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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의 목소리:
“성차별과 가혹한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이 들끓고 있어요”

간호사 김진경, 유혜린 씨로부터 간호사 여성 노동자들의 조건과 투쟁에 대해 들어봤다. 김진경 씨는 현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장이고 유혜린 씨는 보건의료노조 서울성모병원지부 대의원이다. 

병원의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성차별의 현실은 어떤가요? 그리고 성심병원 등에서 성차별적 문화가 폭로된 뒤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유혜린 지난해 성심병원이나 대구가톨릭대병원 등에서 간호사들에게 섹시 댄스를 강요하는 등 성차별적 문화가 폭로된 바 있죠. 나름 직업의식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눈요깃거리 취급이나 받았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어요? 안 그래도 인력 부족에 눈코 뜰 새 없는 간호사들에게 이런 일까지 시키면 정말 죽을 맛이죠.

유혜린 보건의료노조 서울성모병원지부 대의원

성심병원 노동자들에게 들어 보니, 장기자랑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해요. 그동안 온갖 모욕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이 억눌렸다가 이번에 폭발한 것이죠. 지난해 섹시 댄스 강요로 지탄을 받은 두 곳은 대학병원인데도 아직 노조가 없는 곳이었어요. 노조가 있는 대학병원도 “헬(지옥)”인데, 노조가 없는 대학병원은 “헬” 중의 “헬”로 불리죠.

고무적인 일은 지난해 12월 한림대의료원 소속 병원 4곳에서 노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동안 노조 결성 시도가 수차례 있었지만 잘 안 됐다가 이번에 드디어 성공한 거죠. 언론 보도와 노조 결성 과정에서 장기자랑 강요 등은 없어졌고요. 그런데 이런 일은 언론의 관심이 식으면 다시 스멀스멀 부활할 수도 있어요. 그러지 않으려면 앞으로 노조가 잘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도 25년 만에 노조가 새롭게 결성됐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간호사 조직률이 증가했어요.

김진경 제가 1991년에 입사했는데 그때는 오히려 이런 게 없었어요. 기본적으로는 외과니 정형외과니 하는 과별로 의사들이 여는 행사였고 거기에 간호사들을 일부 초대한 거죠. 주로 음식 먹고 하는 송년회는 있었지만 장기자랑 같은 건 없었어요. 제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노동조합에서 전임으로 일하면서도 몰랐는데, 전임을 마치고 현장에 가보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김진경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장

당시 서울대병원에서는 12월만 되면 과별로 송년회를 했어요. 그런데 한 과의 의사들은 다 같은 팀으로 일하지만 간호사들은 같은 과에서도 소속 부서가 여럿이거든요. 여러 병동이 있고 외래도 있고 수술실도 있잖아요. 그러면서 부서별로 장기자랑을 하라고 한 거예요.

갈수록 도가 지나치니까 현장에서 이게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오게 된 거고 노동조합이 교섭자리에서 해결하게 됐어요. 진짜 문제거든요. 노동조합이 문제 삼고 그래서 없애기로 한 바람에 그해 모든 과의 송년회가 없었어요.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임신한 여성 노동자에게 강제로 야간노동을 시킨 것으로도 알려졌고 다른 병원에도 ‘임신순번제’가 존재한다는 폭로가 있었는데요.

김진경 서울대병원에도 예전에는 수술장에 임신순번제가 있었어요. 수술장은 인력이 100명 가까이 되는데 수술장 간호사로 훈련시키려면 최소 6개월~1년은 걸리거든요. 그런데 이 간호사들 중 일부가 한꺼번에 분만 휴가를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럴 때를 대비해 여유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필요한 인원만 채우고 있으니까 관리자들이 결혼이나 임신 순번을 정해 주는 거예요. 그야말로 인권 탄압이죠.

문제 제기를 해서 없애기는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알아봐야겠어요. 인력이 늘기는 했지만 충분치는 않을 거예요.

1998년에는 저도 임신한 몸으로 야간노동을 했어요. 아마 그때는 모성보호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모성보호법이 생기자 서울대병원에서도 동의서를 받았어요. 임신 시에도 야간노동을 하겠다는 동의서요. 이것도 나중에 노동조합이 문제 삼아서 없앴어요. 아마 지금도 노조 없는 곳은 동의서를 쓰게 할 거예요. 본인이 동의하면 병원이 처벌받지 않는 걸로 알아요.

중요한 건 예전부터 계속 있던 이런 문제에 항의해 간호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죠.

