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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존폐 위기에 처한 STX·성동조선:
국유화로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중견 조선소인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이 기업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지난해 말 채권단은 기업 실사를 통해 ‘존속 가치보다 청산 가치가 더 높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정부가 두 기업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2차 실사에 돌입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삼정KPMG를 컨설팅사로 선정했고, 2월 말~3월 초경 실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이 조선소들을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연은 “무리가 없는 빠른 처리”, “선박 발주와 고용 지원”을 말했다. 정부는 최근 RG(선박 수주 시 정부가 신용 보증을 해주는 선수금 환급보증) 발급 기준을 완화하기도 했다.

1월 24일 오후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STX조선의 구조조정 중단과 일자리 보장을 염원하며 만든 ‘STX희망호’를 끌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조승진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말하지 않는 대목에 핵심이 있다. 문재인은 청산을 하지 않겠다고, 특히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한일위안부 합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의 문제에서 여러 차례 드러났듯이, 모호한 말로 눈속임을 하다가 결국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수주 절벽 속에서 경쟁 기업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업계에서는 이참에 위기 기업들을 청산하는 것이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STX·성동조선의 채권단이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인력 감축, 임금 삭감 등)에 어떤 제동도 걸지 않고 있다. 채권단이 각각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으로 정부가 관할하는 국책은행들인데도 말이다. 정부가 이번에 실사를 맡긴 삼정KPMG는 쌍용차에서 가차없이 노동자 3000여 명을 해고하라고 컨설팅한 전력도 있다. 기업 청산을 피하게 되더라도 매각이나 합병 등으로 대량해고, 임금·조건 후퇴 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형 선고”

국책 은행들은 이미 지난 2년여간 이곳들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해 인력을 크게 줄여 왔다. 특히 RG 발급과 정부 발주를 카드로 내세워 노동자들에게 거듭된 양보를 압박했다. 유감스럽게도 노조 지도부는 이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한 채, 임금 동결, 희망퇴직, 무쟁의 등을 합의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말했다. “채권단이, 양보를 하지 않으면 RG 발급도 없다고 노조를 계속 압박했어요. 처음에는 임금을 동결하면 수주를 지원하겠다고 했죠. 노조가 양보했는데 물량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었어요. 그 다음에는 희망퇴직, 휴직을 요구했어요. 2년 동안 그렇게 내줬는데 달라진 건 없어요. 우리에게 사기를 친 거죠.”

그러는 동안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노조 지도부의 거듭된 양보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없었다. STX조선은 인력이 60퍼센트 이상 축소됐고(3600여 명에서 1400여 명으로), 성동조선은 절반이 줄었다(2500여 명에서 1200여 명으로). 지난해부터 진행된 조업 단축으로 노동자들은 수개월째 휴직 상태에 내몰려 있고, ‘희망퇴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당 노조들은 정부와 국책은행들(채권단)에 수주 지원을 통해 고용을 보장하라고 촉구해 왔다. 특히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에게 “있는 일자리부터 지켜라” 하고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말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대답을 내놔야 합니다. 그동안 많은 동료들이 떠났고 오랜 휴직으로 생계가 힘들어졌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서는 안 됩니다.”

노동운동의 경험

문제는 정부가 어떤 ‘처분’을 내리기 전에 단호하게 행동에 돌입해 만만찮게 압력을 행사하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지는 노동운동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폐업, 해고, 무급휴직 등에 직면해 공장 점거파업을 벌였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그리고 2009년 세계경제가 위기를 맞았을 때 미국, 유럽 등 곳곳에서 점거파업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1997년과 2008년 경제 위기 시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투쟁이 효과적으로 조직되고 연대가 확대된 곳에서는 사측과 정부를 물러서게 만들고 상당한 양보를 따낼 수 있었다.

공장 점거는 물량 감소 등으로 파업이 생산에 가하는 타격이 덜한 조건에서도 노동자들의 결속력을 높이고 정치적 연대의 초점을 형성하는 데서 탁월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특히 기업이 부도·파산 위기에 직면한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국유화를 내걸고 점거파업을 벌였다. 일자리 문제가 중요하게 부상하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일자리 보장을 위한 국유화 요구가 광범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 사실 국책은행들이 채권자이거나 법정관리 상태에 있는 기업은 사실상 정부 소유와 다름없다. 관건은 이런 기업을 영구적으로 국유화해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그것을 강제할 진정한 투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정부에게 국유화를 요구하는 것은 수주 지원을 약속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금 조선업 경기 상황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세계 조선업은 2008년 말 이후 구조조정으로 200여 조선소가 문을 닫고 한국에서도 소형 조선소들이 줄도산을 했는데도, 여전히 과잉설비, 과잉인력 상태에 놓여 있다. 지난해부터 선박 발주량이 조금 늘었지만 회복 수준은 매우 더디고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시장의 흐름, 경기 상황에 내맡겨서는 일자리를 온전하게 보장받기 어렵다.

한국의 조선업 숙련 인력과 기술력은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도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숙련 인력, 기술력을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주장이 산업 경쟁력, 효율성 논리와 맞물려 제기되고 있어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들은 과잉 인력 문제가 조선업 경쟁력에 무리를 주는 만큼 인력의 일부를 감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거나, 기껏해야 고용을 어느 정도 보장하더라도 임금을 줄이고 휴직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기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노동자들이 고통을 짊어질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정부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자리로 전환해 고용을 보장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가령 중형조선소들을 풍력 발전으로 전환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조선업과 풍력 발전은 핵심 기술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덴마크나 독일에서 조선업 노동자들의 기술력을 이용해 풍력 발전을 확대한 사례도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키고 친환경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 전체 노동계급에도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