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 이후 세월호 운동도 변화를 겪고 있다. 우선 세월호가 인양됐고,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요구가 성취됐다. 문재인이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부둥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진상규명을 약속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첫 정부 ‘백서’가 내년에 나온다. 이제 대통령인 문재인과 국가 고위 관료들도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닌다. 박근혜 정부였다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등장으로 세월호 운동의 일각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유가족들은 적어도 박근혜처럼 진실 은폐를 위한 도발은 없을 것이라 기대한다. 끔찍한 3년이 이제 막 끝나고 부수적이지만 퇴진 운동의 결과로 탄생한 정권이니 좀 더 지켜보자는 생각도 꽤 존재한다.

세월호 운동의 골간인 기층 활동도 더는 기존 방식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최근 전주남문에 설치했던 세월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시민농성장을 1199일 만에 자진 철거했다. 이제 광화문광장을 제외하곤 농성장은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 각지에 만들어진 세월호 지역 모임들도 서서히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출처 세월호 유가족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운동은 한 국면이 끝나고 새로운 국면이 도래한 듯하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우리가 원하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안전사회로 가는 징조일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렇다.

정부가 제작하는 백서는 참사의 주범 중 하나인 해수부가 작성한다. 해수부는 백서에 논란이 될 수 있는 참사 원인을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문재인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지만 정부 직속 조사위원회 설립 약속을 어겼고, 사회적 참사 특별법은 박근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정당들 간 합의로 누더기가 돼 통과됐다. 문재인은 참사의 핵심 책임자들을 승진시켰다.

요컨대, 바뀐 것은 있으나 실질적 변화는 아직 요원하다. 세월호 운동에 능동적 일부로 참가한 이들이라면 지난 세월호 운동이 얻은 성과와 약점을 돌아보고, 변화된 조건 속에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내다봐야 한다.

반박근혜 운동의 구심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만으로 폭발적인 쟁점이었다. 배가 뒤집힌 것도 황당했지만 구조 과정은 더 황당했다. 박근혜 정부는 거짓과 은폐 시도를 반복했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유가족의 의견을 무시한 채 누더기 특별법 제정을 서둘렀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을 운반했음이 드러났고, 국정원 개입 의혹이 불거졌으며, 안전 규제 완화와 정경유착 등등이 끊임없이 폭로됐다. 그야말로 자본주의 이윤 체제가 낳은 문제와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부패까지 결합된 종합세트였다.

ⓒ조승진

이는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이윤 지향 체제와 이 체제를 수호하고 대변하려는 국가 권력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지난 3년간 세월호 운동은 그 가능성을 보여 줬고, 이박근혜 정부에 맞서 온 노동운동과 함께 전진했다.

2013년 하반기 전교조의 규약시정명령 거부,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등이 이어지면서 박근혜 정부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이 시작됐고, 이들은 2014년 세월호 운동에도 동참했다. 의료 민영화 저지 투쟁을 해 온 보건 노동자들도 병원의 ‘세월호’인 의료 민영화를 제기했다. 1년 동안 100만 명도 못 미쳤던 의료 민영화 반대 서명에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달 만에 200만 명이 동참했다. 세월호 운동과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이 만나자 의료 민영화 추진이 일단 멈췄다.

2015년 세월호 운동은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결합하면서 정치적 투쟁으로 전진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특조위를 무력화하려고 특별법 시행령을 쓰레기처럼 만들려다가 큰 반발을 불렀다. 이 무렵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 등장 이후 첫 민주노총 파업이 벌어졌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부패 추문(‘성완종 게이트’)이 폭로되면서 박근혜는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결국 정부는 시행령 발표를 세 차례나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박근혜 지지율은 〈리얼미터〉와 〈한국갤럽〉 조사 모두에서 최초로 3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대구·경북 지지율의 하락 폭이 가장 컸다. 비록 시행령 폐기 투쟁은 당장의 요구를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박근혜 정부에 맞선 정치적 항의 시위였고, 세월호 운동은 반박근혜 정서의 구심이 됐다.

