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폴란드에서는 2016년에 벌어진 '검은 시위' 이후 낙태권 시위가 다시금 일어났다. 우파의 반동적인 낙태 규제 강화 시도가 의회에서 재개됐기 때문이다. 이 시위의 배경과 의미, 전망을 폴란드 현지 활동가 안드레이 제브로프스키가 전한다. 안드레이 제브로프스키는 폴란드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단체 '노동자 민주주의'의 활동가다.

안드레이 제브로프스키는 2016년에도 '검은 시위' 소식그 승리 소식 등 폴란드 낙태권 운동 소식과 그 교훈을 〈노동자 연대〉에 전한 바 있다. 


폴란드 곳곳에서 여성의 낙태 결정권을 위한 거리투쟁이 다시 벌어졌다.

1월 13일, 시위대 4천 명이 폴란드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17일에는 폴란드 전역의 대도시와 지방도시 수십여 곳에서 집회가 벌어졌다. [수도] 바르샤바에서 벌어진 가장 큰 집회에서 시위대 2천 명은 자유주의 우파 성향의 두 야당 사무실까지 행진한 뒤, 집권당이자 우익 표퓰리스트 정당인 법과정의당(PiS) 당사로 향했다.

1월 17일 수도 바르샤바에서 수천 명이 시위에 나서며 집권당과 주요 야당들의 당사를 향해 차례로 행진했다 ⓒ폴란드 '노동자 민주주의'

이번 시위는 2016년에 벌어진 위대한 ‘검은 시위’를 연상시켰다. 당시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이끈 이 대중 집회는 낙태에 대한 규제를 더한층 강화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꺾었다.

올해 시위가 벌어진 것은 1월 10일 국회 하원에서 심사 중인 두 법안의 첫 독회에 대한 투표가 이루어진 직후였다. 이 중 첫 독회가 통과된 “낙태 금지” 법안은 법으로 최종 통과될 경우, 치료 불가능한 장애가 있는 태아에 대한 낙태조차 금지한다. 몇몇 병원에서는 이미 이러한 금지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2014년에 한 여성이 낙태 시술을 거부당해 눈꺼풀과 두개골 절반이 없어 뇌가 다 드러난 태아를 출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례다.

(폴란드 가톨릭 교회 지도부인) 폴란드 주교단은 ‘낙태 금지’ 법안을 지지한다. 가톨릭 교회의 이런 입장은 폴란드 정부에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압력을 더한층 넣고 있다. 법과정의당이 지지 기반을 다지려고 가톨릭 교회에 기대기 때문이다.

독회 통과가 거부된 또 다른 법안은 임신 12주 내에 여성이 요청하면 언제든 낙태를 허용하는 “여성 살리기” 법안이다.

“여성 살리기” 법안은 학교에서 실질적인 성교육을 제공하고 각종 피임수단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응급 시 예전처럼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한 독회는 안타깝게도 고작 8표 차이로 통과되지 못했다. 소위 여성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두 자유주의 야당 소속 하원의원 42명이 해당 법안에 대한 투표를 거부하지 않았거나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면 막을 수 있는 결과였다.

"합법 낙태 불허는 살인이다!" ⓒ폴란드 '노동자 민주주의'

보수 집권정당인 법과정의당이 국회의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 살리기” 법안이 최종 통과되리라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법안 통과를 위한 첫 단계였기에, 독회가 통과됐다면 국회 산하 분과위원회에서 (법안에 대한) 더 많은 논의가 벌어졌을 것이다. 낙태금지법 완화를 지지하는 운동은 이를 여성의 결정권을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았을 것이다.

 좌파의 구실

 이런 상황에서 야만적인 “낙태 금지” 법안의 독회 통과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시위대는 여성의 권리를 외면한 의원들에게 사임하라고 요구했다. 시위대는 “우리가 (진짜) 야당이다” 하고 구호를 외쳤다.

의회 내 자유주의 야당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은 좌파가 자신을 드러내기 좋은 기회다.

1월 13일 국회의사당 밖에서 벌어진 첫 번째 시위는 좌파 정당 라젬(‘함께’라는 뜻)이 제안하고 페미니스트 단체와 사회민주주의 단체, 녹색당, 신디칼리스트[전투적 노동조합주의] 단체, 필자가 속한 혁명적 사회주의자 단체 ‘노동자 민주주의’ 등 다양한 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1월 17일 벌어진 일련의 집회는 ‘폴란드 여성 파업’이 주최했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소수였지만 시위가 벌어진 이틀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고 시위를 보도한 TV 뉴스 곳곳에 ‘노동자 민주주의’의 팻말과 현수막이 등장했다.

낙태는 계급문제

폴란드는 이미 유럽에서 가장 억압적인 낙태법을 갖춘 나라다. 폴란드 여성들이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는 경우는 건강이나 생명에 위협이 될 때, (강간이나 근친상간처럼) 불법적인 행위의 결과로 임신했을 때, 태아가 매우 심각하고 불가역적인 장애를 가진 경우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이 합법적 낙태시술을 받기란 이보다도 더 어렵다. [인구가 4천만 명인] 폴란드에서 현재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클리닉이나 병원은 47곳에 불과하다.

1월 13일 낙태권 시위는 좌파들이 주도적으로 조직했다 ⓒ폴란드 '노동자 민주주의'

낙태는 계급문제다. 낙태를 제한하면 여성들은 음지로 내몰리거나(폴란드에서는 매년 8만~12만 건의 낙태 시술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추산된다), 낙태가 합법인 인근 국가까지 가야 한다.

국회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우리는 현행 낙태법과 낙태에 대한 (보수적) 사회 분위기로 인해 벌어진 여러 끔찍한 사례들에 대해 들었다. 자신이 임신한 줄도 모르던 12살 소녀가 아이를 낳았고, 한 14살 소녀는 학교 사물함 보관소에서 출산하는 일이 벌어졌다.

낙태권 운동의 전망

우리는 여성의 선택권을 위한 투쟁에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주요 노동조합 지도부는 (연대노조의 경우) 가톨릭 교회와의 연계 때문에 낙태권 운동에 적대적이거나, (전국노동조합동맹 OPZZ의 경우) 낙태권 문제를 다루는 것을 두려워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노조의 모든 층위에서 낙태권 운동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압력을 넣어야 하고 동료 노동자들이 향후 벌어질 시위에 참여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일부 언론은 이번 시위가 2016년에 훨씬 못 미치는 규모라며 그 중요성을 깎아내린다. 그러나 이는 사태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다. 자유주의자들이 연단에서 부각되던 시위들보다 이번 집회 분위기는 훨씬 더 전투적이었다.

이번 시위는 낙태권 운동이 되살아났음을 인상적으로 보여 줬다. 폴란드 전체 인구의 약 40퍼센트가 낙태권이 확대되길 바라고 있다. 정부가 야만적인 법을 통과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투쟁을 격화시키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