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트랜스젠더 천대를 다룬 책인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책갈피)이 출판됐다.

오늘날 트랜스젠더는 유독 천대받는 집단이다. 성소수자 중에서도 트랜스젠더는 혐오 범죄에 유독 많이 시달린다. 트랜스젠더는 대부분 “남자냐, 여자냐?” 하는 질문에서부터 화장실, 병원, 학교, 은행, 투표소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힘겨운 순간들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점점 드러나고 있고, 트랜스젠더 권리를 위한 활동도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몇 해 전부터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 단체가 결성돼 활동하고 있고, 이들이 중심이 돼 2016년부터 매년 11월 20일에 트랜스젠더 추모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동시에 트랜스젠더 권리를 둘러싼 논쟁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일부 근본적 페미니스트는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주장을 한다. 연예인 지망생 한서희 씨가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고 주장해 하리수 씨 등과 논쟁을 벌인 바 있고, 한때 ‘워마드’ 사이트에 가입하려면 “크로스드레서는 정신병자”라는 문구를 입력해야만 했다. 또 근본적 페미니즘 성향의 신생 출판사 열다북스는 트랜스젠더 배척 주장으로 악명 높은 실라 제프리스의 일부 논문을 번역해 출간할 예정이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 로라 마일스 외 지음 | 정진희 엮음 | 책갈피 | 2018년 | 184쪽 | 9000원

이런 상황에서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이 나온 것은 아주 반갑다. 이 책의 엮은이 정진희 젠더와계급연구회 연구원은 최근 책 출간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여기에 참석한 한 트랜스젠더는 트위터에서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받은 경험을 얘기하며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의 출간 소식에 희망을 얻어 참가했다. 책 출간 소식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 말이 이 책의 출간 의의를 잘 보여 준다.

주 저자인 로라 마일스는 트랜스 여성이고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이다. 영국 최초로(어쩌면 세계 최초로) 노동조합 전국집행위원으로 선출된 트랜스젠더였다. 마일스는 자신의 풍부한 활동 경험을 살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트랜스젠더 권리를 옹호한다.

차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장점은 무엇보다 차별의 물질적 근원을 분석하고 해방의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1부 “트랜스젠더 차별과 저항”에서 로라 마일스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이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컨대 아메리카 수렵 채집 집단에서는 오늘날 트랜스젠더라고 할 수 있는 ‘두 영혼의 사람들’이 존재했고 이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존중 받았다.

그러나 계급 사회가 등장하면서 남성이 지배하는 새로운 가족, 세습을 위한 일부일처제와 여성의 지위 하락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성별 규범에 벗어난 행동이 비난 받고 금지됐”다.

자본주의의 지배자들 역시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떠맡는 가족 제도를 공고히하기 위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성별 규범 등도 재생산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성애 혐오나 트랜스젠더 혐오도 재생산된다. 따라서 완전한 해방을 위해서는 그 뿌리인 자본주의를 공격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권리 보장하라” 2017년 영국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자긍심 행진 ⓒ출처 Trans Pride Brighton

저항의 일부

마일스는 트랜스젠더가 역사에서 언제나 저항의 일부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등장한 동성애자 해방운동의 첫째 물결은 동성애자뿐 아니라 젠더 때문에 탄압받는 사람들을 광범하게 포괄했다.” 또한 1960년대 말에 등장한 둘째 물결에서도 트랜스젠더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정체성 정치의 득세와 성소수자 운동의 온건 개혁주의화 속에서 트랜스젠더는 성소수자운동 내에서 밀려나게 됐다. 마일스는 이 과정을 돌아보며 성소수자 운동의 빛나는 역사뿐 아니라 반면교사 삼아야 할 역사도 다룬다. 

마일스는 정체성 정치, 퀴어 이론, 교차성 개념의 장점과 한계를 균형 있게 다루며 왜 마르크스주의가 차별에 맞선 효과적 전략·전술을 제시할 수 있는지 논증한다.

1부에는 2017년 영국 교원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주의자와 성소수자 교사, 그 밖의 평등 지향적인 대의원들이 힘을 합쳐 트랜스젠더 교사와 학생들을 분명히 지지하는 역사적인 결의안을 채택한 사례를 다룬 글도 실려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역사를 사회주의자들과 트랜스젠더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가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2부에서는 트랜스젠더 권리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을 다룬다. 

로라 마일스는 트랜스 여성이 ‘여성의 공간’을 침해해 여성을 위험에 빠뜨린다거나, 여성으로 사회화하지 않아서 “진짜 여성”이 아니라거나, 트랜스 여성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거나 하는 식의 주장을 조목조목 설득력 있게 반박한다. 이런 주장들은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스트들이 종종 차용하는 논리다. 최근 한국에서 있었던 한서희-하리수 논쟁에 관한 양효영의 글도 포함돼 있다.

분명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차별 반대 운동 내 소수다. 마일스는 그럼에도 이런 논쟁에 적극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이런 주장이 “차별에 맞선 집단적 저항을 건설할 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차별받고 착취받는 모두에게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트랜스젠더 배척 주장을 무시하지 말고 대차게 논쟁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논쟁에서 트랜스젠더 권리를 옹호하는 데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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