이 과정에서 미조직 청년들의 참가가 늘어났고, 세월호 참사와 운동은 젊은 세대의 정치적 급진화의 계기가 됐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급진화했다. 유가족들은 집회 연단에서 박근혜를 규탄하고 민주노총 총파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일부 유가족은 좌파인 노동자연대가 주최하는 ‘맑시즘’ 포럼에 연사로 와서 세월호 참사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민주노총 파업과 연결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세월호 운동은 박근혜 퇴진 운동의 밑거름 구실을 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특별법 천만 서명 운동이 천만 리본 나눔이 되고 결과적으로 천만 촛불이 됐어요”라며 세월호 운동이 박근혜 퇴진 운동 점화에 한 몫 했음에 뿌듯해 했다. 퇴진 운동은 세월호 참사 해결을 긴급한 대중의 요구로 부각시켰다.

비록 “세월호 7시간”이 박근혜 파면 사유에서 제외됐지만 세월호 운동이 제기한 박근혜 구속은 현실화됐다.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행진”을 하며 “여기까지 오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구나 … 가족들이 참 많이 울었어요.”(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지난 3년 동안 정부의 진실 왜곡에 항의해 노숙농성을 하며 보낸 시간에 대한 보상과도 같은 기쁨이자 승리였다.

이제까지 세월호 운동은 여러 굴곡이 있었지만 박근혜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을 불러 모으면서 조금씩 전진했다. 완전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진상 규명도 됐다. 세월호 운동은 유가족의 강력한 의지와 (불충분했지만) 노동운동이 일정하게 결합하며 전진했고, 반박근혜 정치투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정부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건설·강화되면서 참가자들의 사기도 올라갔다.

ⓒ이미진

민주당 의존

한편, 세월호 운동에서 주요한 구실을 한 NGO 등 온건 개혁주의 리더들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았다.

문제는 민주당이 운동에 한 발 걸치는 듯하면서 운동의 발목을 잡는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매번 결정적 순간에 새누리당과 공조 하에 뒤통수를 쳤다. 이것은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기업주들에 기반해 국가 운영을 목표로 하므로, 운동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체제나 국가에 도전하도록 발전하는 것을 허용치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집권 후에도 이전 우파 정권이 하던 짓을 그대로 추진하거나 국회에서 구여권 세력과 공조 하에 여러 악법을 통과시키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기업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위로부터의 개혁을 중시하는 온건파 리더들이 민주당에 기대려는 태도는 여러모로 문제를 낳았다.

2014년 참사 직후에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투표로 반영되길 바랐다. 그런 바람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 이들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삼가도록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안팎에서 압력을 넣었다.

그해 여름에는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박영선이 세월호 집회 연단에서 (세월호대책회의의 공식 요구였던) 수사권·기소권 있는 특별법을 쟁취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며 기소권을 뺀 안으로 협상하겠다고 했음에도 (당시 사회자를 비롯해 세월호 운동의 온건파 리더들은) 비판을 아예 삼갔다. 명백히 유가족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인데도 그랬다.

이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지 못하자 온건파 리더들은 도리어 유가족들에게 수사권·기소권 포기를 설득했다. 이들은 세월호 운동 3년 내내 이런 관점을 유지해왔다.

운동의 초점을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으로만 한정한 것은 운동 참가자들의 시야를 국회 안 협상으로 가두는 효과를 냈다. 당연히 여야간 협상이 주된 장이 되며 운동 참가자들의 수동적 태도를 강화하게 됐다. 나중에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는 박주민 변호사가 당시 세월호 유가족과 야당을 잇는 구실을 했다.

한편, 노동운동의 온건파 리더들은 ‘개인으로 참가하라’, ‘조끼 입지 마라’ 등을 요구했다. 노동계급이 이 운동의 주된 참가자들인데도 주도적 구실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2014년 민주당은 이런 틈새를 이용해 유가족 뒤통수를 치며 반쪽짜리 특별법에 합의했다. 그런데 온건파 주요 리더들은 특조위 구성과 운영 과정에 개입하려고 오히려 민주당과의 공조를 강화했다. 유가족과 세월호 운동 참가자들은 정부와 특조위 운영 과정을 지켜보는 수동적 존재가 됐다.

