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와 그 충실한 지지자들은 “대전환”이라는 말을 쓰길 좋아한다. 우파 정부 9년간 추진한 정책을 지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들은 기업이 잘 되고 수출이 늘어도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회적 양극화(빈부격차)가 심화됐다고 개탄한다. 

얼핏 보면 이런 비판은 진보적인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주로 이명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리면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대안(새로운 자본축적 방식!)을 제시하려는 데 진정한 관심이 있다. 가령 그들은 양극화 문제를 노동자들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점 때문에 걱정한다.

문재인 정부의 사명은 저성장(낮은 자본축적 효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게 돼 소비가 증가하면, 내수가 활성화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과소(아주 적은) 소비 때문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임금 주도 성장론자들은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을 소득 불평등에서 찾았다. 그러나 소득 불평등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한 주된 양상이기는 하지만 경제 위기의 원인은 아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는 기본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근저에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는 노동자의 삶 향상이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을 뜻한다 ⓒ출처 청와대

공동 운명은커녕 계급 적대가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말대로라면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면 경제도 살아난다. 마치 노·사·정이 공동 운명체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노동소득 몫이 늘려면 자본소득 몫이 줄어야 한다.

물론 경제 확장기에는 자본소득이 많이 늘어나는 동안 노동소득도 조금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장기불황기에는 얘기가 다르다.

그래서 문재인과 그 충실한 지지자들이 벌이는 말잔치는 현실과 다르다. 그들은 성장과 분배 두 바퀴론(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이용섭), 혁신과 복지의 결합(J노믹스의 입안자라는 변양균), 심지어 친기업이자 친노동(문재인 자신)을 말하지만, 현실은 늘 전자로 기울어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나서서 한국GM과 성동조선·STX에서 노동자들에게 퇴직과 임금 삭감을 강요하는 것만 봐도 정부의 실천은 친기업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예산을 많이 쏟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상생’과 ‘동반성장’의 주된 관심 대상은 중소기업이지 노동자들이 아니다. 정부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이유로 노동시간 단축의 적용을 미루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을 추진하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노동자와 중소기업 사용자가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같은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민중주의자, 즉 진보적 포퓰리스트들의) 주장은 이런 현실 앞에 무기력하다.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실제로 더 친화적인 것은 아니다. 자본은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축적 법칙 때문에 자본주의 정부는 친대기업으로 기울게 돼 있다. 김대중 정부도 벤처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했지만 자본의 대규모화가 도도한 실제 흐름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을 보면 한국은 변함없이 대기업 하기 좋은 나라다. ‘고용 없는 성장’을 비판하면서도 고용 확대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해고 자제도 대기업에 강제하지 않는다. 법인세 인상이 미온적이었던 데서 보듯이 재원을 내놓으라고도 하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창업, 해외 취업, 신서비스 창출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대기업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고용 유연성 + 고용연계복지

문재인의 “사람 중심 경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경제가 운영돼야 한다는 말이 전혀 아니다. 사람(‘인적 자원’)에게 투자하겠다는 것인데, 노동자의 삶 향상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즉, 착취) 향상에 자원이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재인 정부는 ‘평생 직장은 옛말’임을 전제한다. 고용과 해고가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에 국가가 복지와 재교육·재취업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고 한다. 일자리위원회가 발표한 청년일자리대책 자료 초안에 담겼다는 “고용안전유연모델” 또는 유연안정성 모델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유연화 말고도 또 다른 혹독한 논리가 담겨 있다. 그냥 퍼주는 복지(소비 지원)가 아니라 ‘인적 자원’(사람) 개발에 투자하는 복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지를 고용과 연계시키겠다는 것이고, 기회를 줬으면 결과의 불평등은 개인 탓이라는 것이다.

노동계급 사람들이 삶을 향상시키려면 계속 일을 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애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미국과 영국 등지의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킨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양극화를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 문제로 흔히 바꾸어 놓는다. 〈2018년 정부 업무 보고〉는 “그간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못[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제시했다.

그러나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가 대기업의 경우 수십 배에 이르는 데다, 임금보다 사업·금융 소득의 격차가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지고 있다(‘2016년까지의 소득분배 지표’, 한국노동연구원). 자산 불평등은 이보다 크다는 점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양보의 강요: 누구를 위해?

