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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힘〉의 3·20 평가 유감

〈노동자의 힘〉 허성호 편집국장은 3·20 행동에 대해 비판적 논평을 했다.
(〈노동자의 힘〉 75호, http://pwc.or.kr/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2&no=2393).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집회 당일에 “폴리스라인도 없었고 충돌도 없었다.”
(2) “집회의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은 명사들이 한결같이 노무현을 직접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데는 매우 인색했다.”
(3) “국제주의 정신도 없었다.”

허국장은 3·20 행동을 비판하기 위해 사실 자체를 무시했다.

(1) 전투경찰이 종로5가 사거리와 광화문에 배치됐고, 폴리스라인도 설치됐다
(www.alltogether.or.kr/2005new/link.php에서 그 날 사진을 볼 수 있다).
(2) 모든 연사들이 노무현 정부를 비난했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연사들이 “한결같이” 노무현 비난에 인색했던 것도 아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노무현 정부가 이런 전쟁[이라크전쟁]에 일부로서 계속 참여하려 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부시를 비판한 뒤에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고 노동자 투쟁 지지를 호소했다
(www.alltogether.or.kr/2005new/link.php에서 나의 연설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결의문에도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결의문은 www.antiwar.or.kr에 게재돼 있다).
(3) “국제주의 정신도 없었다”는 주장도 왜곡이다. 허성호 씨 자신이 지적하듯이 3·20 행동 자체가 국제 반전 행동이었다. 그 날 집회에서 이라크인 노조 활동가(파루옥 사딕 이스마엘)와 일본인 반전운동가(카사하라 히카루)가 연설했다. 미국·영국·호주·필리핀 반전활동가들이 보낸 국제 연대 메시지도 참가자들에게 배포됐다.

내가 이런 사실에 대해 정정 보도를 요청하자 허국장은 황당한 답변을 보내 왔다.(이 신문에 실려 있는 허국장의 글을 보시오.)

허국장은 왜곡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폴리스라인”을 경찰과의 “충돌” 자체로 이해하고, 대통령을 “직접 비난하거나 공격”하려면 반드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허국장은 3·20 행동이 경찰과 충돌을 빚지 않아 “무기력했다”고 말한다.

나는 무력 충돌 일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나는 광주항쟁, 6월항쟁, 파업시 피킷팅, 이라크인들의 무장저항, 러시아 10월혁명 등을 지지한다. 그러나 무력 충돌이 언제나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경찰과의 충돌 여부가 집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집회 규모, 집회의 요구, 집회 참가자들의 구성, 집회 분위기, 참가자들의 사기 등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봤을 때 3·20 행동은 성공적이었다. 그 날 서울에서만 5천 명이 참가해 반전운동의 건재를 과시했다. 2백16개 단체와 8백여 명의 개인들이 재정을 후원했다. 노동조합은 60여 군데가 후원했다.(‘노동자의 힘’ 회원이 속해 있는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경찰과의 충돌 여부로 집회의 가치를 판단하는 자칭 “폭력주의자” 허국장에게는 3·19/20 국제 행동이 세계 대부분의 곳에서 완전한 실패작일 것이다. 20만 명이 모였던 런던에서도, 7백50여 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던 미국에서도, 10만 명이 행진했던 로마에서도 반전 시위대는 대부분 경찰과 충돌하지 않았다.

그 날 서울의 시위대 5천 명이 허성호 씨 주장대로 “해야 할 실력행사조차 방기”하지 않았다면 노무현 정권이 파병을 철회했을까? 제국주의 전쟁이 그렇게 만만한가?

그런데 지난 2년 간 ‘노동자의 힘’이 열의를 갖고 참가한 집회 가운데 손배가압류와 분신항의로 모두가 분노했던 2003년 노동자대회 정도를 제외하고 상당수가 경찰과 충돌했던가?

불필요하게 폭력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1970년대 말 이탈리아 자율주의 학생운동 같은 게 아니라면, 한 세기 반 남짓의 세계노동운동사에서, 특히 혁명적 노동자 운동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폭력은 ‘필요악’이었다. 그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었고, 불가피하게 필요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악이었다.

