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노동자연대가 3월 8일 주최한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집회] 차별과 착취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연설한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김진경 서울지역지부장 ⓒ이미진

동지 여러분 반갑습니다. 제가 노동자연대를 처음 본 것은 2004년에 44일간 서울대 병원이 파업할 때입니다. 당시 매일같이 와주셨죠. 여기 많은 분이 계신데 그 당시 학생이었던 분도 계시죠? 그때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연대가 무엇인지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연대를 다니게 됐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했을 때였습니다. [보건노조에서 최종 탈퇴했던] 2005년 당시 저는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 지부장이었습니다. 지부장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보건의료노조 탈퇴하지 말고 그 안에서 바꿔 봐라”였어요. 노동자연대 동지들, 보건의료노조 동지들, 그리고 다른 동지들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14년 전 우리의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판단하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을 지켜 본 동지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중간에 많이 힘들었지만 지난 몇 년간 투쟁을 돌아보면 열심히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앞의 두 분처럼 여성의 날에 발언하는 것이 처음입니다. 항상 거리에서 투쟁하다가 강당에서 발언하려니 많이 떨립니다. 저는 1991년에 서울대병원에 입사했어요. 직종이 간호사이고요. 간호사 이야기는 이번 〈노동자 연대〉 신문에 나와 있으니 보시고요. 그래서 [여기서는] 짧게나마 제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투쟁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확대되는 외주화

지난해가 서울대병원노조가 설립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어요. 1987년도 8월 1일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병원 입사 27년째인데, 입사 후 3개월 뒤 노동조합 가입했고, 간호사 일을 반 하고 노동조합 투쟁을 반 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저를 “비정규직 지부장”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비정규직 투쟁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지부장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입니다.

가장 [많이] 울었던 시점이 1999년이었습니다. IMF 이후 병원 사업장이 달라졌는데, 비정규직이 있느냐 없느냐였습니다. [원래] 서울대병원 안에 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이었습니다. 1999년 파견법이 통과되면서 외주화가 많이 됐습니다. 병원 사업장의 80퍼센트는 여성 노동자들입니다.

자본은 약한 고리를 먼저 뚫고 들어왔습니다. 병원 안에서 환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식당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저는 1999년에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대의원이었습니다. 1999년 겨울에 병원은 환자 급식 부분을 외주화시켰습니다. 환자 급식은 어린이 급식과 어른 급식으로 나눠져 있는데 가장 약한 고리인 어린이 급식부터 외주화가 됐습니다. 한 달간 천막 농성을 했지만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어린이 급식을 담당하는 정규직 노동자 20명을 어른 급식으로 이동시키고는 [어린이 급식은] 외주화 됐습니다. 많이 속상했습니다.

그 다음은 전산실이었습니다. 작은 부서부터 외주화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이때 병원은 전산실 직원들에게 임금을 2배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서울대병원 임금은 서울 시내에서 열 번째 정도였습니다. 고려대병원이나 아산병원보다 낮았습니다.

2000년대에 전산 붐이 불었고, 대학교의 최고 인기 학과가 공학과였습니다. 임금을 2배로 주겠다고 하자, 그 안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외주화하겠다고 했습니다. 노동자 10명만 정규직으로 남아 있겠다고 했고 이들은 보라매 병원으로 갔습니다. 나머지는 외주화가 됐습니다.

그 다음은 간병인이었습니다. ‘간병인 노동자가 서울대병원 정규직이냐?’ 하고들 의아하시죠? 지금은 간병인이 정규직이란 생각은 아무도 못하지 않습니까? [당시] 간병인 노동자는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서울대병원장이 만들어 운영하던 간병인 무료 소개소에서 일했습니다. 서울대병원 환자들이 좀더 효율적으로 간병인을 구할 수 있도록 서울대병원장이 만든 것이죠. 그 안에 200명이나 되는 간병인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2002년에 서울대병원장이 간병인 무료 소개소를 폐쇄했고 200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앉았습니다. 1년 가까이 싸웠습니다. 찾아가지 않았던 곳이 없습니다. 인권위, 노동청, 청와대 등. 이 부당함을 알려야 했습니다.