특별법을 통한 진상 규명에 시야를 한정해 그것의 정당성만 강조하다 보니, 이미 밝혀진 것들을 가지고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것 등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 밝혀진 것이 없다고만 강조하게 됐다. 음모론이 계속 운동 한켠에서 또아리를 튼 것도 이와 연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2015년 세월호 운동은 다시금 대중적 항의 행동으로 부상했다. 박근혜의 도발 때문이었다. 박근혜는 반쪽짜리 특별법조차 무력화시키려 이른바 쓰레기 시행령을 내놨다. 이에 유가족들은 삭발까지 하고 청와대 행진을 시작했다. 세월호 운동은 박근혜를 정면으로 겨냥했고 사람들을 다시금 광장으로 불러 모았다. 투쟁은 1년 전보다 훨씬 격렬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당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투쟁과 부분적으로 결합됐던 민주노총 4월 파업이 충분히 더 크고 충분히 강력했다면 세월호 시행령 폐기 투쟁의 결과도 달라졌을 수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유가족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경찰의 차벽을 뚫고 만나자 수만 명의 참가자들이 “총파업”을 연호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민주노총 파업에서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노동계급 고유의 힘은 발휘되지 않았다.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한 당시 공무원노조 위원장 이충재의 배신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파업은 5월 초에 마무리됐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박근혜의 정치적 위기를 이용해 투쟁을 확대시키지 못했다. 박근혜는 노동자 투쟁이 마무리되자 곧바로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민주당은 공무원연금 개악에는 새누리당과 합의하면서 시행령은 일부 수정을 요구하는 식으로 세월호 운동과 노동운동을 떼어놓으려 노력했다. 물론 이조차도 박근혜의 완강한 거부로 흐지부지 끝났지만 이들이 전혀 믿을 만한 세력이 못 된다는 점은 다시금 확인됐다.

2016년 박근혜는 특조위 강제 해산이라는 도발을 또다시 시도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진정으로 막으려 들지 않았다. 총선에서 여권 심판론의 근거로만 삼았을 뿐이다. 온건파 리더들도 특조위원들 응원하기와 민주당과 새로운 특별법 제정 공조에 무게중심을 두고는 (민주당이 불편해 할 수 있는) 대중적 항의를 조직하려 하지는 않았다.

한 국면이 지나다

박근혜 정부 하의 여당은 노골적인 방해세력이었기에 유가족과 세월호 운동의 리더들은 이들과는 별로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부분적으로는 그런 투쟁의 결과로 정권이 바뀌었다.

바꿘 정부 아래서 세월호 운동의 주요 리더들과 일부 유가족은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일부 유가족들도 2기 특조위 방해세력은 여당이 아니라 구여권인 야당이라며 민주당의 문제점은 침묵한다. 문재인이 참사의 주범을 승진시키고, 해수부가 미수습자 유해를 은폐했는데도 정부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길 주저한다. 민주당이 누더기가 된 사회적 참사 특별법을 통과시켜놓고는 자화자찬할 때도 비슷한 태도였다. 박근혜 정부였다면 곧바로 항의 행동이 벌어질 법한데 말이다. 이는 세월호 운동이 당분간 과거처럼 정부에 맞선 투쟁으로 폭발적으로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촛불 혁명”의 계승자처럼 행동하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6개월 동안 세월호 쟁점에서 보인 결과는 함량 미달이다. 최근 영흥도 낚싯배 사고 등 해상사고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처는 전임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제 문재인과 민주당은 책임에서 자유로운 야당의 처지가 아니다.

따라서 세월호 운동은 정부와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요구를 삭감하거나 비판을 자제하면 안 된다. 오히려 비판을 삼갈수록 문재인 정부에게 올곧게 촛불의 염원을 이행하라고 하는 압력을 완화시켜 준다. 또 스스로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행동하며 의식을 발전시키는 일을 지체시키며, 이 운동의 지지자들을 수동화시키고 운동이 끝났다는 메시지를 줘서 오히려 필요할 때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다.

세월호 운동은 완전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쟁취할 자격과 잠재력이 있다. 혁명적 좌파는 이것이 발휘되도록 노동운동과의 결합을 추구하며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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