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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과 일자리 감소를 낳나?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16.4퍼센트 인상된 지 고작 1달 여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우파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줄도산 위기에 처하고, 대량 해고에 나서고 있다’거나, ‘물가 상승으로 저소득층이 피해를 본다’며 말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린 것이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을 추진 중인 안철수와 유승민도 자신들의 대선 공약을 내팽개치고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며 우파 본색을 드러냈다. 안철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운 분들을 더 어렵게 만들고 일자리도 줄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승민도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라며 “앞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나 안철수·유승민 등이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비난하고 나선 것을 비판했다. 대선 때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내놓더니 이제는 말을 바꾼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들도 ‘속도 조절론’을 내놓고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상쇄시키거나 약화시키는 데 나서고 있다. 구체적으로, 최저임금에 상여금·숙식비 등을 포함시키려 하거나, 지역·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려 하면서 말이다.

ⓒ자료 통계청

최저임금 인상으로 물가가 오르나?

우파는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상승률을 높인다며 공세를 펴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최저임금 상승이 오히려 물가 상승을 불러 저소득층의 처지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들은 최근 일부 식품 가격과 서비스업 가격 인상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파는 다른 한편,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016년 말을 기준으로 국내 중소기업 전체 매출의 83.7퍼센트가 납품 매출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최저임금이 올라도 가격을 올릴 수 없어 2·3차 협력업체들이 줄도산과 대량 해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위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된다. 전자는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낳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임금이 인상돼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부른다는 주장은 상품 가격을 개별 자본가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자본주의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기업 간 (국제적) 경쟁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임금이 오르면 물가가 오른다’는 주장을 비판했다. 만약 이 주장이 참이라면 자본가들은 임금 인상을 반대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산물의 가격을 올려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본가들은 생산물의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일시적으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결국 경쟁의 압력이 작용해 자본가들이 ‘적정한’ 가격으로 상품을 팔도록 강제한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이 ‘적정한 가격’이 결국 (사회 전체의 노동생산성과 관련돼 있는)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노동량)에 의해 규제된다고 봤다. 따라서 임금 상승은 물가 상승을 낳는 게 아니라 이윤 감소를 낳는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이다.

실제 통계 자료들도 최저임금 상승이 물가 인상을 부른다는 주장을 부정한다. 당장 올해 1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0퍼센트 상승에 그쳤다. 이는 2016년 8월 0.5퍼센트 상승 이후 1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최저임금이 적용된 2001년 이후인 2002년(16.8퍼센트)과 2006년(13.1퍼센트)에도 최저임금이 10퍼센트 이상 오른 바 있다. 그러나 200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퍼센트로 전년보다 1.3퍼센트포인트 떨어졌고, 2006년에도 2.2퍼센트로 전년보다 0.6퍼센트포인트 떨어졌다.

한국노동연구원 강승복 연구위원이 2015년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최저임금이 10퍼센트 오르면 물가는 약 0.2~0.4퍼센트 오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조차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물가에만 반영된다고 전제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은 임금이 오르면 다양한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기 때문에 실제 영향은 이보다 작다고 지적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나?

물가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스란히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증거는 없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의 최저임금 인상 사례를 봐도 임금 인상이 일자리 감소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시애틀시는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리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이다. 시애틀은 지난 2015년 시간당 9.47달러이던 최저 시급을 2016년 최고 13달러까지 올렸다.

이에 대해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시간당 임금은 3.1퍼센트 올랐지만, 전체 근로시간은 9.4퍼센트 줄었다. 그 결과 저임금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소득은 1897달러에서 1772달러로 125달러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가 통계를 잘못 해석했다는 반론이 나온다. 저임금 노동자 감소는 “저임금 근로자가 해고된 것이 아니라 저임금에서 벗어나게 된 것”일 뿐이라는 반론이다. 일자리의 질이 좋아져 저임금 일자리가 감소한 것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애틀의 지난해 9월 실업률은 3.8퍼센트로 그 전해보다 0.1퍼센트포인트 낮아졌고, 미국 평균(4.2퍼센트)보다 0.4퍼센트포인트 낮았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버클리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시애틀시의 외식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최저임금이 10퍼센트 오를 때 외식업계 전체 노동자의 임금은 1퍼센트 올랐으며,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등의 고용 감소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독일 사례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 ‘하르츠 개혁’으로 저임금의 비정규직이 늘어나자 최저임금제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2015년 1월 시급 8.5유로(약 1만 1500원)의 최저임금 도입이 결정됐다.

유럽연합(EU) 통계청 조사를 보면, 2016년 독일 경제 성장률은 1.9퍼센트를 기록했다. 과거 10년 평균치(1.4퍼센트)를 웃도는 성장률이다. 실업률은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2015년 1월 4.8퍼센트에서 2016년 3월 4.2퍼센트로 하락했다.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016년 6퍼센트에서 2017년 3퍼센트로 줄었다.

한국의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봐도, 고용률은 최저임금 인상과 상관없이 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해 왔다.

이런 결과들은 임금 수준이 곧장 일자리 수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이와 관련해 마르크스는 실업과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 축적이지 그 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축적률이 독립변수이고 임금률은 종속변수[이다.]” 경기 호황기에는 고용·임금이 올라도 자본 투자가 확대되고, 이는 다시 고용·임금을 끌어올린다.

물론 임금 인상이 자본 축적(투자 증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임금이 이윤을 압박할 정도로 오르게 되면, 자본가들은 투자를 줄이고 (결국 고용 증가율이 감소하며) 임금 상승을 억제하게 된다. 게다가 임금 인상과 자본간 경쟁은 자본을 노동생산성 제고 경쟁으로 내몰고, 자본가들은 신규 기계·설비로 노동자를 대체해 비용을 줄이도록 만든다. 이 때문에 자본 투자가 늘어나더라도 일자리 증가율은 점점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이런 식으로 생성되는 ‘상대적 과잉인구’(실업자)는 취업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강요하고,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이 된다.

요컨대, 임금 인상이 이윤율을 감소시킨다면 자본가들은 자본 축적을 줄이고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해, 실업을 유발하고 이를 통해 임금을 다시 ‘적정’ 수준 이하로 묶어 둘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해야 할 뿐 아니라, 일자리 확대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 요구도 내놓아야 한다.

끝으로, 자본주의가 실업을 유발하고 임금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 임금 인상 투쟁은 무의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도, 여러 좌파 단체들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을 무의미하다고 봤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몫이 정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들은 ‘임금이 오르면 수요가 증대하고, 결국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임금 인상 투쟁은 무익하거나 유해하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소책자 《임금, 가격, 이윤》이나 《고타 강령 초안 비판》에서 이런 주장을 낱낱이 비판하고, 임금 인상과 노동조합 투쟁의 의의를 적극 옹호했다. “만약 자본과 일상적으로 충돌하는 데서 비겁하게 물러난다면, 노동자들은 틀림없이 더 커다란 운동을 일으킬 자격을 스스로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임금 인상 투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한다. 그 투쟁은 착취의 결과에 맞선 투쟁이지, 착취 자체에 맞서는 투쟁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마르크스는 일상적 투쟁(경제적 투쟁)으로 만들어진 힘을 사회 혁명을 위한 투쟁에 사용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노동자 임금 인상 투쟁을 적극 지지할 뿐 아니라, 이 투쟁 속에서 사회 혁명을 위한 수단(혁명적 정치조직)을 만드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