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
의료연대본부 김진경 서울지역지부장: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은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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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노동자연대가 3월 8일 주최한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집회] 차별과 착취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연설한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동지 여러분 반갑습니다. 제가 노동자연대를 처음 본 것은 2004년에 44일간 서울대 병원이 파업할 때입니다. 당시 매일같이 와주셨죠. 여기 많은 분이 계신데 그 당시 학생이었던 분도 계시죠? 그때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연대가 무엇인지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연대를 다니게 됐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저도 앞의 두 분처럼 여성의 날에 발언하는 것이 처음입니다. 항상 거리에서 투쟁하다가 강당에서 발언하려니 많이 떨립니다. 저는 1991년에 서울대병원에 입사했어요. 직종이 간호사이고요. 간호사 이야기는 이번
확대되는 외주화
지난해가 서울대병원노조가 설립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어요. 1987년도 8월 1일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병원 입사 27년째인데, 입사 후 3개월 뒤 노동조합 가입했고, 간호사 일을 반 하고 노동조합 투쟁을 반 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저를 “비정규직 지부장”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비정규직 투쟁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지부장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입니다.
가장
자본은 약한 고리를 먼저 뚫고 들어왔습니다. 병원 안에서 환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식당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저는 1999년에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대의원이었습니다. 1999년 겨울에 병원은 환자 급식 부분을 외주화시켰습니다. 환자 급식은 어린이 급식과 어른 급식으로 나눠져 있는데 가장 약한 고리인 어린이 급식부터 외주화가 됐습니다. 한 달간 천막 농성을 했지만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어린이 급식을 담당하는 정규직 노동자 20명을 어른 급식으로 이동시키고는
그 다음은 전산실이었습니다. 작은 부서부터 외주화
2000년대에 전산 붐이 불었고, 대학교의 최고 인기 학과가 공학과였습니다. 임금을 2배로 주겠다고 하자, 그 안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외주화하겠다고 했습니다. 노동자 10명만 정규직으로 남아 있겠다고 했고 이들은 보라매 병원으로 갔습니다. 나머지는 외주화가 됐습니다.
그 다음은 간병인이었습니다. ‘간병인 노동자가 서울대병원 정규직이냐?’ 하고들 의아하시죠? 지금은 간병인이 정규직이란 생각은 아무도 못하지 않습니까?
승리의 맛
노동조합이 1년 동안 투쟁하자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제 간병인 노동자 투쟁을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내 조합비로 간병인 노동자들이 복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고요. 그 당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조합원 간담회를 했습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했습니다. 제가 “비정규직 지부장”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울보”인데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하지 않고는 간병인 노동자들이 서울대병원 안으로 복직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간병인 노동자들이 왜 서울대병원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지 조합원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설명하고 설득했습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서울대병원장이 간병인 무료 소개소를
그 이후에 많은 외주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싸워보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라고 들어보셨죠? 당시 우리는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직 해고 법안’이라고 했습니다. ‘자본은 1년 11개월만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시키고 2년마다 비정규직을 갈아치울 것’이라고 얘기하며 싸웠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승리의 맛을 보니 저희는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2010년에 병원은 외주화 된 전기시설 파트 노동자들을 업체가 변경됐다는 이유만으로 해고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해고노동자 복직 투쟁을 벌였고,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되려면
저는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 전교조, 인천공항공사 등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못하고 단결하지 못하는 이유에 우리의 잘못도 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사담을 얘기하자면, 저는 2016년 10월부터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촛불만 들어서는 박근혜를 구속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촛불이 횃불이 돼야만 바뀔 거라고,
문재인이 인천공항공사 가서 “비정규직 제로”를 얘기할 때 저는 반신반의 했습니다. 비정규직들은 환호성을 지를 수도 있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저는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그렇게 해서는 쉽지 않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저희는 담담했습니다. 정부의 지침이 떨어졌을 때 “옳다구나! 이 싸움 한 판 해보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많이 시켰지만 병원이 커지면서 비정규직이 많이 늘었습니다. 직접고용 기간제 비정규직이 600명이나 됐습니다. 우리는 준비했습니다.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켰습니다. 해고의 위험 때문에 비정규직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면 비정규직도 움직여야 하고 정규직도 설득해야 합니다. 정규직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정규직화 투쟁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희는 지난해에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합의했습니다. 2017년 12월 31일 비정규직 297명을 정규직화했습니다. 거의 80~90퍼센트가 여성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 노동자들이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얘기했을 때, 저희는 감사하다는 인사보다 ‘이제 여러분이 정규직이 됐으니 여러분이 현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올해도 잘 싸울 것"
올해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는 병원사업장 안에 있는 외주업체를 정규직화하는 싸움을 할 것입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3월 말이면 교섭에 들어갈 것입니다.
외주업체 정규직화
지금
3월부터 교섭에 들어가면 6~7월쯤에 투쟁이 있을 것입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기도 합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자랑만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랑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우리처럼 이렇게 합의한 곳은 없다고 생각하고요, 올해도 잘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지난해 서창석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열심히 싸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