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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내에서 제기되는 구조조정 대안의 난점들

□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금속노조는 비정규직을 포함해 총고용을 보장하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자는 방안을 제안했다.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해고에 눈감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옳다. 그러나 임금 삭감과 노동조건 하락이 없어야 한다는 단서가 없으면, 그것은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데 효과를 내기 어렵다.

흔히 ‘일자리 나누기’는 경기 불황이나 기업의 경영 악화 속에서 노동시간, 근무형태의 변화 등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는 정리해고 같은 극단적 방법을 피하는 대신 노동자들끼리 일감을 나누고 임금을 삭감하는 고통분담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의 폭스바겐 모델이다. 폭스바겐 노사는 1993년 ‘고용안정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노동시간을 주당 36시간에서 28.8시간으로 20퍼센트 줄이고, 임금을 20퍼센트 삭감했다. 초과근무 수당을 휴가로 대체하고 일감의 양에 따라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했다. 다양한 유형의 교대제도 운영했다.

이는 기업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유연근무제와 임금 삭감을 수용한 고통분담 모델이었다. 폭스바겐은 이를 통해 비용절감에 성공하고 시장 경쟁력을 회복했지만, 노동자들은 생활수준이 크게 하락하는 등 고통을 겪었다.

이렇게 정착된 폭스바겐의 노사합의 모델은 결코 안정적인 고용 보장 방안이 되지 못했다. 사용자 측은 수익성이 떨어질 때마다 해고를 위협해 임금 양보를 받아내고 파견 노동을 크게 늘렸다. 반면 노동자들은 거듭된 양보로 조직력이 약화됐다.

노조가 취약한 곳에서는 인력 감축 시도도 이어졌다. 2006년 본사 직원 1만 3000여 명이 조기 퇴직했고, 2008년에는 비정규직 1만 6000여 명이 해고됐다.

폭스바겐의 고통분담 모델은 다른 자동차 기업 노동자들의 조건 하락을 압박하는 악효과도 냈다. 한국에서도 정부·재계가 양보를 강요할 때마다 폭스바겐을 들먹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양보교섭으로는 노동자들의 조건이 연거푸 후퇴되는 상황을 막기 어렵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조직력을 약화시켜 지속 가능한 고용 보장책이 될 수 없다. 고통분담이 아니라 투쟁을 건설하면서 단결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 제조업 육성 전략과 독자 생존론

금속노조는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노사정이 함께 제조산업 발전 전략을 세우자는 대안을 제시해 왔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대표발의 하고 정의당 의원들도 함께 참여해 “제조산업 발전 특별법”을 내놓기도 했다.

이 법안은 제조업 발전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 제조업 발전기금, 구조조정 논의를 위한 노사정 협의기구, 외국인 투자기업 규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비슷한 논리로 한국GM 등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독자 생존론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가 국유화됐다가 다시 민영화한 것을 예로 들면서, 한국GM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독자 생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물론 진보진영이 제기하는 ‘제조업 육성 전략’ 또는 독자 생존론은 “있는 일자리 지키기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노동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가하는 현재의 구조조정 방안을 비판하는 좋은 의도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력 강화 논리는 경쟁력이 있어야만 산업·기업이 생존할 수 있고,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는 자본주의 논리를 수용한다는 약점이 있다. 노동조합이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하다 보면, 결국 비용 삭감 논리에 취약해져 노동자들도 일자리와 임금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가 쉽다.

실제 산업·기업 경쟁력을 주장하는 진보진영 내 인사들은 노동자들의 고통 분담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금 같은 불황기에는 어떤 발전 전략이 성공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희생해야 하는 일은 더욱 빈번히 벌어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기업 육성 전략이 아니라 구조조정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 건설에 힘을 쏟는 것이다.

□ 국민기업화와 노동조합 경영 참가

진보진영 내에서는 한국GM 등의 독자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조합 경영 참가나 노동자 대표들이 주도해 경영하는 방식을 제시하기도 한다.

최근 한국GM 노조가 성과급을 반납하는 대신 노동자 1인당 3000만 원에 해당하는 주식을 분배하라고 요구한 것도 주주로서 이사회에 참여해 ‘경영 참가’를 하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노조의 경영 참가는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정책 일부의 실행에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이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당 정책연구소와 민주노총의 지도자 일부는 믿을 수 없는 GM에게서 한국GM을 인수해 국민기업화 하자고 주장한다. 중앙정부·지방정부·부품회사 등과 함께 노동자들도 “퇴직금 등을 투자”해, 공동으로 인수하고 운영하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 연구위원도 노동조합이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방안에 대해 언급하는데, 국민기업화를 통한 공동 경영이나 협동조합적 운영을 뜻하는 듯하다.

노동자 대표들이 주도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독자 생존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작업장 내에서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중요한 시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기업을 협동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려 해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으려 한다면 경쟁 논리에 의해 규제될 수밖에 없다.

어떤 노동자 통제 기업이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조직되지만 그 생산물을 판매하지 못한다면, 결국 비용 절감과 생산 증대 정책을 실행할 (그러나 그 영향에서는 자유로운) 별도의 경영진을 고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시장 경쟁의 논리는 결정하는 소수와 복종하는 다수로 노동인구를 나누고, 시장경제 안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 민주주의·평등의 고립된 섬들을 마침내 침몰시키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썼듯이, 협동조합도 “기존 제도의 모든 결함을 재생산하며 또 재생산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기업 하나하나를 각각의 노동자들이 경영하는 방식으로는 일자리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