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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평가와 전망

4·13 총선은 (1) 낮은 투표율로 드러난 기성 정치권 모두에 대한 국민적 불신 (2) 김대중 정부에 대한 반감과 제1야당의 승리 (3) 총선시민연대 낙선 운동의 승리 (4) 민주노동당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저조한 투표율이다. 16대 총선 투표율은 총선거 사상 최저인 57.2퍼센트를 기록했다. 15대 총선 때의 63.9퍼센트보다 6.7퍼센트 낮은 수치다. 울산을 제외(59.1퍼센트)한 대도시 지역들은 평균 투표율보다 더 낮았다.

그만큼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환멸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4월 15일치 〈한겨레〉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사상 최저라는 낮은 투표율에서 드러났듯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무관심은 정치권 전체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광범한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반감과 제1야당의 승리

총선 후 나타난 기성 정치권의 세력 분포도를 보면, 여당이 제1당이 되는 데 실패했고, 한나라당이 제1당을 유지했고, 자민련과 민국당이 몰락했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제1당이 되는 데 실패했다. 이것은 김대중 정권에 대한 대중적 반감의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조차 이탈의 조짐이 보였다. 호남권에서 민주당 득표율은 지난 15대 총선 때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 득표율(71.6퍼센트)보다 낮은 65.6퍼센트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호남권 29석 가운데 공천자 25명을 당선(나머지 4명의 무소속도 모두 친여 인물들이다)시킬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의 패배가 곧 한나라당의 부상으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호남권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심정으로 민주당을 선택했을 뿐이다. 우리 당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민주노동당은 왜 호남권에 공천하지 않았는가. 사실 광주만 해도 찍을 만한 후보가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특히, 수도권과 강원도에서 비교적 선전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1) 소위 386 세대라고 불리는 ‘개혁적’ 이미지의 후보를 수도권에 대거 투입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은 국민 대중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수용하는 시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투표 3일 전에 발표된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 소식은 경기 북부와 강원도에서 얼마간 효과를 낳았다. “만약 남북 정상회담 합의라는 호재가 없었다면 민주당은 패배할 수도 있었다.” “여당지향적인 강원의 표심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과 맞물려 여당에 쏠린 것 같다.”(〈조선일보〉 4월 14일치.)

한편,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신 덕택에 어부지리로 제1당을 유지했다. 한나라당의 제1당 유지는 대중의 우경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조차 수도권에서는 ‘개혁적’ 이미지의 후보들을 내보냈다. 이들 또한 한때 민주화 운동의 전력을 갖고 있던 인물들이다(김부겸, 원희룡 등). 이들은 선거 동안에 한나라당의 우파적 본질을 은폐하는 구실을 했다.

한나라당은 영남권에서는 완승을 거뒀다. “한나라당 표 쏠림 현상은 반DJ 표가 똘똘 뭉친 결과였다.”(〈조선일보〉 4월 18일치.) 그러나,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출마한 울산과 창원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이 곳에서는 지역주의 투표 성향보다 계급 투표 양상이 훨씬 두드러졌다. 지역주의는 노동자 계급 운동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기성 정당들은 지역주의 정치 구조의 수혜자이므로, 그들 스스로가 지역주의 극복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오직 노동자 계급에 기반한 진보 정당만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통쾌하게도 김종필의 자민련(17석)은 몰락했다. 국민 대중은 구시대적인 미치광이 우익 정당을 간단하게 거부했다. 서울에선 청년진보당보다도 못한 득표를 했다.

소위 ‘386 세대’들의 돌풍이 뜻하는 바

‘개혁적’ 이미지로 치장한 소위 386 세대가 대거 원내에 진출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할 것 없이 386세대들이 대거 당선되거나(원희룡, 오세훈, 임종석, 장성민, 김성호, 송영길 등), 또는 아주 근소한 차로 낙선했다.