이렇게 계급간 격차를 노동계급 내 격차로 치환하는 것은 저임금 해소와 일자리 창출의 재원을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에게서 뜯어가려는 포석이다. 문재인 정부 안팎의 정책 브레인들은 지나치게 낮은 임금은 높이고 지나치게 높은 임금은 낮춰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하나가 임금체계 개편이다.

문재인 정부는 호봉제에서 직무급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무급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보장하는 “공정 임금”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들이 직무급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려는 주된 목적은 인건비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임금이 또박또박 올라 유연성이 떨어지는 호봉제를 없애, 임금 상승 폭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다.

직무급제 도입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건 개선과 차별 시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참말이 아니다. 무기계약직이 된 많은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호봉제 적용을 원한다. 정부가 무기계약직 전환자에 대한 직무급제(임금 표준모델)를 서둘러 마련한 것은 이들이 기존 정규직만큼의 임금 인상을 꿈도 꾸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 비정규직 조건 개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전체 노동계급의 임금 상승이 억제되는 효과를 내기 쉽다. 정부가 정규직 임금 인상을 억제시키려는 것도 주로 이런 목적을 위해서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는 고임금 업종과 대기업의 임금 인상 자제를 촉구했다. 그 이유는 “기업 규모 간 임금 격차 확대가 저임금 업종의 임금 인상 압박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요인”임을 걱정했기 때문이다(«고용노동정책의 역사적 변화와 전망»,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27쪽).


문재인 정부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사회적 대화에 끌어들여 양보를 얻어 내려 한다 ⓒ출처 청와대

사회적 대화와 노·사·정 파트너십

문재인 정부의 말이 아니라 그 실천을 보면, 노동정책이 점점 더 노동자들의 불만을 사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개혁 염원에 힘입어 집권한 정부가 그 염원을 충족시킬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 모순이다.

정부 측 자료를 봐도 공공연한 걱정이 묻어난다. 노동부는 〈2018년 고용노동부 업무 계획〉에 “노동정책 추진 과정에서 갈등[이] 예상”된다고 썼다. 그리고 그런 쟁점으로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꼽았다.

여기에 한국GM 공장 폐쇄, 중형조선소 구조조정, 금호타이어 매각,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전환자에 대한 임금 표준모델 도입,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 등을 추가할 수 있다.

“고용안정유연모델”

노사관계 연구자들은 노사 및 노정 갈등 유발 요인으로 노동자들의 기대감이 상당하다는 점도 꼽는다. 실제로 노동자들은 촛불 운동 덕분에 집권한 정부에 더 나은 것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게다가 박근혜를 퇴진시킨 승리 경험 덕분에 비록 불균등하지만 싸울 자신감도 증대하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노동정책을 추진하는 일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사회적 대화’와 다양한 수준의 교섭에 그들을 참여시켜 그들이 불만의 관리자, 중재자 구실을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이용섭은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은 “사회적 대화와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흔한 착각과 달리, 노사정위원회만이 사회적 대화 기구는 아니다. 노사정위는 지금 체계 개편을 논의 중이지만 이미 많은 사회적 대화 기구들이 산업·업종과 지역 수준에서도 가동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일자리위원회 산하에 공공·제조업·건설 등 업종별 특위가 운영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보건의료분야 일자리 창출 선언을 한 것도 업종별 노사정 협의의 결과물이다. 지역 노사민정 협의체들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켜 고용 창출이나 사회적 양극화 같은 현안을 다루고 그들로부터 양보를 얻어 내어 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사회적 대화의 주요 의제는 임금, 고용, 복지 등이다.

경제 침체에 직면한 나라들의 사회적 대화 경험을 보면, 주로 임금 삭감과 고용 유연화를 일자리 창출과 맞바꿨다. 일자리위원회의 청년일자리대책에 포함됐다가 민주노총의 항의로 빠졌다는 구절, 즉 “사회적 대화를 통한 고용안정유연모델 구축 등 노동시장 구조개선”은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하고 싶은 것도 다른 나라 정부들과 다르지 않음을 잘 보여 준다.

