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안 되면 떠난다.” GM 최고경영자 메리 바라의 신조다.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삶이 자본주의의 냉혹한 이윤 논리 때문에 송두리째 파괴될 위기에 놓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이런 광경을 거듭 봐 왔다. 한국GM의 전신인 대우차 노동자부터 쌍용차 노동자, 그리고 최근 조선소 노동자들까지.

그때마다 정부는 일자리를 보호하기는커녕 ‘살인’과도 같은 해고로 노동자들을 내몰았다. 시장은 좋은 것이니 그 논리에 맡겨라. 그래야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기업을 회생시켜 줄 때도 노동자들에게는 희생이 강요됐다.

“시장 중심” 구조조정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한 문재인도 이와 근본적으로 다른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그러기는커녕 문재인 정부의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3대 원칙 중 하나로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을 요구했다.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들에게 제 발로 걸어 나가거나 임금 삭감을 감수하라며 양보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연은 이미 지난해 12월, 구조조정 추진의 기본 틀로 “시장 중심” 원칙을 제시했다. “시장 주도 구조조정”은 박근혜 정부 내내 지겹도록 듣던 말 아니던가? 김동연은 재무적 관점의 부실 정리보다 “산업 혁신 지원”에 중점을 두겠다고 했지만, 이것도 박근혜 정부와의 차이는 못 된다.

박근혜 정부도 실천에서는 부실기업 죽이기로 나가지 않았다. 특히, 2016년 8월 이후에는 조선·해운업 ‘사양산업’에 관한 말도 거둬들였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누누히 지적했듯이,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거대해지고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경향으로) 노쇠해진 자본주의의 딜레마 때문이다.

그러나 김동연이 “산업 경쟁력”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기업이 ‘회생’돼도 노동자는 ‘희생’되는 비극이 반복될 게 뻔하다. 시장 논리가 지속되는 한 “경쟁력”은 감원과 임금 삭감, 노동유연화와 생산성 증가를 뜻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각국 정부는 경제에 개입해 왔다. 이제 그 돈을 일자리를 지키는 국유기업화에 쓰라고 요구해야 한다 ⓒ출처 한국지엠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

문재인 정부는 GM에 정상화 방안을 요구하는 것 말고 대안이 없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GM 정상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짚어야겠다. GM은 구조조정에 성공하고 한국 정부가 추가 지원에 나서면 신차를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방안이 될 수 없다.

신차 배정 자체가 일자리 감축을 전제로 한 것인 데다, 한국 정부가 지원금을 쏟아부어 GM을 붙잡고 신차 배정을 받아 봤자 약발이 얼마 못 갈 수 있다. GM은 수익성이 낮다며 언제든지 철수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 유럽에서 GM은 신차 모델 생산 일정을 남겨놓고도 일부 공장을 매각했고, 노동자들은 다시금 해고 위협에 직면했다.(이번 호 12면 기사 ‘‘양보 교섭’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가?’(김하영)를 보시오.)

둘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정부는 GM 군산공장을 국유(기업)화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할 힘이 있다. 단지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다. 2000년대 중반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은 석유와 가스기업들의 국유화를 단행했고, 지금 영국 노동당 제레미 코빈 대표는 민영화된 기업들의 재국유화를 주장하고 있다.

세계화된 경제에서 한 나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퍼뜨린 대표적인 거짓말의 하나다. 실제로 많은 정부들이 전면적인 불황을 막고자 경제에 개입했고 기업들에 보조금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에게 이제 그 돈을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 쓰라며 군산공장 국유(기업)화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은 전에 한국 정부가 종종 취했던 부실기업 ‘일시 국유화’ 조처(공적자금 투입이나 법정관리 후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매각)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매각을 위한 임시 관리체제였을 뿐이고, 그 목적은 기업들의 수익성 보장을 위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한계와 의미

물론 국유(기업)화는 만병통치약이 결코 아니다. 현재 공기업이나 민영화 이전의 국유 기업들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한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공기업들은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위계적이고 관료적으로 조직되고 통제됐다.(이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사회 변혁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는 국가 소유를 노동자 국가나 사회주의의 잣대로 보지 않는다. 노동자 통제(노동자 관리)가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노동자 통제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혁명적 격변기 때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 속에서 거듭 등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가 유지되는 한 노동자 통제는 전진할 수 없었다. 한 작업장 사회주의는 물론 한 나라 사회주의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국유(기업)화 요구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국유(기업)화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GM 노동자들과 그 연관 기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당장의 위험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한국GM 군산공장 국유(기업)화로 일자리가 보호된다면, 기업 파산과 해고 위협에 직면한 다른 노동자들(가령 금호타이어나 두원정공, 성동조선)에게도 더 나은 대안이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기업 하나가 국유(기업)화 된다고 해서 정신 나간 시스템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 지상주의에 타격을 가하고, 노동자들에게 싸울 자신감을 줄 수는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국제 경쟁력 논리를 따라야 하는지, 생산이 이윤 우선주의를 따라 이뤄져야 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다. 국유(기업)화가 다른 종류의 경제에 대한 상(像)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장 점거

문재인 정부와 기성 정당들은 국유(기업)화 대안을 아예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저항에 부딪히지 않는다면 말이다. 2008년 가을 대불황이 시작되고 공장 폐쇄 위험에 직면한 유럽과 미국 등지의 일부 노동자들은 (그리고 한국의 쌍용차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지키고자 공장 점거에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GM 군산공장 노동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공장 점거가 단행된다면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불러일으킨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는 한편, 노동자들의 연대가 모이는 초점이 될 것이다. 그런 투쟁은 자본주의의 냉혹한 논리에 삶이 송두리째 망가질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생존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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