허국장은 연사들이 “노무현 퇴진”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무현을 직접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데 매우 인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자의 힘〉도 올해 들어 비정규직 투쟁 등에서 ‘노무현 퇴진’을 주장하지 않았다. 허국장은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파병반대국민행동 안에서도 ‘노동자의 힘’측 활동가들은 노무현 ‘퇴진’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이나 ‘다함께’ 활동가들,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들은 지난해 김선일 씨 정국에서 노무현을 한국 반전 운동의 과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퇴진’ 요구로 표현돼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나는 한국 반전 운동이 노무현에 표적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전 운동 안에는 노무현 비판을 꺼리는 단체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노무현 퇴진”이 반전 공동 행동의 전제조건인 것처럼 동맹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초좌익적 편향이다. 그런 태도는 십중팔구 공동의 조직을 분열시킬 것이다.

매우 다양한 이질적인 세력들이 제한된 구체적 쟁점 ― 이라크 파병 반대나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비정규직 개악안 중단 등 ― 을 중심으로 광범한 공동행동을 건설하려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오류는 비타협주의이다. 그런 오류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소아병’이라 한다.

허국장은 또한 3·20 집회 때 “민주노동당이 파시즘적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일부 민주노동당 팻말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허국장이 일본의 강점과 식민통치를 40년 간 겪고 그 피해자와 가해자가 여전히 상당수 생존해 있는 국민의 민족주의적 감정 표현을 “국가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을 구분할 줄 모르는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이고, 민족주의 정서를 이유로 제국주의 반대로부터의 종파적 도피를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종파주의는 다름 아니라 바로 이런 태도, 즉 이런저런 결함을 들어 ― 때로는 생트집을 잡아서라도 ― 살아 있는 현실 운동을 지지하기를 기피하는 태도를 말한다. 허국장은 3·20 집회가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을 생략했던 것조차 비판할 만큼 단단히 마음이 굳어 있었다.

사실, 그 동안 ‘노동자의 힘’ 지도부(중앙상집)는 반전 운동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3·20 집회 때도 ‘노동자의 힘’은 몇몇 상근자 개인들만이 참가했을 뿐이고 3·20 재정 분담금도 납부하지 않았다.

또한 〈노동자의 힘〉 이번 호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을 ‘종파주의’라고 비판한다. 머나먼 이국의 조직에 대해 보도하기 전에 먼저 국내 문제나 왜곡 없이 보도하는 게 기관지의 신뢰성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힘〉 편집실에게는 미안하지만, 국제사회주의경향은 인터내셔널이 아니므로 SWP가 중앙 지도부이고 우리는 국가별 지부 조직인 중앙집중적 구조가 아니다. 그러니, ‘다함께’를 흠집내려고 번번이 SWP에 대한 중상을 해도 소용없다.

그 동안 ‘노동자의 힘’ 기관지는 좌파민족주의 계열이나 ‘다함께’가 열의를 갖고 참가한 운동을 이러저러한 흠을 잡아 깎아내리려 해왔다. ‘노동자의 힘’ 친화적 편집자들이 취사선택한 진보네트워크 사진들에는 ‘다함께’가 참가자의 대부분을 이룬 집회에 대해서조차 ‘다함께’의 팻말이나 펼침막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그렇게 찍으려고 해도 어려울 일이다.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의도적으로 왜곡을 하는 것은 논쟁하면서도 행동을 통일해 온 세계 노동운동의 최상의 역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스탈린주의의 유산에나 어울린다.

‘노동자의 힘’ 중앙상집은 전노투 소속 다른 급진좌파들과의 최근 버거운 관계를 의식해, 또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민주노동당과의 경쟁 관계를 의식해, 그리고 ‘노동자의 힘’ 내 ‘견해그룹’(분파)과의 관계를 의식해 ‘다함께’를 속죄양 삼아 지도력의 위기를 벗어나려 하기보다는 좌파 ― 종파가 아니라 ― 로서의 명예를 되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6월 김선일 씨 1주기 반전 행동, 11월 부시 방한 반대 행동 등에 ‘노동자의 힘’이 하나의 단체로서 ― 개인들이 아니라 ― 참가하기를 바란다. 물론 국가보안법 반대 등 다른 주요 정치쟁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