유혜린 임신한 여성 노동자에게 야간노동을 시키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 일이에요.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그나마 2002년 파업 이래로 사라졌죠. 그런데 다른 병원 간호사들에게 알아 보니 임신한 노동자에게 동의서 사인받고 야간노동을 시키는 곳이 여러 곳 있더라고요. 말이 “자발적”이지 강제나 다름없죠. 인력 충원을 안 하니 이런 비인간적인 일까지 벌어지는 거죠.

임신순번제는 병원마다 조건이 다르긴 해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간호사로서는 숙련도가 쌓이기 시작할 때인데, 숙련 인력이 너무 부족하니까 임신한 간호사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곤 하죠.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니까 임신이 축하받을 일이기보다는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 강도 강화로 받아들여지게 돼죠.

[확대]

간호사들이 겪는 핵심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유혜린 병원은 특히 인력 투자가 중요한 업종이에요. 그런데 병원 사용자들은 이윤에 눈이 멀어 간호사에 대한 투자에 너무 인색해요. 이것이 낳은 살인적 노동 강도와 상시적 인력 부족은 병원의 핵심 병폐입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수많은 간호사들이 일을 그만둡니다. 근속연수도 매우 짧고요. 신규 간호사를 많이 뽑아도 그만큼 많이 나가니까 소용이 없어요.

게다가 신규 간호사를 실전에 투입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훈련이 필요한데, 병원들은 불과 한 달 만에 무리하게 투입하려고 간호사들을 들들 볶아요. 그러다 보니 “태움” 문화가 생겨난 거예요.

이처럼 병원의 거의 모든 문제점이 인력 부족에 응축돼 있어요. 크고 구조적인 문제여서 노사 협상만으로는 이뤄 내기 힘들어요. 3교대에 혹사당하는 간호사들을 조직하는 일은 만만치 않지만, 최근 간호사들의 열악한 현실이 사회적 쟁점이 되고 조직률이 증가하는 등 변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요. 이럴 때 노조가 간호사 조직화를 강화하고 핵심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고 봐요.

김진경 사실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을 피부로 느끼지는 않아요. 오히려 우리 병원에서는 남자 간호사 탈의실이 없어서 문제가 된 적은 있죠. 요즘은 남자 간호사도 많아서 탈의실이 다 있어요.

또, 침대와 침대 사이의 공간이 너무 좁아요. 예전에 서울대병원이 3인실을 4인실로 만들었어요. 돈 더 벌겠다고. 그러니까 공간이 비좁아지잖아요. 환자도 불편하지만 간호사들도 굉장히 불편해진 거죠. 그런 건 문제 제기해서 바로잡곤 했어요. 그런데 이런 건 간호사들한테는 사소한 문제에 속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그나마 건강한 사람들을 대하는 일을 한다면, 정 안 되면 싸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병원에서 환자는 약자니까 간호사는 환자한테 무한히 봉사해야 해요. 그런 게 머릿속에 너무 강하게 박혀 있어요. 이 때문에 더 위축되지 않나 싶어요. 학교에서 배운 게 계속 짓누르는 거예요.

소위 ‘진상’ 환자나 보호자가 있어요. 보호자가 소리를 지르고 아무리 봐도 과하다 싶은 행동을 해요. 예컨대 교수가 제 시간에 안 나타나서 보호자가 화가 났는데 간호사한테 윽박지르고 간호사를 구타하는 경우가 있어요.

간호사들이 침대 사이를 지나가며 일하는 중에 엉덩이 만지는 보호자나 환자도 있었어요. 저처럼 대찬 간호사는 소리지르면서 항의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많을 거예요. 이런 데서도 환자-간호사 관계라는 게 좀 문제가 되요. 항의를 해야 하는 데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제가 볼 때는 사회 전반의 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개인 문제로 여기면 해결은 어려워요.

‘태움’ 문화와 자살을 낳은 간호사들의 열악한 처지

[아래 글은 김진경 지부장과 한 인터뷰 중 일부를 옮긴 것이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간호사들, 여성 노동자들뿐 아니라 남성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어요. 작은 병원들에서도 가입 상담이 들어오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박근혜 퇴진 촛불이 남긴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 전에는 사람들이 ‘뭐 되겠어?’ 하는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하니까 바뀌더라’ 하는 생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이명박·박근혜 때는 계속 싸워서 어떻게든 최악은 막아 왔지만 임금피크제 도입되고 취업규칙 바뀌고 계속 나빠지긴 했어요.

특히 공공기관 같은 경우는 이런 경험이 커요. 공공기관 노조들 만나 보면 다들 박근혜 이전으로 돌리는 합의를 하고 있거나 하려고 하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경력 간호사가 새로 채용되서 교육을 받았는데, 4주 동안 받은 임금이 30만 원이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신규 간호사들은 잘 모르니까 문제인지 몰랐는데, 경력자들은 문제가 있다는 걸 금방 안 거죠.

