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청와대가 개헌안 전문을 3월 22일 발표했다. 그 뒤 3일 동안 개헌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했다.

청와대는 개헌안이 정치적·사회적 기본권 보장을 확대하고, 토지공개념 등 경제민주화 요소를 늘리며, 3권 분립 등 분권화를 더 강화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청와대

현재로서는 3월 26일 국무회의를 거쳐 개헌안을 발의할 것 같다. 그래야 공약한 바대로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도 동시에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도 국회에서 3분의 2의 지지를 받아야 국민투표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이 남아 있다.

116석으로 개헌 저지선(100석)을 확보하고 있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주도의 개헌이 못마땅하다. 비록 국가 통치의 추상적 규범이지만, 개혁적 단어들이 포함되는 것도 심히 못마땅할 것이다. 현재의 사회적 세력균형을 보건대, 개헌 논의가 보수 색채를 강화하거나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만 얘기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리 없다.

그런 과정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청와대에게 빼앗기는 것도 싫을 것이다. 짧게는 개헌 국민투표와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것도 불리하다고 보는 듯하다. 지금 자유당은 고정 지지층을 단단히 유지하며,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실수하는 기회를 기다린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반보수 정서의 청년층이나 유동적인 정치적 중간층이 문재인 주도 개헌안에 찬성하러 투표장에 나오는 것이 자유당에게는 달갑지 않을 터이다. 게다가 지방선거 전에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이런 대화 국면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보수 야당들의 반발 때문에 대통령이 개혁 색채를 일부 담은 개헌안을 직접 발의하는 것이 실제로는 개헌 가능성을 낮춘다는 관측이 많았다. 정의당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개헌을 실제로 할 생각이 있는 것인가?’ 하며 부정적이었던 이유다.

반면 문재인은 국정수행 지지도와 개헌안이 모두 60퍼센트 넘게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이 현존하는 자본주의 국가(대한민국)를 운영하는 통치 규범을 약속하는 문서이므로 지배계급 정당들인 여야의 협의·합의 없이는 개헌이 이뤄지기 힘들다.

그러므로 문재인의 개헌안 발의는 포퓰리즘적으로 보수 야당들을 압박하고 여권 지지를 늘리려는 것이다. 개헌안이 높은 지지를 받는다면, 설사 이번에 보수 야당들의 반대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누더기’가 되거나 국민투표에 부쳐지지 않게 되더라도, 오히려 선거에서 보수 야당에 반대해 민주당을 밀어 줘야 한다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듯하다. 아마도 여권은 그런 분위기가 내후년 총선까지 이어지길 바랄 것이다.


문재인 개헌안은 개혁적인가?

문재인 개헌안은 전반적으로 한국 자본주의를 위해 통치 질서를 더 안정화하자는 방향으로 고쳐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최근 10년간 공식 정치 안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개헌 필요성을 지지하는 여론이 커져 왔다.

무엇보다 정권마다 정치 위기를 겪어 지배계급의 의제, 특히 기업들의 요구가 안정적으로 추진되지 못하는 것에 문제의식이 컸을 것이다. 1987년 헌법 하에서 집권한 여섯 정부로만 좁혀 봐도, 대통령 여섯 명 중 절반인 세 명이 구속됐고 한 명은 검찰 수사 중 사망했다. 퇴임(탄핵 포함) 후 검찰 수사나 사법 처리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은 김영삼과 김대중 둘 뿐인데, 그 대신 그들은 측근 가신들과 친아들들이 여럿 구속됐다.

자유주의 언론들의 칭찬과 달리, 문재인 개헌안이 노동계급에게 개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적 시민권 부분에서 소폭 개선의 ‘여지’는 있다. 기본권 보장 대상을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꾼 것, 노조의 단체행동권 목적을 좀 더 폭넓게 인정한 것, 노동조건을 노사가 대등하게 참여해 결정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한 것,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을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에서 ‘원칙적 허용 예외적 제한’으로 변경한 것 등이 그렇다. 이런 변화는 헌법의 성격상 말장난에 그칠 수도 있고, 권리 쟁취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공문구라도 투쟁의 정당성 옹호에 이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인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나 이주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전혀 보장하지 않고 폭력적인 단속·추방을 이어 가는 것을 보면, 이런 문구 변경이 곧 실질적 개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변화를 일부 반영하는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반민주 악법인 국가보안법이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등의 근거가 돼 온 제37조 2항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전격 합의하고 분단 이래 최초로 김일성 일가가 남한에 내려와 대통령을 만나지만, 국가보안법을 없앨 생각은 없는 것이다.

토지공개념 도입 시도 등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해 간접적으로 기업주들의 비용 절감(집값과 물가가 억제되면 임금 인상 압력도 완화된다)을 도우려는 발상일 것이다. 자산가들은 반발하겠지만 말이다. 집값 상승이 억제되고 개발이익을 환수해 복지 비용으로 쓴다면 좋겠지만, (노무현 정부의 행적을 봐도) 민주당이 그런 개혁에 진정성을 보인 적은 없다. 그보다는 한국 자본주의의 효율화에 더 목적이 있는 듯하다. 또한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에서도 여전히 사적 소유의 자유권 조항이 더 우선돼 유지된다.

1948년 7월 남한에 원천적으로 좌익을 배제하고 분단 반공우익국가를 수립하면서 만든 제헌 헌법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려는 치장의 일환으로 기간산업 국유화나 노동자들의 이익균점권 같은 (전혀 실질적이지 않은) 조항들이 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 이승만은 제헌국회의 논의 때 그 조항들이 법률에서 구현되지 않을 것이므로 삭제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문재인 개헌안은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킨다지만, 별로 그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배계급 내에서 정치 안정, 즉 안정적 통치 구현을 위해 (사실상 대통령 임기의 연장으로서) 대통령 연임제 개헌 지지 의견이 있어 왔음을 봐야 한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은 소수파 진보정당의 ‘출마’에 유리할 수 있겠지만 당선에는 여전한(또는 더한) 어려움을 줄 것이고, 우익 대통령이 당선하더라도 그의 절차적 정당성(권위)을 강화해 줄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 비례성 강화는 소수파 좌파 정당의 성장에 유리하겠지만, 당장은 호남색을 약화시켜 전국정당화를 추구해 온 민주당과 친노 세력에게도 필요한 방안이다. 만일 법률 제정 단계에서 국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이 조처가 좌파 정당들에게 유리할 거라고 장담하기 힘들다. 비례성 반영의 반대급부로 의회 진입장벽(득표율에서)을 높일 수 있다. 요컨대, 절차적 민주주의로서 선거제도 개헌이 자동으로 노동계급에게 유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결국 권력구조 개편안은 전반적으로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정치 안정을 추구하는 개헌안인 것이다. 가령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국무총리를 국회가 임명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뺀다고 해서 행정부를 통할하는 총리의 권한이 대통령과 맞먹을 수 있는 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총리가 행정부 대표 성격을 강화하면, 대통령이 3부 위에 있는 존재라는 상징적 위상은 더 강화된다.  

지방분권 조항도 실질적일지 의문이지만, 이명박·오세훈 서울시장 경험을 떠올린다면, 지방분권이 자동으로 개혁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우습지 않은가.

노동계급에 유리한 개헌이려면, 최소한 노동3권의 제한 없는 보장, 노동쟁의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소송 면책, 현행 헌법 37조 2항의 폐지나 제한 사유 축소 등이 담겨야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나 집시법 수정 등을 뜻한다는 점이 분명해야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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