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며칠 동안 지방의 한 번화가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 두 분에 대한 순직 인정 요구 서명을 세월호 특별법 개정 서명과 함께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모의고사를 마치고 놀러 나온 고등학생들이 물밀듯 몰려왔는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순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라는 간략한 말만 듣고도 정말 많은 학생들이 공감을 표하며 거침 없이 펜을 집었습니다.

그중에는 서명을 하면서도 “근데 기간제 교사가 뭐에요?” 하고 묻는 학생도 아주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눈에는 똑같이 열심히 일하고 가르치는 선생님들일 뿐, ‘기간제’라는 꼬리표는 보이지도 중요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 값진 경험의 기억이 최근에 문득 떠올랐습니다. 한 사범대 졸업생과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를 두고 토론하다가였습니다.

그는 비정규직 차별에 답답함을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선생님들이 교실에 처음 들어가면 학생들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선생님 기간제죠?’라더라고요. 이 질문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그 학교에서 일하는 몇 년 동안이 차별 탓에 괴롭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런 걸 어디서 배웠을까요?”

그에게서 전해 들은 학생들의 모습은 제가 2년 전에 본 학생들의 모습과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이질적입니다. 그 사이에는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과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논쟁과 운동이 있었습니다. 촛불 운동을 통해 수많은 요구가 터져 나왔고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폐지와 정규직화 요구는 여지 없이 광범한 응원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허나 그 운동 덕분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는 약속을 어긴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정규직화라는 기간제 교사들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내쳤습니다. 노동자들이 그에 반발하며 용기 있는 저항에 나서자 문재인 정부는 교육부에서 심의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하지만 8월 전교조 중집은 사실상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묵인하는 결정을 내렸고, 곧이어 열린 대의원대회에서도 (의미 있는 가능성 또한 남겼지만) 중집의 결정이 뒤집히지는 못했습니다. 피를 말리는 기간을 지나 기간제 교사들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것은 정부의 또 한 번의 배신과, 전교조와 수많은 정규직 교사 동료들의 외면이었습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학교에서는 차별 고착화와 심지어 해고로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평등과 공감, 연대와 협력을 배워야 할 학교라는 공간을 오히려 차별을 정당하고 당연한 것으로 배우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앞서 말한 사범대 졸업생이 학생들의 야속함에 답답하다면서 던진 “아이들이 이런 걸 어디서 배웠을까요?” 하는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답변입니다. (물론 그런 모습이 전국 모든 학교 현장과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2년 전, 비정규직 차별에 반대하며 서명을 하던 학생들의 그 따뜻한 마음을 현실에서, 특히 학교 현장에서 저는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저는 한 사람의 예비 교사(예비 정규직 교사일수도 예비 기간제 교사일 수도 있는 예비교사)로서 적어도, 그가 답답해 한 학생들의 모습만큼은 학교 현장에서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모습을 반기지 않는 사람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교단에 당당히 서서 참교육에 기여하기를 갈망하는 수많은 예비교사도, 다른 곳에서 차별받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도, ‘비정규직 백화점’이라 불리는 학교 현장에서의 차별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 염원에 힘입어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지지 입장이 채택돼 ‘차별 없는 학교’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