드나 식민지 인도의 자본가들이 영국 제국주의에 의해 주변화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런데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 요구에 반대했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먼저, 스코틀랜드 독립은 영국 제국주의와 단절한다는 의미가 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영국 제국주의의 위신이 심대하게 추락할 테고 나토의 약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시 독립 요구가 영국 정부의 긴축에 반대하는 스코틀랜드 노동계급의 정서와 연결됐다는 점도 중요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등 사회주의자들이 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독립 찬성 캠페인을 벌인 배경이다.

게다가 스코틀랜드 민중 다수가 독립을 요구하는데 영국이 이를 부정하면 그 자체로 자결권 억압이 될 터였다.(이것이 10월에 카탈루냐에서 일어난 일이다.) 영국 지배계급은 아슬아슬한 정치적 도박을 벌여야 했다.(관련 기사: 본지 134호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 노동계급의 변화 염원이 일단 좌절되다’)

물론 스코틀랜드 독립 국가 건설로 노동계급의 염원이 자동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 제국주의 체제를 유지·발전시키는 데에 아무 이익이 없고 스코틀랜드 노동계급의 긴축 반대 염원을 공유하는 좌파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영국 노동계급과 스코틀랜드 노동계급 공통의 이해관계를 놓고 노동자 연대를 건설하고, 또한 신생 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의제를 더 밀어붙일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특정 민족 운동이 경쟁하는 제국주의 강대국들 중 어느 한 쪽에 기대는 경우도 있다.

그 운동이 제국주의의 대리인 구실을 한다면, 지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민족 자결권 지지는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자결권 지지로까지 확대돼선 안 된다. 예컨대 제1차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 민족주의 운동이 제정 러시아의 전쟁 도구가 됐는데, 세르비아를 포함한 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 운동에 대한 지지를 중단했다.

최근에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례가 있다. 한편에서는 친서방·반(反)러시아 민족주의가, 다른 한편에서는 친러시아 민족주의가 발흥했고, 어느 쪽도 지지할 수 없었다.(관련 기사: 본지 122호 ‘서방에도 러시아에도 반대한다 ―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제국주의 전쟁 놀음을 중단하라’)

제국주의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제3세계 현지 세력이나 정권을 악마화하는 일은 흔하다. 그런데 악마화 대상 중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시리아의 아사드처럼 실제로 자국민을 끔찍이 억압한 독재자들이 있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개입이 이런 ‘악마들’을 저지하기 위한 ‘인도주의적’인 조처라고 포장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제국주의 세력의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제국주의가 비난하는 ‘소악마’들이 바로 그 제국주의의 후원 하에 독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례를 많이 볼 수 있거니와(1990년 이전의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대표적이다), ‘악마 같은 짓’을 빌미 삼은 제국주의의 개입이 사태를 더 악화시킨 사례가 무수하다. 시리아는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

무엇보다, 노동자 대중이 자력 해방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기에 그 ‘소악마’들의 문제는 그 나라 노동자 대중 운동이 스스로 싸워 해결할 일이다. 제국주의의 개입은 현지 대중 저항이 일어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거나, 그 저항을 엉뚱한 방향으로 뒤틀어 버린다. 이란 반정부 시위를 제멋대로 이용하려는 트럼프와 서방 지배자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그들의 개입에 반대해야 하는 까닭이다.

지배자들은 언제나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잠재력을 폄훼하지만, 수십 년 동안 이집트를 짓누른 친미 독재자 무바라크를 제거한 것은 미국의 ‘인도주의’가 아니라 아랍 대중의 혁명이었다.

“해방이야말로 나의 조국”

 마르크스주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족주의의 목표는 자본주의적 국민국가의 건설·발전이므로,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마르크스주의와는 목표 자체가 다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족 문제를 접근할 때 어떻게 하면 제국주의(자본주의)를 약화시키고 국제 노동계급의 자발적 단결을 촉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그 기준에 따라 특정한 문제(혹은 운동)에 관한 입장과 전술을 정할 수 있다.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이 ‘자기’ 민족의 다른 계급이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 인민에 일체감을 느끼도록 고무하고, 노동계급 투쟁이 민족 분단선을 넘어 단결하도록 애쓴다. 민족 갈등으로 대량 학살이 벌어진 역사가 있는 보스니아에서 노동자들이 “우리는 세 언어로 모두 배고프다”, “해방이야말로 나의 조국” 등을 구호 삼아 민족을 뛰어넘는 보편적 임금 인상, 재국유화, 무상의료 등을 요구하며 투쟁한 것처럼 말이다.

한편, 한국의 민족 문제를 다룰 때도 일제의 식민지 지배 경험, 원치 않은 분단, 경제 성장과 역내 갈등 등에서 비롯한 여러 쟁점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연재에서는 이를 자세히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