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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 내 엇박자와 갈등:
한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이 드러나다

2월 5일 서울고법의 정형식 재판부가 삼성 이재용을 집행유예로 석방했을 때, 사법부도 ‘적폐’라는 비난이 크게 일었다. 박영수 특검과 검찰은 법원 판결에 반발했다.

그런데 며칠 뒤 이재용의 뇌물을 받은 최순실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김세윤 재판부는 이재용 담당 재판부와 달리 “안종범 수첩”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고, 삼성이 최순실에게 준 뇌물 규모를 더 크게 판단했다.

롯데 회장 신동빈도 뇌물죄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재용 석방 사흘 후 검찰은 전격적으로 삼성전자를 연이틀 압수수색했다. 이명박 적폐 수사의 핵심에 있는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이건희 사면의 대가로) 삼성전자가 대납했다는 의혹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국가가 여전히 강력하지만, 자본들의 힘도 더 세졌다. 이 둘 모두 조직 노동계급의 저항을 두려워한다

핵심 국가기관들 사이에서 엇박자가 난 것이다. 심지어 사법부 안에서도 같은 건을 두고 판결이 달랐다. 물론 두 재판부 모두 이재용의 삼성 경영권 승계에는 특혜가 없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는 검찰이 신경질을 부렸다.

검찰 내부에서도 갈등과 투쟁이 표면화되고 있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 성추행과 조직적 은폐 사실을 폭로했다. 여기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안태근(전 법무부 검찰국장)이나 최교일(현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연루됐다.

검찰 내 이단아로 알려진 임은정 검사는 긴급 구성된 검찰 내 성추행진상조사단장 검사 조희진도 (임 검사 자신의 건을 포함한) 다른 성추행 은폐에 연루됐다고 폭로했다. 압박을 받은 탓인지 조희진은 또 다른 성추행 의혹을 받는 현직 부장검사를 긴급 체포했고 곧 기소할 예정이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 수사에도 검찰 내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됐다. 여기에는 박근혜 탄핵에 앞장섰던 자유한국당 권성동이 연루돼 있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표면상으로는 이명박과 다스 의혹 수사에서 서울동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 사이에 온도차가 있어 보인다.

최근 검찰은 이명박근혜 적폐 수사로 지지도 받았지만, 구 여권의 권력 남용에 ‘부역’한 죄로 적폐 취급을 받아 왔다. 성추행을 포함한 적폐 대상으로 지목된 인물들(검찰 내 주류이자 극히 부패함)을 보면, 검찰 외부의 개혁 요구(공수처 신설 같은)에 대한 이해관계와 대응 방책을 놓고 권력 투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내분

퇴진 촛불이 정점을 이루자 정권 퇴진 열망을 국회가 받아안아 헌법이 규정한 탄핵 절차로 수렴한 것이 한국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신용을 높이고, 안착시키고, 강화했다는 주장이 진보·좌파 일각에서도 있었다. 이런 관찰은 〈노동자 연대〉도 공유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일부 다른 좌파처럼 박근혜 퇴진 후 대규모 노동자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나친 낙관론을 펴는 것은 근시안에 일면적이었다. 〈노동자 연대〉가 덧붙였듯이, 한국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모순과 불안정성이 드러나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 자본주의는 1960년대 이후 시장 지향적 국가자본주의 형태로 성장해 왔다. ‘정경 유착’이 한국 경제의 유전자처럼 된 이유다. 그런데 경제 성장(자본 축적)의 결과 국가와 자본의 세력균형에 변화가 생겼다. 국가가 여전히 강력하지만, 자본의 힘도 더 세졌고 자본의 요구와 지향도 더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노동계급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했다. 오늘날 인구의 70퍼센트가량을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관심사를 제쳐놓고 국가적 의제를 말할 수 없다. 노동계급의 의식과 조직도 성장했다. 1987년과 1997년의 대중 파업은 한국의 국가 형태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전환시킨 진정한 동력이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이 자본주의적 정치 구조 안으로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킨다든지 하여) 조직 노동계급을 (부분적으로) 통합시키는 국가형태다.

한국의 지배자들은 조직 노동계급의 저항에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세계시장에의 통합도가 갈수록 높아져 끊임없이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처지에 노동운동에 타협적으로 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소심하다. 결국 그들 다수가 쓸모 없어진 박근혜를 버리고 구원투수로 문재인을 선택했지만, 문재인의 개혁(온건해도)과 포퓰리즘(최저임금 인상이나 사회적 대화 같은)이 노동계급의 저항을 고무할까 봐 또 걱정한다.

바로 이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매우 불안정하게 발전해 온 것이다. 가령 과거에는 경제 성장의 필요악으로 취급되던 국가와 자본의 유착이 이제는 (적어도 상식 차원에서는) “적폐”로 취급된다.

노동운동에 흔히 몽둥이도 휘두르고 싶지만 눈치도 봐야 한다. 이명박과 박근혜조차 사회적 대화 방식으로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강행했고, 자본주의 야당들은 노동 개악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며 명목상 이에 반대했다.

이런 모순들 때문에 국가와 자본의 관계도 일관되지 못하고 (국가기관을 포함해) 내분이 일상화돼 있다. 여야 갈등이 거의 언제나 첨예한 배경이기도 하다.

근래에는 세계경제 위기가 장기화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지배계급 내 위기감과 갈등도 첨예해졌다. 최근 평창 동계 올림픽을 맞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잠시 조성됐지만, 오래가긴 어렵다.(이번 호에 실린 김영익 기자의 “한미연합훈련 중단하라”를 보시오.) 주한미군사령관 브룩스는 최근 미국 의회에 (올림픽 동안 중단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이 계속될 거라고 보고했다.

한국의 우파는 (남북 해빙 무드가 오래 지속되면) 억압적 반공주의 통치 수단들이 약화될까 봐 걱정한다. 그래서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발표, 철강 등에 대한 트럼프의 무역 제재 방침 등 경제 이슈가 한미동맹 등 안보 이슈로 금세 번졌다.

이런 일들은 국가기관 내 갈등 상황을 노동계급이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저들이 날카롭게 분열해 있을 때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행동에 나서는 것이 유리한 이유다. 경기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혜롭게 정세를 활용해 승리한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