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오후 3시 광화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조합원 2만 명이 참가했다(주최측 발표). 진보정당들과 좌파 노동단체들도 참가했다. 올해 첫 대규모 노동자 집회였다. 집회 후에는 청와대 앞으로 행진도 했다.

오늘 집회는 노동계 일각의 바람과 달리, 노동자들 사이에서 (말만 “노동 존중”인)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 분노가 빠르게 자라고 있음을 드러냈다. 특히, 구조조정에 맞서 생존권 투쟁을 벌여야 하는 금속 노동자들이 대열도 가장 많고 분노도 컸다. 금속노조의 사전 집회에서는 정부에 대한 성토 발언이 이어졌다.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문제에서 뒤통수를 맞은 공공운수노조와 서비스연맹 대열에서도 분노가 많았고, 공공 부문에서는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라’는 내용의 조끼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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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남북 화해 국면과 개헌안 발표 등을 활용해 포퓰리즘적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마하려 한다. 그러나 정부가 실제로 하는 일은 정규직 전환의 말장난, 최저임금 인상 후 이를 무력화하는 법 개정을 하려는 시도 등 하나 같이 배신의 행보들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정부를 상대로 항의의 목소리를 낸 것은 의미가 있다. 좀 더 분명한 투쟁 계획으로 정치적 초점을 제시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오늘 참가자들은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저지 등이 적힌 손팻말이나 자기 일터의 요구가 적힌 조끼나 팻말 등을 들고 대열을 이뤘다. 한국GM, 금호타이어, 중형 조선소 등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금속노조를 비롯해 건설노조, 전교조 등은 사전대회를 마치고 대회에 참가했다. 민중당, 정의당, 노동당, 변혁당, 노동자연대 등 진보정당과 좌파 노동단체들도 참가해 지지를 표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문재인 정부에게 경고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 모든 희망을 걸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 최저임금 제도, 비정규직 제로 약속, 해고와 구조조정 중심의 산업 정책, 재벌 정책 등에 후퇴와 한계 타령만 하는 현 정부에 강하게 비판하고 엄중히 경고[한다.]”

서비스연맹 강규혁 위원장은 정부와 기업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 무력화 꼼수를 강하게 비판했다.

“신세계 이마트에서는 근로시간 줄이고 휴게시간 늘이는 등 임금을 깎고 있다. 이런 꼼수 막아야 할 정부와 국회는 최임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며 갖은 수당을 포함시키려 한다. ...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더라도 월급은 그대로일 것 ... [이것이 문재인이 말한] 소득 주도 성장이냐?”

문재인은 당선 후 첫 행보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바 있다. 공공운수노조 진기영 수석부위원장은 “희망과 기대가 절망과 분노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이미 전환률 통계를 부풀리고, 전환 대상 심사 등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정규직 전환을 명분으로 정규직 양보를 강요하는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은 금속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실경영과 잘못된 정책 탓이 분명한데 노동자들에게만 책임을 지라 한다. 대화, 교섭 요구했는데 금호타이어는 해외매각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정부 스스로 노동3권을 부정하는 파업 금지 MOU를 뒤로 시도하려 했다. ... 정부가 헌신짝처럼 버린 투쟁 전선으로 가서 생존권 지키겠다.”

최근의 근기법 개악도 문재인의 노동개혁이 허울뿐임을 보여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대대적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안전이 중요한 보건, 운수 등 부문을 법정노동시간 특례업종으로 정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샀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은 이를 비판했다.

“건강해지려 온 병원에서 환자가 감염으로, 화재로 죽고 있다. 노동자들은 너무 힘이 들어 자살을 선택했다. 우리나라는 병원에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OECD 평균 반밖에 안 돼 화재가 나도 대피시킬 노동자가 없다. 장시간 노동으로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것이 병원노동자들의 현실이다. 환자들의 고통과 사고들을 해결하려면 인력 충원해야 하는데도 장시간 노동 유도하는 법정노동시간 특례업종을 유지하려 한다.”

오늘 본대회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산별 위원장들이 발언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말바꾸기와 한계를 잘 폭로했다. 아쉽게도 이를 모아낼 정치적 방향과 투쟁 계획 등을 딱부러지게 제시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개악의 주체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입장을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도 있다. 가령 사전 집회에서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은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의 재고를 요청했다. 그래선지, 문재인 정부의 말뿐인 “노동 존중”을 종합적으로 비판한 〈노동자 연대〉 최신호에 관심을 보인 노동자들도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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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행사

금속노조 한국GM 창원비정규직지회 김희근 지회장은 “한국GM을 망가뜨린 것은 글로벌GM 경영진들인데 열심히 일한 우리가 모든 고통을 뒤집어 써야 하는가?” 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문재인 정부도 성토했다. “노동 존중 사회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부는 노동자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협상하면서 수천억 원 혈세를 투입하고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선정해 추가 혜택까지 주려 한다. 과연 노동자를 위한 정부인가? 먹튀 자본을 위한 정부인가?”

