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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동자가 노동운동 위기론에 대해 답한다

다음 글은 기아차 노동조합 화성지부 대의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2월 22일 구속되어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김우용 동지가 박승옥 씨의 주장을 비판한 글이다.
김우용 동지는 기아차에서 현장조합원의 자주적인 운동을 건설하려 했던 활동가였다.
김우용 동지는 지난해 박승옥 씨의 ‘왕자병 걸린 노동운동, 이대로 가면 죽는다’(〈프레시안〉 2004년 9월 2일자)라는 글이 논쟁을 일으킨 후, 이를 비판하는 글을 〈다함께〉에 보내왔다. 김우용 동지는 지난 해 2월 한국사회포럼에서 직접 박승옥 씨와 논쟁한 바 있다.
박승옥 씨는 최근(4월 14일) 중앙대에서 열린 ‘노동운동 위기 논쟁’ 콜로키움에서도 노동운동의 “전투성”을 비판하며 “비정규직 문제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임금을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우리는 노동귀족론이나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뜨거운 상황에서 김우용 동지의 주장이 여전히 의미 있다고 판단해 이 글을 싣는다.

박승옥 씨(이하 존칭 생략)의 글 ‘왕자병 걸린 노동운동, 이대로 가면 죽는다’를 보면 〈조선일보〉의 칼럼을 읽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박승옥은 “[노동운동은] 가진 소수의 운동으로 바뀌었다는 비판까지 받고 … ‘왕자병 환자’로 치부되며 … 자신을 옹호해주는 어떠한 사회세력도 없는 고립무원의 사태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한국 노동운동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계속해서 성장 발전하고 있다.

첫째, 박승옥도 지적하듯이 민주노총은 1995년 설립할 때 40만 6천7백48 명에서 2002년 68만 5천1백47 명으로 28만 명이나 늘어났다.

박승옥은 한국노총에서 대부분 이전해 왔다고 그 성장 의미를 폄하하고 있지만 ‘왕자병 환자’가 되기를 원하는 노동자들이 수십만 명씩 늘어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한국 노동조합 조직률은 10퍼센트 정도로 낮다. 하지만 영향력있는 대기업 사업장에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조직돼 있다.

둘째, 새로운 부분의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공무원, 은행, 화물연대, 호텔, 발전, 항공 항만 노동자들까지 저항 행동에 나서고 있다.

셋째,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 만든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 역시 노동운동의 성장을 반증하고 있는 중요한 증거다.

마지막으로 〈매일노동뉴스〉 대국민 설문 조사 결과(2004년 9월 15일자)를 보면, 노동조합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 31.1퍼센트, ‘보통’이 36.4퍼센트, ‘부정적’이 31.4퍼센트로 나타났다. 온갖 비난과 왜곡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77.5퍼센트가 노조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반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박승옥은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여성·이주 노동자를 착취해 자신들의 고임금을 유지하고 있는 양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회의 진정한 귀족은 과연 누구인가? 한국의 백만 장자는 6만1천여 명으로 2003년 18퍼센트나 증가해 증가율 세계3위를 기록했다. 정몽구는 2003년 주식 배당금만 2백27억, 이건희는 1백55억 원을 챙겼다.

대기업 금고에만(2004년 6월 현재) 41조의 현금이 쌓여 있다.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996년 12.9퍼센트에서 2003년 10퍼센트로 하락했다. 하지만 경상이익률은 4.7퍼센트로 1994년 4.8퍼센트 이후 3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1997년 IMF와 1998년 민주노총의 정리해고 수용을 돌아보자. 이때를 기점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증가해 현재 8백만 명을 육박하고,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사유화의 고통에 모든 노동자들이 시달리고 있다.

신용불량자 4백만 명, 청년 실업 37만 명, 어린이 10퍼센트 빈곤선 이하 생활, 결식 아동 1백17만 명. 이 모든 것은 조직된 노동자 운동이 투쟁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 피지배계급의 삶에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박승옥의 주장과 달리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피억압 계급 전체 삶의 최종 방어선인 동시에 억압받는 모든 이들의 삶을 이롭게 하는 투쟁인 것이다.

노동귀족론의 실체는 마지막 저항선인 조직 노동자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저급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는 현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긍정이 전제돼야 [하고] … 자신의 노동을 ‘비하’하면서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고·최선의 가치가 ‘더 많은 이윤’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긍지와 자기 완성을 이룰 수 있을까?

나는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다. 하루 중 12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보내고 1주 간격으로 주·야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1분이나 1분 30초마다 차 한 대가 내 앞을 지나간다. 그 시간 안에 부품조립(대략 7∼15가지)을 완수해야 한다. 똑같은 작업을 2시간 동안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반복한 후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반복 작업을 하다 보면 내 자신이 차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 콘베이어 부속품이 돼 작동되고 있는 것이지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런 것이 노동의 소외가 아닐까?

최근에는 도요타 시스템보다 더욱 강화된 ‘모답스 기법’을 자동차, 전자 등 기업에서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모답스 기법’이란 인간이 손가락을 구부리는 데 소요되는 시간, 손목을 구부리는 데 걸리는 시간, 주먹을 쥐었다 펴는 데 걸리는 시간 등 모든 동작을 100분의 1초까지 나눠 계산하고 최소의 시간에 최대의 노동강도를 강요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법을 말한다.

인간을 완전 분해하고 기계의 부속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이러한 노동의 소외에 찌들고 지쳐가고 있다.

이렇듯 체제가 강요한 노동의 소외를 외면한 채 노동의 자아실현을 주장하며 ‘자신의 노동을 비하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궤변을 펼치는 박승옥에게 찰리 채플린의 명화 〈모던 타임스〉를 깊이 있게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박승옥은 ‘우리는 싸움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자기 반성을 통해, 거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변화와 전환을 모색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안의 자기 성찰과 자기 반성으로 이윤을 위해 미친 듯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 ― 자본주의 ― 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와 이윤 지상주의를 외면한 채 대안을 주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 세계의 노동자와 억압받는 이들에게 진정한 영감과 희망을 안겨준 사건은 1999년 WTO 각료회의를 무산시킨 시애틀 시위였다.

2003년 2월 15일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거리 시위를 건설한 이라크 전쟁 반대 투쟁이야말로 위대한 희망을 보여 주었다.
노동조합·인권·여성·환경·이주 노동자·동성애자 운동 등 다양한 운동들이 협력하며 세계적 규모의 공동행동을 건설하고 있다.
노동자 운동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반전·반자본주의 투쟁을 거리와 공장, 학교에서 더욱 거대하게 건설하며 세계적 반전·반자본주의 운동과 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58억의 인류 중 12억 명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고, 28억 명이 2달러도 못 벌고 있다.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20퍼센트의 수입과 가장 가난한 20퍼센트 사이의 격차는 1960년 3대1, 1990년에 60대 1, 1997년 74대 1로 증가했다.
전 지구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자본주의의 야만적 착취와 학살 전쟁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단결과 연대 행동이 필요하다.

노동자 운동이 전 지구적 저항 운동의 중심에서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