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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 더는 성폭력을 감내하지 않겠다는 선언!

미투 운동으로,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여성들을 성적으로 비하하고 천대해 온 성폭력의 일부가 드러났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 아로새겨진 여성 차별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계를 넘어,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이자 현 충남도지사인 안희정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사실이 폭로됐다. 미투 운동 와중에 피해자를 만나 사과했다는 그날에도 성폭행을 했다니 소름이 돋는다. 피해자가 공개 폭로했을 경우 강간을 화간으로 몰고 가기 위한 술책이었을 것이다.

문재인이 미투를 응원한다고 했지만 정작 여성 비하로 악명 높은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은 경질하지 않고 있다.

물론 ‘돼지 발정제’ 강간 미수 공범인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는 꼭 처벌받아야 한다. 그는 “[미투 운동에] 좌파들이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며 천박한 정치 속셈을 밝혔다. 역겹기 짝이 없다. 성차별에 찌든 보수 우익은 미투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우파는 단지 덜 “걸린”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피해 여성을 입막음할 더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이들 주변에 미투 열풍으로부터 고무받을 만한 진보 염원 여성이 별로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안희정의 사례는 권력자들이 저지르는 성폭력 중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한 여성 국회의원 보좌관(익명)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들에 의해 숱한 성추행·성희롱이 일어나지만 대부분이 생계형 보좌관인 우리는 일자리를 잃을까 봐 참을 뿐이다.”

그동안 피해자이면서도 혼자 자책하며 가슴앓이하던 여성들이 더는 참지 않겠다며 고발에 나서고 정의를 요구한 것은 감동적이다. 미투 운동과 그에 대한 폭넓은 지지는 성폭력과 성차별로부터의 해방 염원을 보여 준다.

노동조합이 미투에 동참 못 하는 개별 여성노동자들을 대변해야

미투 열풍 속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당하는 성폭력·성희롱은 대부분 쟁점화되기 어려운 현실이 존재한다.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은 그 빈도와 심각성이 결코 덜하지 않다.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의 일할 의욕을 현저히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자존감을 해치고, 심지어 직장을 그만두거나 심지어 목숨을 끊게도 하는 문제이다.

정부 기관과 여성단체, 노동조합 등의 실태조사에서 여성 노동자의 직장 내 성희롱 경험률은 매우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직장 내 성희롱은 심각한 성차별 문제이자 중요한 노동조건 문제이다.

선정주의와 상업주의에 찌든 주류 언론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유명인인 경우에는 관심을 보이며 앞다퉈 보도한다. 그리고 경찰도 이런 사건의 처리에는 비교적 성의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물론 언론의 조명을 받은 사건들도 한때의 가십거리에 그쳐선 안 되고 철저하게 해결돼야 한다.)

무엇보다, 직장 내 성희롱 대부분이 고용주나 관리자, 직장 상사에 의해 벌어지고 이들이 여성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좌지우지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이 커다란 걸림돌이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직장 내 성희롱 문제 제기는 온갖 불이익을 각오하거나 생계를 걸고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직장 내 성희롱 문제 제기는 해고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가령 기간제 교사들은 미투 운동을 보며 “우리도 많이 겪는 일”이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기간제교사노조는 조합원들이 겪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었다. 그러자 몇몇 기간제 교사가 용기를 내어 게시판에 피해를 알렸다. 그러나 마음 아프게도, 이내 스스로 삭제했다고 한다.

이는 기간제 교사의 처지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피해 사실을 알리면 해고되지 않을까?’, ‘다른 학교에도 소문이 돌아 영영 일자리를 못 구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게 다가왔을 법하다.

최근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직장 내 성희롱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는 훌륭한 일이다. 이 실태조사에서 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22퍼센트가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중 50퍼센트가 참고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불이익이나 주변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힘을 가진 운동

노동계급의 오랜 경험을 보더라도 사내 고충 기구가 오히려 사건을 무마하기 일쑤였다. 정부 기관이나 법·제도도 여성 노동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성희롱 문제 제기에 대한 불이익 조처는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항에 정면 위배되는데도, 해당 기업(주)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해 노동부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 건수 중 과태료가 부과된 것은 11퍼센트에 그쳤고, 실제 기소로 이어진 건수는 단 1건에 그쳤다(기소율 0.1퍼센트).

이런 조건에서는 정부가 각 부처에 신고센터를 만들어 성폭력 엄벌을 강조해도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실질적 해결책으로 느껴지기는 어렵다.

그래서 개별적 폭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의 직장 내 성희롱 문제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질적인 힘을 가진 운동이 될 수 있다.

미투 운동에서 나타난 염원을 노동 현장으로 심화시켜야 한다 ⓒ전주현

〈노동자 연대〉가 그동안 강조해 왔듯이, 기업주들을 확실히 압박하고 성희롱 피해 여성 노동자를 사측의 불이익 조처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노동조합이 심각하게 이를 자신의 쟁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이 동참하는 노동조합의 집단적 항의 행동은 기업주에게 실질적 압박을 줄 수 있다. 또한 여성 노동자가 고립되지 않고 지지와 연대 속에서 싸울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민주노총은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여성에겐 일터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연대할 우산이 필요하다. 그간 일터에서 벌어진 성폭력은 피해 당사자 개인의 투쟁만으로 이겨낼 수 없었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바로 그 우산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일이 효과적으로 실행되려면 직장 내 성희롱 대응을 여성위원회 같은 한 부문위원회만의 과제로 남겨 둘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전체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즉, 중앙과 각급 노동조합 조직이 자신의 과제로 여기고 노동조합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

가장 좋기로는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위한 ‘미투 하루 행동’과 같은 집단적 항의 행동을 조직해 볼 수 있다. 이 행동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려면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사업장들을 순회하며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남녀 불문하고 조합원들의 하루 행동 동참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미투 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 이런 행동이 조직된다면 언론의 조명은 물론이고 커다란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숨죽이며 애태우고 있을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여성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사용자와 관리자들이 함부로 여성 노동자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예방적 효과도 있을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규모와 비중 면에서 갈수록 노동계급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직장 내 성희롱과 같은 여성 노동자의 조건 문제에 심각하게 대응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역량 강화 면에서도 매우 중요해졌다. 미투 운동에서 나타난 해방 염원을 노동 현장으로 심화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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