광주형 일자리

문재인 정부의 충실한 지지자들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지역과 업종의 일자리 창출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이 꼽는 대표적 사례는 광주형 일자리다. 광주형 일자리는 문재인 대선 공약에도 포함됐고, 문재인 정부는 이 모델이 실현되면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고 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기아차 노동자의 반값 임금(약 4000만 원)으로 광주에 전기차 공장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것은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5000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2001년 폭스바겐은 새로운 차종인 투란의 생산 공장을 동유럽에 짓기로 하면서 비난에 휩싸였다. 그러자 폭스바겐 사측은 볼프스부르크 지역에 폭스바겐 자회사 아우토5000을 세워 투란을 생산할 테니, 대신 노동자 월급을 5000마르크로 해달라고 볼프스부르크 시와 금속노조에 요구했다. 5000마르크는 폭스바겐 본사 노동자 월급보다 20퍼센트 이상 낮은 액수였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자들은 약 4000만 원이 “적정 임금”이라고 주장한다. 광주 기아차 노동자 임금보다 낮지만 광주시 평균 임금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직무급,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 3교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실현되면 자동차 노동자 전체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끌어내리는 효과를 낼 것이다. 자동차 노동자들이 밤샘 노동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분투했던가만 생각해도 이런 양보 강요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노동현장 갈등 억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기본 관점은 노·사 또는 노·정 또는 노·사·정이 지역사회나 국가 경제의 공동 번영을 함께 추구하는 ‘파트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의 사회적 대화·협약 사례나 1998년 한국의 경험은 타협의 결과가 노동자들에게 공동 번영을 가져다 주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게다가 파트너십 추구는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계급 협조주의를 부추겨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사회적 대화나 초기업 단위 교섭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노동현장의 갈등과 투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사업장 바깥에 존재하는 교섭기구”가 “노사 갈등[을] 외부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현장에서는 경영참가를 통해 노사 협력 관련 쟁점에 집중하고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한다. 중층적 사회적 대화 지지자들이 작업장 수준의 경영참가도 중시하는 이유다.


노동자 투쟁과 연대

정부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할 때 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에 불필요하게 타협하면서 노동자 투쟁을 자제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문재인 집권부터 최근까지 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그런 태도를 취했다. 노동운동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정부를 밀어붙이면 ‘공멸’한다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위협도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노동조합 추천 인사들)은 노사 양측이 받아들일 만한 해법을 중재자로서 찾는 데 골몰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일관되게 대변하면서 투쟁을 이끌려 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안을 마련해 정부·사측과 타협하고, 타협안을 받아들이도록 노동자들을 설득하려 했다.

이런 접근법의 바탕에는 문재인 정부와 노·사의 이해가 서로 절충 가능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불필요한 타협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동 번영을 가져오지 않는다.

오늘날처럼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시기에는 지배자들이 약간의 양보도 꺼리고 오히려 전에 줬던 것도 회수해 가려 하므로 특히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듣기 좋은 말로 포장돼 있지만 결국 노동자들의 양보나 자제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중재자

이런 실체가 점점 드러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됐거나 전환은 됐지만 조건이 그다지 개선되지 못한 노동자들, 공장 폐쇄와 부도로 직장을 잃거나 노동조건 악화에 직면한 노동자들, 최저임금 인상으로 조금 나아지려나 했다가 인상 효과 상쇄나 노동강도 강화로 일이 한층 힘들어진 노동자 들이 그렇다.

이런 때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을 추구하느라 시간을 까먹고 기회를 날려 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 같은 장기 불황기에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거나 작은 개선이라도 얻으려면 대규모 투쟁이 필요하다. 연대가 관건이다.

여기서 혁명적 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지난해와 올해 주요 노동조합들이 연대를 회피하는 일들이 많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가 제기됐을 때 정규직 기반 노조 집행부들이 비정규직의 요구를 온전히 지지하지 않았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혁명적 좌파는 노동자들을 성, 인종, 직무에 따라 각개격파하고자 이간질하는 주장들과 대결해야 한다. 또, 노동조합 조직의 보존을 앞세워 연대를 기피하는 것에도 맞서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좌파 활동가들이 자기 부문 기반을 보존하려는 데 급급한 노동조합 지도부의 연대 기피에 타협했다.

연대의 중요성을 알고 헌신하는 혁명적 좌파가 기층에 굳건하게 조직돼 있어야 한다.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오늘날 이 점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