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노조에 해고자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는 규약 개정을 요구했다. 공무원노조는 규약을 개정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규약 7조 2항의 ‘단서조항’을 문제 삼아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단서조항이 “노조가입이 허용되지 않는 자(해고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말이다.

2015년 서울고법은 규약 7조 2항의 단서조항이 “관련법령에 따라 조합원 자격이 유지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도 중앙집행위원회(중집)의 해석에 의해 조합원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를 지지해 줬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전임 정부와 달리 공무원노조 인정, ILO 핵심 협약 비준과 노조법 개정을 약속했다. 최근 발표한 ‘대통령 개헌안’은 공무원 노동자의 노동3권을 인정하겠다고 한다. 공무원의 노동3권 인정은 너무도 당연한 기본적 권리다. 아울러 2004년부터 노동3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해고된 조합원들의 명예회복(원직복직)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대선에서 공무원노조 인정을 공약해 놓고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법의 틀 내에서 규약, 해고자임원 문제가 해소 되어야” 노조 설립신고가 가능하다고 말을 바꿨다. 공무원노조 규약에서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할 소지가 있는 문구를 삭제하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가 문제 삼던 규약 7조 2항의 단서조항을 삭제하라면서, 대신 그것을 (규약이 아니라) 규정으로 옮기면 눈 감아 주고 노조 설립신고필증을 교부하겠다고 한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할 수 있는 문구를 ‘규약’에서 완전히 없애게 하는 대신 관련 ‘규정’을 허용해 노조 집행부에게 명분을 주는 꼼수를 제안한 것이다.  

규약과 규정의 차이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규약에 간섭하면서 조합원 자격 제한을 강제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백보 양보해 그들 자신은 그럴 마음이 없다 해도, 규약 시정 압박을 계속하는 것은 그들이 우파 눈치를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파의 압력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언제든 ‘규정’조차 문제 삼고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공무원노조가 실컷 규약을 고치고 단서 조항을 규정으로 옮기는 후퇴를 거듭하고도 다시금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

공무원노조 집행부는 단서조항을 규약에서 없애고 규정으로 옮기라는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관련 조항이 규약에 있든 규정에 있든 관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 제안을 수용하면 공무원노조는 규약 상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 반면, 규정은 규약만한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규약’은 노조 조직과 운영에 관한 최고 규범이고, ‘규정’은 그 부속 내용의 성격을 갖는다.

무엇보다, “규약에 반하는 규정은 효력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김유정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의 지적이다. 규약에서는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여부를 “관계 법령”에 따른다고 명시한 채, 그에 반하는 별도 규정을 두는 것이 해고자 배제 문제를 해결하는 꼼수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누군가 해고자는 규약 상 조합원이 아닌데 왜 버젓이 노조 활동을 하느냐고 문제 삼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박근혜는 해고자의 노조 활동을 빌미로 전교조를 법외노조화 시킨 바 있다. 설령 정부가 지금은 눈 감더라도 해고자 신분이 노조 규약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해고자의 노조 활동을 문제 삼아 ‘설립신고 반려’를 협박할 수 있다. 그러면 노조 지도부는 중앙위원회를 열어 규정에 있는 단서조항조차 아예 없애려 할 수도 있다. 규정 삭제는 규약 개정보다 훨씬 손쉽다.

노동조합 조직력과 투쟁력을 약화시키는 꼼수 제안을 거부해야 한다 ⓒ조승진

그간 정부는 노동조합이 투쟁에 나서려 하거나 노동조건 후퇴를 강요할 때 해고자 문제를 건드려 왔다. 박근혜가 2013년 해고자 규약 개정을 요구한 것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앞두고 노조의 투쟁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설립신고를 반려한 것도 한동안 분리돼 있던 공무원노조가 통합해 10만 명이 넘는 노동조합으로 성장한 것에 대한 견제였다.

더 나아가 정부는 노조 규약에 이러저러한 이유(가령 조합원 개개인의 권리 보호나 공정성)로 개입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할 수 있다.

공무원노조는 《공무원노동운동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공무원노조는 “노동조합 설립신고의 요건을 내세워 조직력과 투쟁력을 약화시키려는 정부의 탄압”에 맞서 왔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민주노조의 정체성과 자주성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노조 자주성 선언”이었다.

원칙 훼손

따라서 공무원노조 김주업 집행부는 정부의 꼼수에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9기 집행부 선거 당시 대정부 교섭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기에 노조 설립신고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해고자 조합원의 자격을 박탈하고 노조설립증이라는 ‘실리’를 챙긴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을 보면, 여러 차례 정부와 ‘협상’을 해도 제대로 된 ‘실리’를 얻지 못했다. 어느 모로 봐도 공노총이 공무원 노동자들의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보호하고 공직사회의 부패를 감시하는 데 공무원노조보다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힘을 발휘해 왔다고 보기 어렵다.

공무원노조가 ‘실리’를 위해 타협한 공노총보다 더 많은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파 정부 하에서 노동기본권 쟁취,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공무원노조가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온 결과이다.

그래서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공무원노조 중집은 “해직자 임원에 대한 정리 요구 수용 불가”와 “해직자 동지들을 조합원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규약 개정 절대 불가” 방침을 정한 바 있다. 올바른 입장이다.

지금 정세는 우리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을 약속했지만 공약에서조차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용주의적 후퇴가 아니라 조건 없는 노조 인정, 해고자 복직, 성과주의 반대 등을 요구하며 단결해 투쟁의 기세를 높여 나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해고자 조합원을 배제하는 규약 시정 요구를 중단하고 공무원노조를 즉각 인정해야 한다.


3월 15일에 올린 기사를 최근 상황을 반영해 3월 23일에 다소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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