서울대병원은 간호사를 뽑을 때 경력자를 잘 모집하지 않아요. 그런데 2017년 1월에는 경력자를 100명 뽑았어요. 법이 생겨서 전공의 근무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이들의 근무시간을 줄이려다 보니 원래 의사들이 하던 업무가 간호사들에게 많이 넘어왔어요. 환자들이 보통 ‘콧줄’이라고 부르는 엘튜브, 혈관주사, 동맥 채혈, 욕창 소독 등이 다 간호사 업무로 넘어왔어요. 그래서 인력이 부족하니까 경력직을 뽑았는데 딱 걸린 거예요.

이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돼서 체불임금을 받게 됐어요. 병원 측에서는 최저임금으로 주겠다고 했는데 안 되죠. 신규 간호사 초임의 80퍼센트를 요구해서 받아 냈죠.

법으로 체불임금은 3년치를 받을 수 있대요. 그러니까 3년 전에 채용된 사람까지 받을 수 있게 된 거죠. 우리는 모든 간호사들의 체불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고 5년차까지 받아 냈어요.

이대 목동병원

이대 목동병원에서는 원래 간호사 한 명이 중환자 4명을 돌봤대요. 이것부터 말이 안 돼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중환자는 10~15분마다 혈압, 체온, 호흡 등을 체크하는 게 기본이고 그 사이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처치와 약물 투여를 해야 하거든요. 중환자라 예상하지 못한 변화도 수시로 일어나요. 그런데 신생아 사망 사건이 난 날에는 신생아 중환자가 16명, 간호사는 딱 두 명 있었대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아기 한 명만 봐야 해요. 제가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나는데요. 매뉴얼대로 병원 내 감염을 막으려면 손 씻는 데만 1분쯤 걸릴 거예요. 단지 소독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 손 씻기를 주사 한 번 줄 때마다, 체온과 혈압 잴 때마다, 시트를 갈 때마다 해야 해요. 그걸 100번 하려면 손 씻는 데만 100분을 써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할 수 없는 업무를 준 거예요. 그래 놓고 손 씻기를 안 해서 감염이 벌어졌다고 하는 거예요. 병원 평가에 이용되는 미국 지침대로 손을 닦으면 지금처럼 절대 환자 못 봐요. 간호사 두 명이 중환자 한 명 봐야 해요. 일반 병동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4명 정도 봐야 하고요.

그러니 간호사라면 누구나 이대 목동병원 기사를 보면 현실과 너무 다르다고 생각할 거에요. 어느 간호사나 겪을 수 있는 일인 거예요. 진짜 재수가 없었던 게 되는 거죠. 서울대병원도 똑같아요. 간호사 한 명이 중환자 두 명을 돌보니까 손 씻기 절대 제대로 못해요. 손 세정제를 쓰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일 수는 없죠. 너무 화가 나요.

정부가 그렇게 발표하면 앞으로 누가 간호사를 하려 할까. 소아 중환자실이나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는 아무도 일 안 하려 할 거에요.

‘태움’ 문화도 왜 이런 문화가 생겼을지 파고들어 봐야 해요. 교육 간호사를 프리셉터라고 하는데요. 똑같이 환자 보느라 힘든 와중에 신규들 교육을 하려면 행동 하나하나 실제로 하면서 설명해 주고 질문도 받아야 해요. 그러면 환자 수를 줄여 줘야 하는데 환자를 똑같이 보면서 교육도 해야 하는 거예요. 8주 동안 말이에요. 저도 신규도 해 봤고 교육도 해 봤는데 당시보다 지금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환자 수혈할 때는 혈액이 오면 옆에 있는 동료 간호사가 모든 절차를 한 번 더 확인해 주고 나서 제가 연결해요. 코사인(Co-Sign)이라고 하는데 ‘환자 이름 홍길동, 혈액형 A, (RH)+’ 이렇게 확인해 주고 나면 연결하는 거예요. 그래야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의료기관 평가 매뉴얼을 보면 그렇게 체크하는 게 엄청나게 많아요. 그래서 일이 두세 배 늘었는데 인력은 전혀 충원이 안 됐어요. 신규와 프리셉터 모두에게 환자 수를 줄여 줘야 해요. 모든 간호사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선욱 간호사 사례는 시스템 문제이지 개인 문제가 아니에요. 인력이 충원돼야 하는 문제에요. 박선욱 간호사는 이브닝 근무(대개 오후 3시~11시 근무) 때 1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했대요. 그러면서 집에 가면 또 공부해야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