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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판타스틱 우먼〉:
트랜스젠더 천대를 생생하게 들춰 내다

트랜스젠더 차별을 주제로 한 〈판타스틱 우먼〉이 4월 19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판타스틱 우먼〉은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테디상(작품성이 뛰어난 성소수자 영화에 수여하는 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한 수작이다.

<판타스틱 우먼>,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 2017

영화는 밤에는 바에서 노래하고 낮에는 웨이트리스 일을 하는 트랜스여성 마리나가 연인 오를란도의 죽음 이후 겪는 차별을 다룬다. 마리나 역은 칠레의 트랜스젠더 배우 다니엘라 베가가 연기했다.

오를란도는 어느 날 밤 갑작스런 동맥류로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지만 세상은 마리나에게 연인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오를란도의 담당 의사는 오를란도를 병원으로 데려온 마리나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성별이 정정된 새 신분증을 아직 받지 못한 마리나에게 의도적으로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를 쓴다. 마리나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오를란도를 살해한 용의자 취급을 받는다. 마리나는 자신이 오를란도의 죽음에 연관이 없다고 며칠간 해명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굴욕적 상황을 거쳐야만 했다.

경찰뿐 아니라 오를란도의 가족들도 그녀에게 거리낌 없이 차별적 언행들을 한다. 오를란도가 죽기 직전까지 사랑했던 이는 다름 아닌 마리나였는데 말이다. 오를란도의 가족들과 심지어 그의 이혼한 아내까지 마리나가 장례식조차 오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마리나가 겪는 일들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기에 더욱 가슴이 먹먹하다. 트랜스젠더들은 일상에서, 국가 기관에 의해서 유독 차별에 시달리는 집단이다. 트랜스젠더는 사회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정상적’ 규범에서 벗어난 ‘변태’로 취급된다. 생물학적 남성에게 요구되는 ‘남성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트랜스여성은 정체성을 확립한 순간부터 끊임없는 차별에 시달린다.

2017년 미국의 트랜스젠더 살인율은 최고치를 기록했고 영국에서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는 지난 5년간 3배나 뛰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소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2016년에 트랜스젠더 노동자 3분의 1 이상이 차별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 했다. 영국 성소수자 권리 단체인 ‘스톤월’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대)학생 10명 중 8명이 자해를 시도했고 그중 45퍼센트는 자살을 시도했다.

한국에서도 가시화된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는 방송에서 종종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그려져 왔다. 여러 방송에선 그녀의 ‘남성스러운’ 목소리를 따라 하며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판타스틱 우먼〉은 트랜스젠더를 그저 힘없이 차별받는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참을 대로 참은 마리나는 더는 움츠러들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 마리나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줬음에도 끝까지 폭언을 퍼붓는 오를란도 가족에게 당당히 항의하는 장면은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리는 듯하다.

이 영화를 볼 독자들을 위해 결말을 자세히 밝히진 않겠지만 계속되는 차별에도 삶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마리나의 모습은 큰 여운을 남긴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판타스틱 우먼’인지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트랜스젠더 가시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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