투쟁작업장 세 곳-쌍용차, 춘천시 환경사업소 쓰레기 소각장, 전주 택시-의 영상도 상영됐다. 최근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은 4번째 단식에 돌입했다. 2009년 해고 이후 2년 전 복직 약속을 받아냈지만 130여 해고 노동자 전원 복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일반연맹 중부일반노조 김영하 춘천지부장은 춘천시가 소각장을 민간위탁하고 48명을 해고한 것에 항의하며 165일 째 천막 농성 중이다. 택시노조 김재주 전북지회장도 전주시청을 상대로 전액관리제와 완전월급제 적용을 요구하면서 200일 가까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세 곳 모두 관심과 지지를 호소했다.

소성리 사드철회 주민대책위원회 이종희 공동위원장도 정부가 바뀌어도 그대로인 사드 철회 투쟁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외쳤다.

전교조 조합원 약 400명이 오후 1시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노동·정치기본권 쟁취! 성과급 폐지! 전국교사결의대회’에 참가했다. 보수 성향 대구 교육감 우동기의 해고자 복직 거부에 맞선 대구지부의 투쟁 발언, 성과급 개선이 아니라 폐지를 위해 운동을 전교조 밖으로도 확대해야 한다는 경남지부 조합원의 발언 등이 호응을 받았다.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발언에도 많은 응원의 박수가 쏟아졌다. 참가자들은 사전 집회 후 광화문광장으로 함께 행진했다. 성과급 폐지, 기본권 쟁취 등 조합원들이 든 팻말에 고궁 옆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관심을 보였다.

오후 1시에 효자동 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건설산업연맹 집회에는 1500여 명이 모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정부의 건설 노동자 탄압을 규탄했다. 건설근로자법 통과를 요구한 정당한 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3월 13일 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정부는 이도 모자라 노동자 16명을 추가로 처벌하겠다고 협박한다.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건설 노동자들의 삶이 바뀐 것이 없다는 불만이 표출되는 자리였다.

서울 사전 집회와 광주 금호타이어 연대 집회

구조조정에 맞서는 금속 노동자들의 목소리

※ 구조조정에 맞서고 있는 금속노조는 서울의 전국노동자대회와 광주의 금호타이어 해외 매각 반대 집회 등 두 곳에서 집회를 열었다. 두곳을 각각 취재했다.

성동·STX 조선소, 한국GM 노동자 등 전국에서 금속노동자 3000명가량 모였다. 성동·STX 조선소 노동자들은 광화문 농성, 4시간 파업을 벌이며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방안에 항의하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 비슷한 시각, 광주에서는 해외매각에 맞서는 금호타이어 노동자들 3000여명을 비롯해 광주전남 지역 금속·보건·전교조 등 도합 6000명이 ‘금호타이어 해외매각 철회, 1차 범시도민대회’를 열었다.

서울과 광주 모두에서 금속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약속을 뒤집고 노동자들 일자리 지키기에 나서지 않는 것을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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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성동·STX 조선소가 있는 경남 지역에서 온 홍지욱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며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고 외쳤다.

“문재인은 조선업을 살리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정부한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 뒷통수 까였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 노정 관계, 노사정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표자 회의 참여하고 있는데 엄중하고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금호타이어지회 심현선 사무장은 광주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역시 문재인의 말 뒤집기를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금호타이어에도 와서 ‘이곳만큼은 해외매각 안 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 더블스타 매각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문 대통령을 어떻게 믿겠나.”

한국지엠 비정규직3지회 노동자들은 대열 곳곳에서 ‘군산공장 폐쇄 반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함한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나눠 줬다. 창원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본대회에서도 발언을 통해 연대를 호소할 예정이다.

생존권 사수

한편, 광주에서도 금호타이어 해외매각 철회, 구조조정 저지, 노동자 생존권 사수 등을 요구하며 뜨거운 분위기에서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보전을 책임지라고 촉구했다.

정송강 금호타이어지회 곡성지회장은 산업은행의 금호타이어 매각 발표를 강력히 규탄했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더블스타로 매각하지 않으면 [금호타이어를] 법정관리 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에게 이럴 수 있는가?”

박명희 가족 대표도 정부 방침을 비판했다. “쌍용차를 보더라도 해외 매각은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정리해고로 이어진다. …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는데, 지금 있는 일자리부터 지켜라. 문재인 정부는 해외매각 하지 않겠다고 [한] 공약을 지켜야 한다.”

집회 참가자들은 “해외매각은 [노동자들에게] 겨우 3년짜리 시한부 생존”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노에 크게 공감했다. 참가자들은 공동 투쟁을 결의하고 광주 도심을 행진했다.

한편, 광주 집회에서는 구조조정 반대와 투쟁 방향 기사를 실은 〈노동자 연대〉 이번 호 200부가 다 팔렸다. 더 준비했으면 더 팔렸을 것이다. 정기구독자인 한 금호타이어 조합원은 “이런 기사는 한 줄기 빛”이라며 반가워했다. 

ⓒ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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