승리의 맛

노동조합이 1년 동안 투쟁하자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제 간병인 노동자 투쟁을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내 조합비로 간병인 노동자들이 복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고요. 그 당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조합원 간담회를 했습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했습니다. 제가 “비정규직 지부장”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울보”인데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하지 않고는 간병인 노동자들이 서울대병원 안으로 복직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간병인 노동자들이 왜 서울대병원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지 조합원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설명하고 설득했습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서울대병원장이 간병인 무료 소개소를 [운영]하지 못하면 노동조합이 하겠다고 외쳤습니다. 결국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무료 소개소를 [운영]하고 간병인 노동자들이 서울대병원 안에서 일할 수 있게끔 합의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안에는 간병인 부서가 있습니다. 현재도 그 간병인 노동자들이 서울대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년 동안 그 투쟁을 하고 승리의 맛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이후에 많은 외주화 [공격이] 들어 왔지만 우리는 조합원을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습니다. 2005년, 2006년, 2010년 비정규직 투쟁이 있을 때마다 정규직 노동자가 앞장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싸워보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라고 들어보셨죠? 당시 우리는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직 해고 법안’이라고 했습니다. ‘자본은 1년 11개월만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시키고 2년마다 비정규직을 갈아치울 것’이라고 얘기하며 싸웠습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서울대병원도 2007년에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우리는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을 해고하지 말라고 파업을 벌였습니다. 그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 5명이 “내 문제”라며 해고를 감수하고 파업 장소에 나왔습니다. 파업하는 동안 병원은 비정규직에게 연장근무를 시키려고 했지만 현장에 있는 비정규직들이 연장근무 반대 투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7년 2년 이상 된 비정규직 400명을 정규직화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지부장이었어요. [청중 웃음]

이렇게 조금씩 승리의 맛을 보니 저희는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2010년에 병원은 외주화 된 전기시설 파트 노동자들을 업체가 변경됐다는 이유만으로 해고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해고노동자 복직 투쟁을 벌였고, [이들은] 8개월 만에 복직됐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대병원노조 파업 출정식 ⓒ이미진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되려면

저는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 전교조, 인천공항공사 등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못하고 단결하지 못하는 이유에 우리의 잘못도 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사담을 얘기하자면, 저는 2016년 10월부터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촛불만 들어서는 박근혜를 구속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촛불이 횃불이 돼야만 바뀔 거라고, [더 전투적으로] 싸우고 쳐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3월에 박근혜가 구속되는 걸 보면서 ‘아 구속시킬 수 있구나, 바꿀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재인이 인천공항공사 가서 “비정규직 제로”를 얘기할 때 저는 반신반의 했습니다. 비정규직들은 환호성을 지를 수도 있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저는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그렇게 해서는 쉽지 않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방안은] 무기계약직을 확대시킬 수밖에 없고, 제대로 된 정규직이 아닌 또 다른 이상한 직종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담담했습니다. 정부의 지침이 떨어졌을 때 “옳다구나! 이 싸움 한 판 해보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많이 시켰지만 병원이 커지면서 비정규직이 많이 늘었습니다. 직접고용 기간제 비정규직이 600명이나 됐습니다. 우리는 준비했습니다.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켰습니다. 해고의 위험 때문에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희는 비정규직 조합비 10000원을 CMS로 받았습니다.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조합원이 돼 달라고, 이 싸움 같이 하자고 하면서 조합원으로 가입시켰습니다. 병원한테는 절대 누가 조합원인지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면 비정규직도 움직여야 하고 정규직도 설득해야 합니다. 정규직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정규직화 투쟁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희는 지난해에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합의했습니다. 2017년 12월 31일 비정규직 297명을 정규직화했습니다. 거의 80~90퍼센트가 여성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 노동자들이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얘기했을 때, 저희는 감사하다는 인사보다 ‘이제 여러분이 정규직이 됐으니 여러분이 현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올해도 잘 싸울 것"

올해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는 병원사업장 안에 있는 외주업체를 정규직화하는 싸움을 할 것입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3월 말이면 교섭에 들어갈 것입니다.

외주업체 정규직화 [투쟁은] 직접고용 비정규직 [투쟁]보다 더 어렵습니다. 임금테이블이 다르고 파견업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제대로 된 정규직이 되려면 임금을 많이 인상해야 하고, 고용을 보장해야 됩니다. 서울대병원이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기재부가 돈을 풀어야 합니다.

지금 [사측은] 정규직의 양보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로부터, 자본으로부터 돈을 받아내야 합니다.

3월부터 교섭에 들어가면 6~7월쯤에 투쟁이 있을 것입니다. [이 투쟁에] 많이 오셔서 연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기도 합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자랑만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랑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우리처럼 이렇게 합의한 곳은 없다고 생각하고요, 올해도 잘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지난해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 퇴진 운동에 노동자연대가 함께해 줘서 감사하고요. 비록 퇴진은 못 시켰지만 임기가 2019년 5월까지라 퇴진 [운동]이 마무리 된 것은 아닙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더 급하기 때문에 밖으로는 퇴진을 외치고 안으로는 교섭하고 있습니다. 퇴진시킬 사람을 교섭 자리에 앉히는 것이 말이 되냐는 문제를 가지고 많이 고민하고 토론했습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시키고 퇴진 운동 계속하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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