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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합의, 깨질 수 있다:
중동 긴장을 계속 키우는 제국주의 갈등

이미 전쟁이 만연한 중동에서 군사적 충돌이 격화할 가능성이 일주일 안에 크게 높아질 수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관건은 트럼프가 1월 12~17일 사이에 각종 대이란 경제 제재를 재개하느냐다. 트럼프는 재개 여부를 정기적으로 판단할 권한이 있는데 그 날짜가 다가오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시절부터 이란 핵합의가 문제투성이라며 비판해 왔다. 2017년 10월 이란 핵합의 불인증은 미국 의회에 제재에 관한 법률을 촉구하는 성격이었다면, 이번에는 대통령 권한으로 제재를 직접 부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파괴력이 더 크다.

경제 제재는 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제재 유예는 2015년 오바마 정부가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 5개국과 함께 이란 핵개발을 억제하는 대가로 합의한 것이다.

미국 지배자들 일부는 핵합의를 최종 파기하는 대신 제재를 카드 삼아 재협상을 요구해 핵개발뿐 아니라 미사일 개발, 역내 군사활동과 무장정파 지원 등에도 양보를 압박하며 이란을 더 옥죄자고 한다. 트럼프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미국이 제재를 부활시키면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력을 재고하겠다고 이미 밝혔다. 재협상으로 제재를 다시 유예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핵합의 파기의 책임을 미국에 묻고 핵개발에 나설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은 이란 핵개발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별러 왔다. 이 국가들은 지역 맹주 지위를 놓고 오랫동안 이란과 다퉈 왔고, 이란 견제를 위해 수년 동안 시리아,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지난해 말 레바논에서 내전 가능성을 높였다.

정말로 트럼프가 대이란 제재를 부활시킨다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더 공세적으로 나가도록 부추겨 이미 거센 중동 강국들 간 충돌을 한 차원 더 끌어 올릴 것이다.


이란 민중을 해치는 경제 제재

1월 5일 트럼프는 이란 기업 5곳을 상대로 신규 제재를 발표하면서 이란 반정부 시위대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겹다 못해 어처구니 없다.

최근 이란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주된 불만 중 하나는 높은 청년 실업이었는데,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가 실업자 양산의 핵심적 구실을 했다. 평범한 이란인들은 핵합의로 경제 제재가 해제되면 일자리가 생기길 기대했지만, 후보 시절부터 이란 핵합의를 비난한 트럼프가 당선하자 투자자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지난해 11월 최악의 지진으로 이란에서 수백 명이 사망했을 때도 남아 있는 제재들은 인도주의 원조의 걸림돌 구실을 했다. 이 때문에 이란 출신 활동가 미나 칸라르자데는 “미국 관료들이 연대한다고 떠드는 것은 이란인들 사이에서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예루살렘 선언은 제국주의적 계획의 일부

12월 초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인정한 것도 대이란 적대 정책과 맞물려 있다. 아랍의 친미 국가들(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은 뒤로는 이스라엘과 협력하면서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평범한 아랍인들의 분노 때문에 공개적인 군사 협력은 꺼려 왔다. 그래서 트럼프는 (단순 무식하게)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치워 버리려 한다.

친미 아랍 국가들은 겉으로는 예루살렘 선언을 비난하지만 위선에 불과하다. 이집트 정부가 주요 방송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수도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현재 자치정부가 있는 라말라가 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설득하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 최근 〈뉴욕 타임스〉에 폭로됐다. 앞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빈살만이 비슷한 내용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윽박질렀던 것이 폭로되기도 했다.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제국주의 갈등

트럼프가 제재 부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배경에는 지난 수년간 흔들려 온 미국의 중동 패권 문제가 있다. 실제로 수년간 미국의 중동 동맹국들은 조율된 채로 행동하기보다는 저마다 개입에 나섰고 이 와중에 혼란이 더 커졌다. 시리아 문제가 대표적이다.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중동 질서 불안정’을 운운할 때는 평범한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패권이 흔들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 문제를 앞세우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자신의 주요 동맹을 다시금 결집시킬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실제로 이 두 국가는 역내 경쟁 구도의 관점에서 자신들이 과거 오바마한테 ‘홀대’받았다며 트럼프의 대이란 적대 정책을 크게 반긴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트럼프의 대이란 적대 정책에 반대한다. 평화를 사랑해서나 인도주의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도 당사국인 합의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뒤흔드는 일은 자신들의 위신을 크게 구기기 때문이다. 또, 전략적 가치가 있는 중동 자원을 개발하고 싶은데 미국이 이 시도를 무산시키는 것도 싫을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 회사 토탈은 대이란 경제 제재 해제를 이용해 지난해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지 일부 개발 사업(5조 원 규모)을 따냈는데 제재가 부활하면 중국 기업에 넘겨야 할 처지다. 또한 유럽연합은 군함까지 동원해 중동의 난민 유입을 막고 있는데 전쟁이 격화하면 이 부담도 커진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파기하고 전면적 제재에 나설 경우 유럽이 독자적으로 이란과 교역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트럼프가 핵합의를 흔드는 것을 맹비난하면서도 이란에게도 재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한다.

러시아는 군대를 투입해 시리아에서 혁명적 운동을 파괴하고 이란과 함께 아사드 독재 정권을 지켰다. 아랍 혁명 이후 불안정한 정세에서 미국의 개입이 아쉬웠던 많은 중동 지배자들에게 이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러시아는 이런 영향력 증대를 굳히려고 1월 말 시리아에서 ‘평화’를 ‘중재’하는 자리를 갖겠다고 발표했고 시리아에서 러시아군 철군 “쇼”까지 했다.(뒤로는 시리아 내 러시아군 기지 보유를 49년 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시리아에서도 미국은 이란의 영향력 억제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러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철군 쇼 이후에도 양국 전투기들은 서로 위협적으로 비행했고, 러시아는 최근 시리아 내 러시아 기지가 받은 드론 공격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