386 세대들은 대체로 다른 지역보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훨씬 강한 수도권 지역에 투입됐다. “16대 총선 결과의 특징 중 하나는 기존 정치인에 대한 ‘바꿔’ 바람이었다.”(〈조선일보〉 4월 15일치.) 지역구 선거에 출마한 전현직 의원들은 2백60명인데, 이 가운데 1백5명이 여의도 재진입에 실패했다. 다선 의원일수록 낙선율이 높았다. 또, 지역구에 출마한 현역의원 2백7명 가운데 86명(41.5퍼센트)이 낙선했으며, 특히 수도권에선 현역 86명 중 41명이 떨어져 47.6퍼센트의 낙선율을 기록했다.

그만큼 변화와 개혁에 대한 바람이 컸다. 따라서 대중의 급진화 테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소위 386 세대들이 변화와 개혁을 가져다 줄 리 만무하다. 그들은 다만 기성의 보수 정당들에게 개혁적 덧칠만 해 줄 뿐이다.

총선시민연대의 승리

외국 언론들은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선 운동이라고 지적했다. 낙천·낙선 운동은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을 극대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총선시민연대가 발표한 86명 중 59명이 낙선했다(낙선율 68.6퍼센트). 집중 낙선대상자 22명 가운데 15명(68.2퍼센트)이 낙선했다. 특히, 이사철, 이건개, 김중위의 낙선은 아주 통쾌한 일이다.

수도권 낙선대상자 20명 가운데 19명이 낙선했다(95.5퍼센트). 호남권에서는 8명 가운데 6명(75퍼센트)이 낙선했고, 충청과 강원권에서는 23명 가운데 18명(78.3퍼센트)이 낙선했다.

영남 지역은 35명 가운데 16명(45.7퍼센트), 특히 집중 낙선대상자 8명 가운데 3명만 낙선되고, 김태호, 정형근, 하순봉 등 한나라당 후보 5명은 전원 60퍼센트를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낙천·낙선 운동은 결코 민주노동당에게 불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낙천·낙선 운동이 불러일으킨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토양을 제공했다.

조희연 교수는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가운데 다수는 심정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조희연 교수도 지적했듯이, 낙선 운동은 선거 불참여 또는 진보 정당 지지 또는 기성 정당의 ‘개혁적’ 후보를 찍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총선시민연대의 기성 정당에 대한 부정적 캠페인을 우리 당 지지로 끌어내는 것은 오돗이 우리의 몫이었다.

총선시민연대가 만들어 놓은 기성 정치에 대한 폭넓은 거부감은 앞으로 우리 당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당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을 확실하게 지지하고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낙천·낙선 운동에 담겨 있는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적 반감의 정서를 충분하게 흡수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의 선전

원내 진출에 실패한 아쉬움은 크지만, 창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우리 당은 선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

21명의 후보를 내 22만 3천여 표를 얻음으로써 후보자를 낸 지역에서 13.1퍼센트(전체 득표율 1.18퍼센트)라는 비교적 높은 평균 득표율을 올렸다. 노동자 밀집 지구인 울산과 창원에서는 30퍼센트대를, 그리고 성남 중원에서도 21퍼센트를 득표했다. 대전 유성구에서도 18퍼센트를 득표했다.

다소 미흡하지만, 우리 당은 “이번 선거에서 진보 정당의 가능성을 현실로서 보여주었[다]”. 또한, “선거 기간 내내 전국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확인”했다.

우리 당의 국회의원 후보들은 “국민소환제 실시, 재벌과 정치인의 부정축재 재산 몰수, 정리해고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 사회복지 확대, 국가보안법 철폐” 등 우리 당의 정책과 대안을 선거 공간을 통해 주장했다. 이것은 당을 선전하고 당원을 조직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내 진출 실패와 전국 득표율 2퍼센트 미달 때문에 당은 법적 해산을 당하게 됐다.(사실 법적 해산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 실망, 분함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당이 패배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주변으로부터 ‘거 봐, 진보 정당은 안 돼’ 하는 비관적 압력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실패 원인을 살펴보자.

