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암호화폐 광풍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자 정부는 암호화폐 규제안을 마련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나 1월 30일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 도입 이후로 별다른 조처가 도입되지는 않았다.

물론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 도입의 충격으로 암호화폐 가격은 급락했고, ‘김치프리미엄’(국제 암호화폐 시세와 한국 시세 사이의 차액)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몇몇 거래소에서는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에 견줘 일일 거래량이 거의 10분의 1가량으로 줄어들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줄어들지 않고 30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급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 다수가 여전히 시세 상승을 기대하며 매도하지 않고 버티고 있고, 실명제 도입은 번거로움을 더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후 유입된 신규 투자자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태도는 훨씬 대놓고 암호화폐 거래에 우호적이 됐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2월 20일 “암호화폐가 금융상품이든 통화든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면 좋겠다”며 “우리[금감원]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광풍이 다소 잠잠해지니 투기적 거래 행위를 눈감아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거품

물론 암호화폐 거품이 자본주의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닷컴 호황 등 금융 위기를 발생시킨 거품에는 수조 달러에 이르는 돈이 엮여 있곤 했지만, 암호화폐 거품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이 묶여 있었다. 올해 1월 15일 코인마켓캡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암호화폐 1438종의 시가총액은 7060억 868만 3921달러였고, 3월 14일에는 1558종의 시가총액이 3677억 4376만 1493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암호화폐에 투자된 자금 중 상당 부분이 빚을 져서 조달된 경우라면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가총액이 워낙 적은 상황이다. 또한, 거품과 투기 광풍이 한 나라에 몰려 있지 않고 여러 나라에 걸쳐 있는데 수천억 달러 수준이라면 거대한 금융 위기를 몰고 올 상황은 아닌 듯하다. 더군다나 시세가 반토막이 나는 동안에도 폭발적인 상황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암호화폐 ‘투자’로 수익을 보는 것은 그 어떤 실재적 수익에 대한 청구권 구실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오로지 시세 차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요컨대 거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투기성이 짙은 행위이다. 그런데 이런 투기 행위를 북돋우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사회적 자원들이 낭비된다. 비트코인 채굴용 장비에 전기가 낭비되고 있는 것은 그 빙산의 일각이다. (최근 경기도 양주에서는 비트코인 채굴기를 돌리다가 화재가 발생했다.)

암호화폐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불안정과 불평등을 심화한다 ⓒ고은이

대안 화폐?

물론 혹자는 암호화폐가 과연 사회적 유용성이 전혀 없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이 천명한 것처럼, 기존의 화폐를 대체할 만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대안 화폐’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암호화폐는 (컴퓨터를 통해 민간에서 ‘채굴’하는 것이므로) 중앙은행에 의해 발행·통제되지 않으므로 이를 기반으로 탈집중화된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암호화된 거래로 은행 등 금융중개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거래 상대방에게 돈을 직접 보낼 수 있으므로, 거래 수수료 등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화폐 체계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국가가 관리하지 않는 한, 화폐 체계는 불안정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탈집중화된 경제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관리주체가 없는 화폐를 쓰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자본주의는 물물교환 경제가 아니라 화폐적 생산체제인만큼, 모든 상품의 거래는 화폐가 매개한다. 따라서 경제 전반에서 화폐를 필요로 하는 만큼 원활히 화폐가 공급될 수 있도록 하고, 화폐를 매개로 하는 거래가 난항을 겪지 않도록 화폐의 값어치를 관리하는 주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당장에 비트코인은 그 값어치가 들쑥날쑥해서 거래에 쓰이기에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국가, 특히 중앙은행이 그런 구실을 한다. 만약 국가기구가 이처럼 화폐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이뤄지는 가치의 생산·유통 더 나아가 자본의 축적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다.

게다가 현실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수료가 발생하거나, 시세 변동 때문에 거래의 어려움 등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점들은 암호화폐의 ‘효율성’을 깎아먹고도 남는다. 따라서 대안 화폐로서의 효용성은 전혀 합격점을 줄 수 없다.

한편 ‘탈집중화된 경제’에 대해 말하자면 비트코인 광풍 속에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자산소유자들이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거금을 들여서 비트코인 채굴기를 구입해서 돈을 벌어들이기도 했고,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면서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암호화폐 세계에서도 부를 창출할 수단과 시장 권력을 이미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몰릴 수밖에 없다. 

신기술 육성?

혹자는 신기술의 육성을 위해서라도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데이터를 분산 저장해 위변조를 방지하는 기술인) ‘블록체인’을 구현하려면 암호화폐 거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애당초 블록체인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기술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블록체인의 데이터 저장이나 보안 역량 등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과장된 면이 크다. 탈집중화와 데이터 위변조 방지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데이터 처리 속도가 느려져서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할 때는 활용하지 못하는 등 기술적 한계도 많다고 한다. 

블록체인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현황으로 보건대 (말만 요란할 뿐) 투기와 사회적 자원 낭비를 상쇄할 정도로 대단한 기술 진보도 아닌 듯하다.

따라서 암호화폐 거래는 최대한 규제되는 것이 낫다. 거래소 폐쇄 등 국가가 나서서 수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안이 필요하다. 거래소가 폐쇄되더라도 P2P 거래나 해외 거래소 이용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난점은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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