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히트 앤 런 방지법’을 만들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1만 7천 명 넘게 참여해 청와대가 내놓을 답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히트 앤 런 방지법’은 국가가 미혼모에게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미혼부에게 돈을 받아내는 제도다. 문재인은 양육 한부모에게 양육비를 정부가 먼저 지급하고 비양육 한부모에게 돈을 청구하는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을 지난해 대선 공약으로 제출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히트 앤 런 방지법’ 제정 청원에 호응한 것은 양육 미혼모의 처지가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양육 미혼모 모자가정 건강지원사업 건강실태조사’를 보면, 양육 미혼모 중 직업이 있는 사람은 5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이 중 정규직은 16퍼센트에 불과하다. 월 소득이 100만 원도 안 되는 미혼모가 84퍼센트에 달한다.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미혼모들은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대부분 시간제 일자리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한국에도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가 있지만, 신청 자격과 절차가 까다롭다. 지원금도 아동 1인당 월 20만 원씩 최장 12개월 동안만 지급된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미혼모들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양육비를 선지급하라는 요구는 이해할 만한다.

그럼에도, ‘히트 앤 런 방지법’ 구상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 미혼모의 빈곤을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관련 짓지 않고, 양육을 어쨌든 개인들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로 본다. 

국민청원 제안자는 “미혼부가 지급하는 자녀 양육비 부족과 자녀 양육에 대한 무관심은 미혼모를 경제적으로 더 어렵게 만들고 있”어 “한국에서 히트 앤 런 방지법이 시행된다면, 남성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며 청원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빈곤은 부와 권력을 소수가 독점한 사회 구조의 산물이므로, 미혼모의 빈곤이 단순히 ‘무책임한 생부’ 때문은 아니다. 또한 양육을 개별 부모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가난한 미혼모와 그 아이들의 빈곤은 전혀 해결되지 못한다.

보편적 복지

빈곤과 양육의 책임을 개인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고 보편적 복지를 제공한다면, 설사 생부가 무책임해도 미혼모와 아이의 생계가 이에 좌지우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국가의 선지급 제도가 미혼모의 생계에 약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보편적 복지 대신 미혼모만을 위한 제도를 시행하면 미혼모는 무기력하고 시혜를 받아야 하는 집단이라는 편견이 강화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에서 양육은 기본적으로 미래의 노동자들을 길러내는 일이다. 따라서 결혼 유무나 가족 형태와 무관하게 양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돈 많은 부자들은 양육 비용이 전혀 부담되지 않지만, 노동계급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양육 부담은 어마어마하다. 

한국의 아동 복지는 매우 열악하다. 지난해 정부의 아동·가족 복지 지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이었다. 아동·가족에 대한 공공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퍼센트에 그쳤다.(보건복지부,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여성이 결혼, 출산, 육아를 하면서도 자신의 일과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너무나 꾀죄죄하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악해 최저임금 인상을 정부 스스로 삭감하려 한다.

저질 일자리와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개별 가정에게 양육을 떠넘기면서 “일과 가정 양립” 운운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결혼 여부와 상관 없이 출산·양육에 대한 국가 지원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 이것이 생부에 대한 국가의 구상권보다 가난한 미혼모들에게 훨씬 큰 도움이 된다.

기업주와 부유층에게 세금을 대폭 늘리고 국방비 등 낭비되는 비용을 줄이면,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정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출산·양육에 대한 보편적 복지가 진정한 대안이다 ⓒ이윤선

낙태권도 전면 보장돼야

보편적 복지를 대폭 확대해 미혼모와 아이들의 삶을 크게 개선해야 하는 한편, 여성이 요청하면 낙태를 허용하는 낙태 합법화도 필요하다. 

노동력 재생산은 자본 축적이 지속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지배자들은 노동력 재생산에 드는 부담을 노동계급의 가족, 특히 여성에게 떠넘겨왔다. 또한 노동력 재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낙태죄를 유지하며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취급해 왔다.

부자 여성들은 낙태 불법화 여부와 상관 없이 자신의 재력으로 안전한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지만, 노동계급 여성들은 낙태 시술을 위한 휴가조차 내기 어렵고 비싼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출산·양육 지원 확대와 별개로 낙태는 여성의 권리로 보장받아야 한다. 낙태를 하든, 아이를 낳아 키우든 이것은 모두 여성이 결정할 문제이다. 국가는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고 낙태와 양육에 대한 비용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 

보편적 복지가 양육비 이행·지원보다 훨씬 중요하다

장호종

스웨덴의 경우 양육·보육·교육·의료 비용은 소득이나 가족 형태와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지급된다. 

교육비는 6세부터 대학까지 무상이다. 3~5세 아동의 경우에는 주당 15시간이 무료다. 추가되는 경우에도 부모 부담이 월 15만 원을 넘지 않는다.

의료도 무상이다. 여기에 더해 아이가 아파서 부모의 간병이 필요할 경우 1년에 60일까지 아동간병휴가를 받을 수 있고, 그동안 월평균소득의 80퍼센트에 해당하는 아동간병급여를 받을 수 있다. 

생계비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보편적으로 지급하지는 않지만 매우 관대한 편이다. 28세 미만 청년, 자녀가 있는 저소득층 가정에 지급되는데, 아이가 한 명이면 최대 매달 약 43만 원, 셋이면 약 67만 원을 지급한다(2004년 기준). 이는 해당 연도 스톡홀름의 도심과 교외 사이 중간 지대, 80~90제곱미터(24~30평) 규모의 공공임대아파트 임대료의 70퍼센트 수준이다. 주거수당은 어린 미혼모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정부가 필수 공공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폭넓게 보장하다 보니 아동수당이 비교적 적음에도(월 13만 4천 원) 전체 아동빈곤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한편, ‘히트 앤 런 방지법’안과 유사한 제도가 스웨덴에도 있다.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경우 양육비를 부담하도록 돼 있지만, 어떤 이유로든 이를 받지 못할 경우 정부가 먼저 매달 20만 원 가량 지급한다. 사회보험청은 지급 의무가 있는 부모에게 소득이 발생하면 이를 청구하거나 부채를 탕감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가 잘 갖춰진 북유럽 나라들에서는 이런 양육비 이행 제도가 한부모 가족의 아동 빈곤율을 낮추는 효과가 어느정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스웨덴: 21.2퍼센트에서 9.7퍼센트로, 덴마크: 23.3퍼센트에서 8.5퍼센트로) 

반면, 보편적 복지가 거의 갖춰지지 않은 미국의 경우에는 양육비 이행 제도가 별 효과가 없었다.(양육비 이행·지원 전 한부모 가족 아동의 빈곤율: 49.9퍼센트/ 후: 46.3퍼센트, OECD 국가의 가족정책, 2011)

결국 히트 앤 런 방지법은 국가의 보육 책임을 개개인들에게 떠넘긴다는 점에서 문제일 뿐 아니라, 한부모 가족 빈곤 해소 면에서도 그 법 자체로는 별 효과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히트 앤 런 방지법보다는 보편적 복지 제공 여부가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