(1) 선거법의 억압적·우파적·진보정치 배제적 성격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는 정당명부제를 거부함으로써 진보진영의 원내 진출을 봉쇄했다. 또, 현행 선거법 자체의 독소 조항들은 진보진영 후보들의 손과 발을 묶는 족쇄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우리 당의 선거법 개정 투쟁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당이 정당명부제의 통과 여부에 대해 다소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은 정당명부제가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 때는 총선시민연대가 막 낙천·낙선 운동을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총선시민연대와 함께하면서, 우리 당이 총선시민연대가 제기하지 않고 있던 정당명부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편, 우리 당 선거 운동은 현행 선거법을 존중하면서 이뤄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우리 당 선거 운동은 많은 경우에 선거법을 어겨야 했다. 그렇다면, 당 중앙은 전당 차원에서 당원들에게 현행 선거법을 어기라고 호소하고 설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다. 마치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낙선 운동 초기에 조직적 차원에서 선거법 위반을 선동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선거법 위반은 순전히 개별 지구당이나 개인들의 책임으로 돼 버렸다.(강북을 지구당과 서울지역 학생위원회가 갈등을 빚은 것 가운데 하나가 이 부분이다.)

(2) 원내 진출 실패의 가장 커다란 원인은 울산 북구에서 아깝게 낙선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최초로 노동자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곳이 바로 울산 북구다. 그래서 울산 북구는 전국적 초점을 형성하고 있었다. 만약 우리 당내에서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정치인(예컨대 권영길 대표)이 출마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우리 당은 성명서를 통해 “민주노동당의 유지·강화”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재창당과 관련해 당명 변경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선거 패인을 “운동권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거나, “노동(당명)의 협소함”에서 찾고 있다. 보수 우파 신문 〈조선일보〉도 우리 당의 원내 진출 실패를 여기에서 찾고 있다.

“운동권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는 주장은 ‘운동권’ 출신 ‘386 세대’들의 대거 당선을 설명하지 못한다. 우파들은 운동권 출신 386 세대들의 과거 투쟁과 투옥 전력을 폭로하고 비난했지만, “민주화 관련 전과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노동의 협소함”을 지적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우리 당이 이번 선거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기반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득표할 수 있었을까? 우리 당이 고득표를 했던 곳은 모두 노동자 밀집 지구(울산, 창원, 성남, 대전 등)였고, 노동자들의 적극적 지지 덕분이었다. 오히려 노동 대중 속에서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는 것이 우리 당의 긴급한 과제일 것이다. 노동자 계급에 확실하게 중심을 두면서 다양한 피억압 대중을 당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전망

4·13 총선은 여소야대의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는 끊임 없이 정계 개편을 시도할 것이고, 이것은 또다시 기성 정치인들간의 암투와 분열을 만들어낼 것이다. 선거가 끝났더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대중 정부는 선거 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한겨레〉처럼 말하고 〈조선일보〉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럴수록 김대중 정부의 개혁에 대한 실망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또, 김대중 정부의 이율배반적 태도는 오히려 보수 우파당인 한나라당만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될수록 김대중 정부는 더 한층 수구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경제 조건의 악화와 맞물려 노동자 계급 운동과의 한판 격돌을 낳게 될 것이다.

한편, 외국 언론들이 일제히 지적했듯이,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는 총선시민연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총선시민연대 그 자체라기보다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선 운동으로 표상되는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 대중의 반감이다. 이것은 다름아닌 대중의 급진화의 한 표현이다.

우리 학생위원회는 급진화하고 있는 대중, 특히 학생들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진화 물결 한복판에 서 있어야 한다. 기성의 조직된 운동권이 아닌 이제 새로이 급진화되는 새물결을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급진화 세대들을 조직하기 위해 한결 유연하고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또, 급진화 물결 속에서 다양한 현실 정치 쟁점 특히, 노동자 운동 관련 쟁점들을 부단히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 토론과 논쟁이 결여된 조직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 토론과 논쟁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충분히 밝히면서 해야 한다. 그럴 때 건설적인 토론과 논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점차 응집력 있고 단일한 조직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조직의 성장은 대체로 규모에 비례한다. 지금 우리 학생위원회는 각 학교가 규모와 영향력 모두에서 지나치게 불균등하다. 따라서 학생위원회가 갖고 있는 자원을 좀더 집중해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물론, 이런 방식의 조직 성장이 효율적인가 하는 문제는 충분하게 토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